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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Oct 30. 2019

#9. 이모님, 그녀를 찾습니다.

둘째 출산 후 겪어본 이모님과의 생활 후기

도대체 누굴까 그녀는


아이를 낳는 친구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새롭게 등장한 존재가 있다. 바로 이.모.님.


나는 첫째 아이를 낳은 뒤 3개월의 출산휴가와 1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했기에 이모님 없이 육아에 전념했지만, 주변 친구들 중에는 복직, 혹은 경제적 여력 등의 이유로 이모님과 함께 육아 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꽤 많았다. 친구들의 대화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이모님과의 삶을 이해했던 나에게 이모님의 존재란 궁금증 그 자체였다.


그런 나에게도 둘째의 탄생으로 인해 이모님과 함께하는 육아 생활이 시작되었다. 야근이 많은 남편의 일 특성상 나는 평일에는 완전한 독박 육아를 담당하고 있었고 (남편은 밤마다 집에 스쳐감), 첫째와 둘째의 터울은 고작 20개월로 어찌 보면 연년생과 다를 바 없었으며, 양가 부모님에게 큰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모님은 당분간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모님 당신이란 사람은.
빛과 소금?


신생아 케어에 전문적인 산후도우미가 집을 나가고 여러 번의 면접을 거쳐 고심 끝에 고른 중국 교포 이모님이 집으로 들어오던 날이었다. ‘이렇게 어린 아기를 잘 봐줄 수 있을까. 아기들은 워낙 빨리 커서 어린 아기를 돌본 기억은 나부터도 까마득한데. 교포 이모님들은 한식 음식 준비에 약하다던데 음식은 잘하실 수 있을까.’ 다양한 걱정에 휩싸여 이모님을 맞이했지만 이 모든 근심이 무색할 만큼 이모님의 아기 돌보기와 가사 일은 전문적 수준이었다.


집에 들어온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 아이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고, 그간 식당에서 일당 뛰며 음식을 배운 경력으로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엄마 보다도 맛있게) 거의 모든 한식을 뚝딱뚝딱 차려내셨다. 게다가 시간이 날 때면 옷장 정리에 화장실 청소까지 수시로 해주시니 나는 첫째 아이와 놀아주는 것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게다가 이모님의 쾌활한 성격 덕분에 말 못 하는 아이와 집에 남겨졌을 때 느꼈던 외로움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교포 이모님들에게 궁금했던 중국 생활 이야기도 물어보고 다른 집의 육아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필요할 때 늘 대화할 수 있는 수다 상대가 생기니 육아 생활이 지루하거나 심심하지도 않았다. 친구들과의 브런치 약속도, 병원 방문도, 운동 시간도 첫째 바다가 어린이집을 간 시간 내에는 자유로운 개인 생활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이 친구들에게 말로만 듣던 마약보다 끊기 어렵다는 이모님 중독인가.. 유일한 단점이라곤 꽤 비싼 임금이란 비용뿐. 그녀는 말 그대로 육아 생활의 빛과 소금이었다.


하룻밤 꿈이었나.
연기처럼 증발하다.


그렇게 행복하고도 행복했다던 Fairy tale 같은 이야기에 파국이 닥친다. 바로 이모님이 그만두어야 한다는 소식. 아들 결혼식 준비를 위해 중국으로 가셔야 한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어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으로 말을 끝맺었다. 현재 이모님에 대한 만족도 최상이었던 나로서는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오실 순 없냐며 이모님을 달랬지만, 이모님은 일정이 길어질 수 있고 본인의 나이가 많아 점점 자신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 가므로 (보통 60대 보다 50대 시터에 대한 선호도가 높으나 현재 이모님은 62세임) 다음에는 한번 들어가면 오랫동안 있을 수 있는 가정집으로 골라 들어가고 싶다며 완곡히 제안을 거절했다.


첫 이모님인지라 명절 때 들어온 과일도 잔뜩 나누어 드리고, 자이글을 구하시는 것 같길래 겨우 한두 번 썼을 집에 있던 중고 자이글도 가져가시라고 드리고, 마음도 많이 나누어 드렸거늘... 물론 이모님도 둘째 100일이면 내복에, 첫째 생일이면 머리핀에 아기들을 위한 선물도 사 오시며 성심껏 아기들을 보살펴 주셨던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자꾸만 커지는 서운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모님 좋아도 너무 믿지는 말라던 친구들의 또 다른 조언을 새삼 체감했다.


울지 마 캔디.
다시 구해보는 거야.


이대로 망연자실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러 소개소에 구인 조건을 내고 다시 이모님을 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이전 이모님이 너무 좋으셨던 걸까. 그만한 분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루 걸러 2명의 이모님이 거쳐 가고, 둘째에게 양육자가 바뀌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못내 미안해 마음도 지쳐갈 무렵, 드디어 세 번째로 맞이한 이모님과의 하루를 보내고 이분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쌍둥이를 신생아 때부터 5살까지 키우고, 그 외에도 어린 아기들을 다수 보았던 경험이 있으신 새 이모님은 내가 가장 중점을 두었던 기준인 둘째 아기 보기에 능숙한 분이셨다. 이전 이모님 만큼 최상 등급에 가까운 요리 실력을 보유한 분은 아니셨지만 간간히 하는 반찬이 괜찮은 편이었고, 차분한 성격으로 그다지 수다스럽지 않고 꼼꼼한 편인 내 성격과도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분이었다. 휴우. 우선 한숨을 덜었다.


육아의 주인은 부모


이모님이 있으면 이모님이 아기를 다 키워준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이모님은 우렁각시 처럼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존재다. 결국 육아의 주인은 엄마와 아빠. 늘 아기를 향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변화하는 성향과 컨디션을 확인하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육아를 이어가는 것. 엄마의 기본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엄마가 늘 너희 곁에 두 발 꽉 디디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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