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이렇게 땀을 흘려?”
그날은 그렇게 덥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엄마는 이미 땀으로 머리가 젖었고, 얼굴에서도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는 것이다.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집에 있었는데 땀이라니 나는 이상하기만 했다.
“엄마,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무슨 한여름도 아니고 땀을 이렇게 흘려?”
“너도 나이 들어봐! 정말 나도 죽겠다 죽겠어”
사실 엄마는 땀을 거의 흘리지 않는 체질이셨다. 엄마를 닮은 나 역시 땀을 잘 흘리지 않았기에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등산을 하거나 해도 땀 한 방울이 살짝 흐를 정도였지 땀으로 머리가 젖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니 나는 이상하다 못해 걱정이 되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엄마의 갱년기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 가족에게 이미 많은 일들이 터지고 있어서 엄마의 갱년기를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날들이었고, 온 가족이 예전의 여유로운 생활을 추억하기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다음 학기 등록금을 준비하고, 생활비를 마련하는 일들만 생각하느라 엄마의 갱년기를 그렇게 물 흐르듯이 넘겨버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직장생활을 시작한 우리는 엄마에게 더욱 의기양양하게 잘난 척을 해대던 날이 이어졌다. 마치 내가 회사를 다녀서 우리 가족들이 생계를 책임진다는 듯이 말이다. 그 당시의 나는 왜 그렇게 철이 없었는지, 후회스럽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 대가로 지금의 내가 이른 갱년기를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엄마는 오른쪽 귀 옆으로 항상 땀 줄기가 흘러내렸다. 조금 날이 덥거나 습하면 머리는 두피에서 땀이 나서 젖어서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을 때도 많았다. 그렇게 엄마는 생전 땀이라고는 모르고 사시다가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 땀과의 전쟁을 홀로 치르고 계셨던 것이다.
게다가 손발은 차가우니 양말을 신고 있어야 하고, 머리는 젖어 있으니 감기도 쉽게 걸리기 십상이었고, 그 당시의 나는 모든 게 다 못마땅했었다.
“엄마, 몸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아프면 병원에 좀 가!”
어떻게 그렇게 비수 같은 말을 척척 내뱉고 회사에 간다는 핑계로 나가버릴 수 있었는지… 그때의 나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둘째를 낳고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증상이 발견되어 초기에 수술을 했지만, 너무 방심한 탓인지, 병원에서 치료를 잘 못한 탓인지 나는 임파선에 전이가 되었고, 치료를 위해서 40대 중후반의 이른 나이에 난소제거를 해서 이른 폐경을 맞았고, 자연스럽게 갱년기가 남들보다 10여 년 빠르게 찾아왔다.
선생님의 우려와는 달리, 우울증을 포함한 갱년기 증상이 딱히 없었다가 올해 여름부터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유도 알 수 없이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아졌다.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땀이다.
나 역시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 아니었는데, 가만히 있어도 얼굴에서 땀샘이 폭발하는 것 같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아이들 등교준비만 했는데도 내 얼굴은 이미 땀으로 뒤범벅이다.
땀이 많은 남편과 둘째도 아무렇지 않은데 나 혼자 땀으로 범벅인 얼굴을 거울로 보자니, 또 화가 나는 갱년기를 톡톡히 보내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중이지만, 아마도 이 증상이 점차 심해지면 나도 엄마처럼 머리가 젖어 있거나, 귀 옆으로 줄줄 땀이 흐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갱년기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은 치료 중인 나에겐 그림의 떡 같은 존재이니, 나의 갱년기는 나 스스로 비타민이나 건강보조식품 없이 견뎌야 하는 나를 보니, 엄마가 왠지 말하는 것 같다.
“엄마가 말했지? 너도 내 나이 되어 보라고!”
이렇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