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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마 Dec 09. 2024

종합비타민 눈치게임

배부장의 육아일기

"엄마, 나 고백할 거 있어."


"그래, 뭐야? 말해봐 괜찮아!"


"엄마, 오늘까지 말하는 건 다 용서해 주는 거 맞아? 그런데 오늘 내가 다 생각 안 나면 어떻게 해?"


"괜찮아, 엄마가 용서해 줄게, 대신 앞으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는 거다!!!"


초롱이의 고백은 실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얼마 전, 우연히 초롱이의 거짓말에 대해서 알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내가 1+2로 세일을 하는 구미형 멀티비타민을 잔뜩 사 두었는데, 사실 맛이 어떨지도 모르면서 믿을만한 브랜드에서 하는 세일인데 1+2라고 하니 나로선 득템 한다는 기분으로 몇 달은 먹을 것을 잔뜩 구매해 두었었다.


'그래, 브랜드도 있고 하니 당연히 맛도 좋겠지, 이 가격에 1+2라니 이게 웬 횡재람!'


아이들이 먹는 멀티비타민이니 어느 정도 맛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이들은 개별 포장되어 있는 비닐을 뜯어서 입안으로 넣어서 먹어보았는데, 표정이 밝지 않았다. 평소라면 엄마, 하나 더 먹을래를 말해야 하는데 그냥 아무 말도 않고 입 안에서 사탕 녹여 먹듯이 돌돌 돌리고만 있는 모습에 살짝 의심이 들었다.


나중에 아이들 몰래 하나를 까서 입안으로 넣었더니, 내가 그렇게 많이 쟁겨놓은 것이 잠시 후회가 되었다.


'남편에게도 이런 기회 없으니 무조건 소비기한 끝날 때까지 먹을 것 다 쟁겨 두어야 한다고 큰소리를 땅땅 쳤는데, 큰일이네, 일단 모른 척해야겠다.'


그렇게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이들과 비타민 눈치게임이 시작되었다.


"초롱아 비타민 먹었어?"



"응 엄마, 아~"


입안을 보여주며 멀티비타민을 보여주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깜박 속고 말았다.






내가 이 모든 것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것은 몇 달이 지난 후였다.


자꾸 거실소파아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손이 들어가는 부분만 소파 아래로 넣어서 쓰윽 쓸어보았다.


"헉! 이게 뭐야!!!"


이제까지 개미가 안 꼬인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소파가 무거워서 들지 못했지만, 남편이 알기 전에 내가 먼저 알아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 아래는 마치 어마어마한 음식물쓰레기장의 한 귀퉁이 같았다. 그러니 자꾸 거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도 당연했다.


제일 먼저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말라비틀어진 김밥, 아침으로 준 카스텔라 조각, 빵조각들이 가득했다.

카스텔라는 러스크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돌덩이 처럼 되었고, 김밥은 그 상태로 자연건조가 된 것 같았다.


나를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손가락이 닿는 대로 꺼내는 데 끝도 없이 나오는 멀티비타민이었다.

그냥 세어도 한 박스는 넘을 것 같은 그 비타민에 너무나 놀랐고, 끓어오르는 배신감과 화를 어떻게 삭여야 하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놈들을 그냥 두나 보자!!!


학원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모처럼 일찍 집에 와 있었던 엄마를 본 아이들은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반갑게 나를 불렀다.



"엄마! 우리 왔어!!! 오늘 저녁은 뭐야?"


"너희들 이리로 안 와?????? 이게 뭐야!!!! 이걸 왜 다 소파 밑으로 쑤셔 넣었어????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거야!!! 아침으로 준 빵은 왜 안 먹고 다 밀어 넣었어!!!!

음식을 버리면 벌 받는 거 몰라?????? 아프리카 아이들은 빵 한 조각 못 먹어서 굶어 죽는데, 너희들은 이게 뭐야!"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나니, 나 역시도 맛이 좋지 않았던 그 멀티비타민을 생각하면서 알겠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도록 하자를 다짐을 받았다.


그 이후로 나는 초롱이와 초콩이의 입 안에 멀티비타민 구미형을 넣으면서 바로 이빨로 씹게 했다.

사실 이빨로 씹으면 구미형이라서 바로 흐트러져서 삼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방법이 통하는 줄 알았다. 초롱이의 고백을 듣기 전까지는.



"엄마, 나 사실 비타민 입으로 씹은 다음에 화장실 가는 척하고 다 변기에 버렸어.....

엄마 정말 미안해.. 그런데 정말 그것 먹으면 속이 안 좋아......"



웃어야 할지, 아니면 또 화를 내야 할지 모르는 내 얼굴을 보면서 초롱이가 묻는다.



"엄마, 이거 앞으로는 안 버리고 먹도록 노력해 볼게.... 얼마나 남은 거야?????

이게 끝인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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