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꽈사 Aug 27. 2023

[난임일기|04]시간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동탄의 삼신할아버지를 찾아서


작년 10월, 두 번의 자연임신 시도 실패 후 멘털을 잡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나는, 8개월 만에 다시 같은 난임병원을 찾게 되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며 기다린 '병원의 도움을 받지 않는 임신시도'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시간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랬다.


이번엔 이 구역의 삼신할아버지로 불리는 원장선생님으로 지정하여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원장님의 유명세만큼이나 대기가 길었지만, 퇴사로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기에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말에는 기본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대기가 필수였으나, 평일 오전 일찍 가니 대기가 길지 않았다)


사실, 차병원이나 마리아병원 계열 또는 근처 제일병원 같은 유명 대형 병원으로 다녔을 수도 있지만, 메이저 병원은 평일에도 대기가 길다고 들었고, 내 이전 기록들이 이 병원에 있어 전원 생각은 고려하지 않았다.


원장님과의 진료 첫날, 지난 1년 동안의 시도들을 연표로 작성하여 정리해 전달드렸다. 그리고  20대부터 자궁내막증 치료로 인해 호르몬제를 장기복용 했기에, 30대에도 연이어 '인공적'으로 호르몬을 조절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으로 인한 또 다른 호르몬 장기사용이 10년 뒤 또는 20년 뒤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니 두렵다고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최근까지도 페마라를 복용했었고,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은 과배란이 거의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시술인데, 다짜고짜 '인공적'인 호르몬 조절은 싫지만 임신은 하고 싶다는 내가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 싶다..(ㅎㅎ)


하지만 원장님은 인자한 미소로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셨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과 오해들을 차분하게 설명해 주신 뒤, 내가 원하는 '자연스러운 임신시도' , 다시 한번 '페마라+자연임신'을 시도해 보자고 방향을 잡아주셨다.




마지막 자연임신 시도, 그리고 그 결과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네 번째 '페마라+자연임신' 시도도 실패로 끝났다. 


이번엔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1) 난포 크기 합격

2) 처음으로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지 않고도, 난자가 스스로 잘 배란 돼 주었다.(처음이었다) 

3) 남편도 많은 노력을 해왔기에, 다시 실시 한 정자검사 결과가 확연하게 좋아졌다. 

4) 숙제의 타이밍도 완벽했고 +물구나무도 열심히 했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5) 숙제 후에 착상에 도움이 되는 주사까지 맞았다. 


이번에는 정말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선의 준비에 대한 결과는 실패였다. 


시도 직전 실시한 남편의 정자검사 결과가 좋았기에, 이번 실패의 원인은 빼도 박도 못하게 '나'라는 생각이 들어 자책감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성격상 내 탓을 하는 것이 제일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원장님도 희미한 두줄조차 보이지 않았냐며 아쉬워하셨다.


하지만 실패라는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기에, 바로 다음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배주사를 맞지 않는 인공수정을 시도하고 싶다고 했다. 원장님도 다낭성인 내가 배주사를 진행하면 난포가 과하게 많이 자랄 수 있다고 하시며, 이번에도 '페마라'를 처방해 주셨다.


물론 인공수정 성공 확률이 자연임신의 성공확률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도 알고 (원장님 피셜 자연임신은 6%대, 인공수정은 최대 15%대 정도의 성공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인공수정을 스킵하고 시험관으로 바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은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험관을 시작하기에는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스스로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나를 너무 몰아세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인공수정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게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조금이나마(?) 알려준 사랑스러운 친구                                


작가의 이전글 [난임일기|03] 난임병원, 퇴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