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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페 Feb 24. 2022

2번의 유산 후 깨달음

People are afraid to face how great a part of life is dependent on luck. It's scary to think so much is out of one's control.

사람들은 인생의 많은 부분이 운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두려워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는게 무섭기 때문이다.
— 영화 매치포인트


2번째 유산을 소파수술로 마무리하며 신청했던 태아 염색체 조직 검사의 결과를 받았다. 유산의 원인은 태아 염색체 기형. 8번 염색체가 둘이 아닌 셋이었다. 나와 남편의 나이, 건강 상태, 가족력 등을 종합 고려한 결과 다행히 (1) 이번 유산의 염색체 기형은 부부의 건강이나 생활 습관과는 전혀 상관없이 운에 따라 일어난 것이고 (2) 다음번 임신의 성공 여부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한다.


결국 운이다. 임신의 15-20%는 유산으로 종결된다고 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결과를 절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 좀 기운이 빠지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실 인생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성취한 것들이 오로지 내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만이다. 나를 지원해주신 부모님. 귀중한 인연들. 별 문제 없이 받은 취업 비자와 영주권. 현재 다니고 있는 스타트업 회사의 안정적인 성장.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믿음으로 나름 치열하게 살았지만 사실 운도 좋았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다음번 임신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래서 조금 두렵기도 하다. 솔직히 3번째 유산을 한다면 거기서 회복하기는 더 어려울 것 같다. 운에 맡기고 마음을 내려놓고 존버. 다시 넘어질 수도 있지만 일단 걸어보는 용기 갖기.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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