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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별하 Sep 14. 2021

[그날 죽을걸 그랬나?] #17. 생애 첫 고백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을 하고,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14살의 2월 겨울 즈음이었다. 당시 체육관에 다니고 있던 나는 초등학교 친구들을 비롯해서 체육관에도 친구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태권도장이다 보니 여자애들보다는 남자애들이 더 많았고, 나도 자연스레 그들과 잘 지냈다.


그중에서 내가 짝사랑하던 남자애가 한 명 있었는데,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애였다. 남몰래 좋아하면서 감히 고백할 엄두도 못 내고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주말에, 당시 친하게 지내던 3살 위의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짝사랑하던 남자애랑 자기랑 오늘 놀기로 했는데, 나도 시간 되면 오라는 전화였다. 그날따라 뭔가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그 남자애도 같이 논다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약속 장소로 갔다.


약속 장소로 갔더니 언니만 와있었다. 언니가 약간 뜸을 들이더니 오늘 걔가 나를 불러달라고 해서 자기가 대신 불러준 거라면서, 할 말 있는 거 같던데, 아마 고백할 거 같다고 잘해보라며 휙 가버렸다.


남겨진 나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진정이 안돼서 심호흡을 하고 있었는데, 약 5분쯤 지나니 그 애가 왔다. 왔는데 평소처럼 인사도 못하겠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걔가 10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말도 안 하길래, 내가 답답함을 못 이기고 말을 걸려던 찰나에, 걔가 뭐라 뭐라고 얘기를 했다.


극도의 긴장상태였기 때문에 뭐라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대략 좋아하니까 사귀자는 얘기였고 나는 알겠다고 하고는 그대로 데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둘 다 너무 어렸어서 사귀기로 하고는 각자 집에 갔다.


집에 와서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계속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진정을 할 수가 없었다. 방금 내가 꿈을 꾼 건지, 너무 좋아서 주말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막상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서 체육관을 가려고 하니 너무 떨렸다.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르기는 뭐라고 불러야 될지도 모르겠고, 다른 사람들이 사귀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아니 애당초 다른 사람들이 사귄다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막상 가서 걔를 마주쳤는데,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고 애썼지만, 쳐다보지도 못하겠고 근처에도 못 가겠고 괜히 다른 애들이랑 오빠랑 놀면서 걔랑은 말도 못 했다. 생각해보니 지난 빼빼로데이에도 걔가 우리 오빠에게 주는 척하면서 빼빼로를 엄청 큰 걸 줬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나한테 준거였다.


그렇게 우리는 거의 첫 일주일 동안은 서로 말도 못 하고 부끄러워만 하고 있다가 보다 못한 언니가 왜 둘이 말을 안 하냐면서 분위기를 좀 풀어주고 나서야 간신히 서로 대화를 나눌 정도는 되었다.


그치만 그 뒤로도 너무 부끄러워서 눈을 제대로 못 쳐다보고 그랬었는데, 언젠가부터 체육관 근처에 있던 문방구에서 걔가 100원 주고 하는 게임기를 하고 있으면 내가 체육관에 가기 전에 그 문방구에 들러서 체육관까지 같이 가는 게 우리만의 데이트 코스가 되었다. 그래 봐야 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기 때문에 딱히 데이트랄 것도 없었지만 진짜 순수하게 그게 다였다. 그렇다고 손을 잡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서로 수줍어하며 나란히 걸어가는 것.




그렇게 만약 풋풋하기만 할 것 같았던 나의 첫 연애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 애한테 문자가 왔는데, 엄마한테 우리가 사귀는 걸 들켜서 더 이상 사귈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헤어지란다고 헤어졌다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 봐야 나는 14살이었고 걔는 13살이었으니 엄마 말을 안 듣기 어려웠으리라 짐작해 본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걔 엄마는 상당히 엄한 편이라고 했으니, 이제 곧 중학생 될 애가 연애를 한다는 게 탐탁지 않으셨나 보다.


결국 그렇게 나의 첫 연애는 끝이 났다. 당시에는 엄청 슬펐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웃긴다. 그렇게 순수했던 때도 있었구나 싶고, 말 그대로 풋풋함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 이상하게 나의 연애는 이 뒤로도 그다지 순탄하지는 않았는데, 그 얘기는 뒤에 차차 나온다. 첫 연애부터 어머니의 반대로 헤어지다니. 나의 스펙타클한 연애사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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