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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그만할까 말까

워킹맘엄마와 워킹맘딸의 육아이야기

by 초마


“엄마, 나 피아노는 계속 다니고 싶어, 학원에 중학생 언니도 일주일에 한 번 다녀!”


초롱이가 고학년이 될수록 나의 고민 중 하나는 피아노와 미술이었다. 초롱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하교 후의 일정이었다. 당연히 될 것이라 생각했던 돌봄 교실이 추첨에서 떨어지고 나니 당장 12시 30분 이후시간부터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는 7시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학원을 배치하느냐였다.


우선, 영어학원 시간이 결정되면서 앞뒤 시간을 채워야 했기에, 나는 최대한 이동이 짧은 곳을 선택하려고 틈날 때마다 집 근처 건물에 있는 학원들의 후기를 찾아서 지역카페를 뒤졌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학원은 피아노와 미술을 같은 곳에서 할 수 있는 학원이었다. 게다가 마침 알아본 태권도장과는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다만, 하교 후 피아노, 미술에 갔다가, 영어학원에 가는 날은 차량을 타고 영어학원으로 다녀와야 했고, 그 후 태권도까지 있다가 집으로 오면 되는 일정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피아노학원 부원장님께서 영어학원 가는 날은 차량을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시기로 해서 일단 그렇게 초롱이의 1학년 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교 후 매일 피아노학원에 가는 것은 물론, 시간을 더 보내야 하니 어떤 날은 하루에 2시간씩 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자연히 초롱이는 피아노를 남들보다 좀 더 빠르게 진도를 나가게 되었고, 스스로도 피아노를 어느 정도 치는 것에 너무 자신감 있어하고 좋아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피아노를 치면 떨려하고 실수가 많아서 조금 늦은 3학년 때부터 콩쿨에 나가기 시작했고, 두 번의 콩쿨에서 초롱이는 모두 높은 상을 받았다. 첫 콩쿨에서는 4등에 해당하는 특별상을 받았고, 두 번째 콩쿨에서는 조금 더 잘한 3등 상을 받았고, 심사위원평으로 연습을 충분히 많이 했고, 더 난이도가 있는 곡도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아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너무 떨리는 콩쿨이었지만, 무대 공포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초롱이는 연습보다 실전에 훨씬 강한 아이였고, 실수 없이 곡을 잘 쳐낸 덕분에 얻은 결과였다.


나 역시 초롱이가 너무나 대견스러웠고, 문득 어릴 적의 내가 그리고 나에게 피아노를 계속 배우게 했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내가 중학교 1학년때까지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피아노 학원이 많지 않았었다. 우리 집에서 한참 멀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엄마는 20여분을 걸어가야 하는 거리에 있는 학원을 굳이 다니게 하셨다. 사실 내가 지금 초롱이의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봐주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은 내가 그때까지 피아노를 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릴 적 나는 엄마와 아빠의 회사 일로 이모손에 자랐었다. 교육열이 강한 이모는 엄마를 봐서라도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는지 그 당시 생각으로도 엄청난 치맛바람으로 나와 동생을 가르쳤다. 내 기억으로는 유치원 때였던 6,7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었고, 학교에 입학하고서는 7시에 일어나서 1시간 동안 피아노를 연습하고 학교에 가야 했다. 매일 그렇게 피아노를 치니 당연히 콩쿨 대회에 나가면 항상 입상을 하고 동상, 우수상, 최우수상등 다양한 상을 받아서 트로피를 받아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렇듯이, 그 시절의 나 역시 어른들이 하라고 하는 데는 무조건 하기 싫어하는 행동을 보였던 것 같다. 이모는 조카인 아직 초등 1, 2학년이었던 내가 각종 콩쿨에서 입상을 하니 동네 지인분들께 늘 자랑하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동네 지인들이 놀러 오시면 꼭 나보고 피아노를 쳐보라고 했고, 나는 그때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했다. 한두 번의 이런 일들이 이어지자 나는 꾀를 부리기 시작했고, 중간 부분을 동강 잘라내고 처음과 끝을 연주하고 다 쳤다고 하면서 나가서 거실에서 책을 보고 놀았다.


“윤경아, 너 왜 요즘 엘리제를 위하여가 좀 짧다??”


아니라고 했지만, 이모도 나의 꾀를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엄마 역시, 회사에 다니신다고 우리에게 더 신경을 못써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대부분 동생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셨다. 하지만, 피아노는 싫다고 해도 꼭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지나고 단독주택들이 모여있던 반포동 어딘가의 피아노개인레슨 하시는 선생님 댁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싫었고, 돌아오는 길은 날아갈 것 같았다. 선생님은 단독주택에 레슨실을 꾸몄고, 큰 방에는 선생님과 레슨 하는 곳, 작은방 두어 개에는 연습실로 꾸며져 있었다. 그 집에는 큰 개를 마당에서 키웠는데, 그 개를 피해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섭기도 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지 싫은 추억도 아니었는데 나는 온갖 핑계를 다 대어가면서 결국엔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아마도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를 해야 하니, 피아노 말고 컴퓨터학원에 다니겠다고 말을 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초롱이가 연습하는 것을 보고 대충 치는지 잘 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은 그 예전 나 역시 엄마에게 이끌려 배운 피아노 덕분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초롱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주위에서는 모두들 피아노 전공을 할 것도 아닌데 왜 배우게 하냐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초롱이에게 피아노를 그만두게 하고 싶지 않다.


30여 년 전의 엄마 역시 나를 보며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악기 하나는 폼나게 다룰 수 있으면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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