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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곧을 정 Sep 25. 2021

변한건 너가 아니라 나였다.

앞자리가 바뀐건 나이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오게 되는 말 중 하나는,

삼십대의 연애는 왜 이십대 같지 못할까?

라는 말이었다.


요즘 남자들은 이십대 처럼 뜨겁지도 않고

뭐든지 다 해 줄 것만 같은 그 열정은 어디갔을까?

우리도 왜 머리가 커질 수록 그때와 같은 사랑을 하지 못할까?


이런 주제들이었다.


문득, 아직까지 마음 속에 남아있는 나의 첫 남자친구와의 연애가 떠올랐다.

눈떠서 잘 때까지 함께 모든 걸 공유하는 게 당연했고, 자연스러웠고, 행복했다.

둘다 학생 때라 너의 연봉이 얼마인지 머릿속에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도 없었다.

물론 어릴 때의 사랑이 다 그렇다고 일반화 시킬 순 없지만, 내가 만났던 참 좋았던 그이와의 이십대 첫연애는 그랬다. 


이제는 누구와 소개팅을 하더라도, 직업을 먼저 묻게 되고

심지어는 집안이 어떤지도 하루빨리 파악하려고 하는 내가 피곤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사람만을 바라보았을 때가 그 순수했을 때가 그리웠다.


머리를 쓰고 각을 재는 만남을 하다보니 지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말했다. 똑똑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십대의 사랑은 무모하다고. 내가 그랬고, 지금 이혼의 아픔을 겪고 있다고.

똑똑한 사랑은 나쁜 게 아니라고. 


내가 속물일까

너가 속물일까

전의 순수한 연애로 돌아갈 순 없을까

너도 왜 이십대의 남자의 열정을 보여주지 않을까


흑과 백의 논리에서 내가 너무 썩었다. 라는 자책감을 하던 중

그저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순수하게 사람만을 보기에는 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름의 데이터베이스가 쌓여 버렸고, 최대한 실패를 면하기 위해 혹은 시간낭비 혹은 상처를 줄이기 위해 경험으로 터득한 방법들이 나오는 것 뿐이라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우주와 우주가 만나는 일이라 나의 인생에 하나의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기에 아무나 만날 수 는 없다고. 그게 속물적인 게 아니라, 경험으로 특화된 것이라고. 그렇게 나 자신을 덜 괴롭히기로 마음먹어갔다.


그러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첫연애의 순수했던 달콤함에 갈증이 말라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발렌타인 데이는 챙기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런거 챙기지 않는다며 의미없다며 손사레를 치고 넘겼다.

갑자기, 문득 말도 안되는 초콜렛 공장에 가서 초콜렛칩을 싸게 떼오고 집에서 친구들과 열심히 만들던 그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생일 당일 이지만 잊고 있었던 나와 이미 선물을 줬으니 끝났다고 말하는 나에 모습에서

스케치북에 메세지를 담아 집밖에서 러브레터로 생일축하 이벤트를 해주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누구보다 사랑에 진심이었고, 뜨거웠고, 열심히였던 나의 순수하고 행복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늘 나의 지금 사랑이 뜨겁지 못한 건 너가 이십대의 사랑이 아니라 그렇다고 생각했고,

내가 왜 널 지나간 이들처럼 뜨겁게 사랑하고 쏟아붓지 못할까 생각했을때 그저 너가 나에게 이십대의 사랑처럼 다 보여주지 않아서 라고 생각하고 괴로워 했다.


문득, 이벤트의 여왕이었던 그때의 나의 모습과 생일에 선물을 미리줬으니 다 끝낸 숙제라고 생각하는 나의 극명하게 대립되는 모습이 나의 뒷통수를 크게 때렸다. 


내 로맨스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의 잘못된 두번째 연애에서 배운 잘못된 마음가짐일까?

아니, 그 이후에도 구멍난 내 마음을 매우고자 아무거나 집어서 넣었던 이들에 대한 삐딱한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 걸까?


내가 만약, 쭈욱 나를 귀하고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해왔더라면, 

그때의 그 마음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것은 다 마음에서 나오고 모든 생각은 누가 나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인데, 내가 무언가를 어디서 부턴가 잘못 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렇게 사랑하고 연애하고 싶지는 않다.

내 생각으론 내가 마음이 문을 많이 열었다고는 했지만, 늘 생각했다. 말했다.

상처받기 싫다고.

누가 상처받고 싶은가..


진정으로 나는 마음을 첫 연애처럼 열지 못한 채 그런채로 만남을 해왔다.

기대를 했다가 혼자 기대를 져버리는 일을 다시 또 하기 두려웠고,

내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 하면서 상대를 생각하는 일은 미래의 아픔일 거라 생각했다.


생일 한달 전 부터 무엇을 입을까 무슨 이벤트를 해줄까 했던 나의 옛모습은

헤어지면 다 신기루 처럼 사라져 버렸던 연애의 이면에서 

지금의 연애는 적당히 하게 되는 양상을 보여준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제야 생각해보면 신기루가 되어버린 추억이지만 

마음을 온전히 다 내어주었던 그때의 연애 그때의 나 그때의 우리가 참으로 건강하고 멋있고 아름다워 보인다.


변한 건 너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도 나처럼 같은 사람일 뿐이었고, 그저 나보다 더 용기내 손을 더 내미는 사람일 뿐이었다.


변한 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건 나였다. 


조금 더 그때의 행복했던 나 자신의 모습을 곱씹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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