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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10. 2019

#3. 카네이션, 꽃을 따라 흐르는 마음

어버이가 되고서야 이해하는 어버이 은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하지만 실상 많은 기혼인들이 5월을 가정의 달이라 쓰고 가정 파탄의 달이라 일컫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에 혹시 다른 가족행사가 더 있기라도 한다면, 버거운 지출 부담에 더해 양가 방문으로 인해 주말을 온전히 우리 가족끼리 자유롭게 보낼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러한 의견에 때로는 공감이 가기도, 또 공감이 안 가기도 했다. 그런데 내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 작은 이벤트가 바로 엊그제 발생했다.
 

 어린이집에서 하원 하는 세 살 딸의 작은 손에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 한송이가 들려져 있었던 것. 그동안 어버이날이면 꽃 한 송이라도 사서 부모님께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종종 대며 마음이 바쁘기만 했던 내가 어버이가 되어 생애 첫 카네이션을 받은 것이다. 물론 아이에게 카네이션 만들기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습자지를 구기며 논 놀이였을 뿐이고,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쓴 문구는 모두 선생님의 작품이었겠지만 내가 부모로서 주었던 우주 같은 사랑을 아이가 마치 조금이라도 이해해 준 것만 같아 나는 남은 그 하루 내내 행복했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이 진부한 노래 가사를 이해하기까지 3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흔히 듣던 ‘나중에 너도 너 같은 딸 낳아 키워봐라’ 대로 날 닮은 (정확히 외모로는 피부 빛깔과 눈, 눈썹, 이렇게 얼굴의 딱 반 정도는 나를 닮은) 딸을 낳고 보니 나는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사랑을 아이에게 주고 있었다.

  그동안 나의 이런 사랑을 아이가 알아주길 바란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생명을 준 것은 나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한의 온 책임을 다해 아이가 사회 속에서 안정적으로 밝게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싶었고,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에서의 행복함으로 육아의 노고를 매일 보상받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또 진부하게도 막상 아이가 나의 마음을 알아줄지도 모른다는 착각 만으로도 나는 더 행복했던 것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마치 흐르는 시냇물 같아서 아래로, 아래로만 흐른다. 아이가 넘어져서 무릎에 생긴 작은 생채기는 하루 종일 생각이 나지만, 허리가 아프다던 엄마의 건강은 엄마의 안부를 곰곰이 떠올려 봐야 겨우 생각해 낼 수 있다. 하지만 본인들은 정작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키워냈을 것을 생각하니 겨우 어버이날이라는 형식에 갇힌 날일지라도 나의 안부 연락과 감사 인사가 얼마나 엄마, 아빠의 남은 하루를 행복하게 할지 가늠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래로만 흐르는 시냇물은 때로는 잔잔히 흐르는 지대를 만나 그동안 흘러내려온 위쪽 시냇물을 바라볼 계기가 필요하다. 앞으로 어버이날이면 아이가 가져올 작은 카네이션 한 송이가 그 표식이 되었으면 한다.


바다가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카네이션 한 송이. 작은 손으로 습자지를 구기며 즐거워 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꽃을 따라 전하는 우리의 마음.

꽃을 든 아이의 사진을 찍어 부모님께 전송해 본다.


에필로그] 바다는 자신이 가져온 종이 카네이션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만져보다 찢기 시작했다. 이 감동을 아빠가 퇴근하면 함께 나누고 싶은 엄마는 최선을 다해 바다를 말려본다. 그래, 역시 이 사랑을 알아줄 거란 생각은 엄마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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