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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Jul 06. 2020

방귀에 대한 곤조

가족 앞에서도 방귀를 트지 못하는 비애

계속 방귀 타령만 한 글이라 비위가 상할 수도 있다. 각오하고 읽어달라.



내겐 희한한 곤조가 있다. 그 누구 앞에서도 방귀를 튼 적이 없고, 트지를 못한다. 비슷한 맥락에서는 친구가 놀러 와서 집에 함께 있으면 소변을 볼 때도 무조건 세면대 물을 틀어놓고, 응아를 할 때는 음악이 없으면 마음 편히 일을 볼 수 없다. 밖에 있는 사람이 너무 신경 쓰이는 것이다. 이건 연인도 마찬가지고, 동성 친구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우리 엄마여도 그렇다. 평소에 털털하고 걸걸한 이미지인 내가 이런 식스센스급의 반전이 있다는 건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왜 이런 곤조가 있는지 당최 모르겠다.


대학생 때 만났던 남자 친구 중 한 명이 유일하게 내 앞에서 방귀를 뿡뿡~ 뀌던 사람이었는데, 처음으로 만난 나이 많은 오빠라 잡혀 살 때였다. 그가 갑자기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린 상태로 버튼처럼 눌러 달라고 눈짓을 하던 순간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휴 참~”하면서 그 버튼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고 눌러주곤 했다. 뿡~ 방귀를 뀐 후에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이란... 냄새가 많이 나는 편은 아니어서 참고 만날 만 했지만 정말 오지게 싫었다. 삼십 대가 넘은 지금 난, 연애하는 상대에게 사전에 정확히 말한다. “난 방귀 못 터. 실수는 상관없지만, 내 앞에서 맘 놓고 뀌는 건 싫어.” 만나는 상대가 내 앞에서 방귀를 마구 뀌어대면 진지하게 묻고 싶어질 것 같다. “넌... 내가 우습니?” 세상에, 방귀 좀 뀌었다고 우습냐고 묻는 우스운 꼴이라니...  엄지손가락 남자만 빼고, 만났던 모두가 감사하게도 내 곤조를 존중하고 지켜준 덕에 말도 안되는 저런 질문을 한 적은 없다. 다행히.  


여동생과 한 방에서 함께 자취하던 일 년의 시간도 그랬다. 동생은 내 앞에서 똥꼬의 자유를 만끽했지만, 난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것에 집중해서 방심한 사이에 “뿌우~웅~”하고 방귀가 나왔다. 당황한 나는 벌떡 일어나서 동생한테 “으악! 진짜 미안해. 언니가 모르고 뀌었어.”소리쳤다. 동생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게임을 하면서 “응. 알았어.”심드렁하게 답했다. “내가 앞에서 방귀 뀐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진짜 부끄럽네.” 횡설수설을 늘어놓자 동생이 핸드폰에 시선을 그대로 고정한 채로 충격적인 말을 했다.


“뭔 소리여~ 언니 잘 때 맨날 방귀 ‘뿡뿡’ 뀌는데.”

!!!!!!!!


충격이었다. 내가 잘 때 방귀를 뀐다니!! 회사에서도 못 뀌고, 집에 와선 동생이 있으니 못 뀌어서 잠을 자면서 무의식적으로 느슨해진 상태일 때 뀌는 것이었다. 이미 내가 동생에게 방귀를 텄다는 게 1차 충격이었고, 잠을 잘 때 낮에 못 뀌었던 방귀를 모아서 배출하고 있었다는 건 더 충격적이었다. 이토록 타이트한 삶이라니.


혼자 살고 있는 지금, 방에서 자유를 가장 만끽하는 순간은 바로 그런 때다. 무념무상으로 방귀를 “부웅~”하고 질러버릴 때! 침대에서 자다가도, 아침에 일어나서, 방을 걷다가,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가도 그냥 마구 껴댈 때 ‘혼자임’을 찬양한다. 서른여섯, ‘혼자 사는 삶에서 가장 자유를 느끼는 순간 = 방귀 뀔 때’라는 건 뭐랄까... 말하기 꺼려지는 사실이다. 내가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된 거지? 마음껏 방귀를 뀔 수 있는 상대를 만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인 걸까? 그렇게 내 운명의 짝을 결정해야 하는 건가?


“마음 놓고 방귀 뀔 수 있는 사람은 내 인생에 네가 처음이야... 넌 내 운명...”


하고 싶은 말은 기어이 다 하면서, 방귀는 타인이 불쾌할까봐 뀌지 못하는 아이러니함이여, 이런 내가 정말 범상치 않다고 느껴지지만, 뭐... 싫진 않다. 나의 특이함, 곤조, 내숭, 이 모든 게 나니까, 남 앞에서 무신경하게 방귀 한 번 껴보지 못하고 죽는 게 큰 이슈는 아니잖아? 훗.



혹시 누군가  같은 곤조를 갖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보를 받습니다. 가족 앞에서도 방귀  뀌는 사람은 아직 만난 적이 없어서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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