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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Aug 14. 2020

소개팅 성공법 (좀 알려주세요)

나는 소개팅이 어렵다.

“소개팅 해 볼래?”

세상에.. 30대 후반 솔로 시장이 아직도 있다니...

숨겨져 있던 니치 시장에 한 번 놀란다.


친한 동생의 소개팅 제의에 “아직은 나 혼자 있고 싶어”했더니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여유 부리지 말고, 그냥 만나봐.”한다. 냉정한 것!


“소개팅하면 3번 만에 사귄다며? 난 그렇게 쉽게 누구 사귀고 싶지 않은데..”친한 친구 녀석에게 말하자

“겨움아.. 너 왜 김칫국을 마셔.. 그 남자들이 다 너랑 사귀어준데?” 해서 한참을 웃었다.

그래, 지금 내가 그렇게 young 한 나이도 아니고, 소개팅 한지도 7년은 돼서 감도 없는데 말이야.


“겨움아, 내가 젊을 때 (친구는 결혼했다) 소개팅했던 남자들 중에 실종된 남자들이 한 다스야. 소개팅 후에 실종돼 본 적 있어? 남자들이 연락이 안돼. 너도 그렇게 실종되는 남자들 분명 생길 테니까 김칫국 마시지 말고 그냥 만나. 우선. 만나고 생각해.”


소개팅 후에 실종되는 남자들이라.. 영화 소재구만.


태어나서 소개팅은 딱 3번, 20대 후반에 해 봤다. 소개팅 자리에 예의를 갖추기 위해 평소에 안 입던 치마도 입고 힐도 신으면 상대가 날 너무 여성스럽게 보진 않을까 불안했다. 나는 사실 길에서 음악이 나오면 궁둥이를 마구 흔들고 움칫 움칫거릴 수 있는 골 때리는 여자인데 말이다. 내게 그런 골 때리는 면이 있음을 알려줘야 상대가 진짜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오버하고 조급하게 굴었다. 예를 들면, 세 번째 만났던 자리에서 “노래방 가실래요?” 한 다음에 노래방에서 친한 친구들하고만 부르는 ‘세종대왕이 떡볶이 먹었대(이런 노래가 진짜 있다.)‘, ’ 룩셈부르크’, 체리필터의 ‘헤비메탈 콩쥐’, 미친 퍼레이드 3종 세트를 완곡했더니 남자분이 탬버린을 들고 치다가 멈춘 채로 “정말 잘 노시네요. 멋지세요.”라고 말하고 실종되었다.


실종된 그 남자에 대해서 말했더니 그건 내가 ‘너 마음에 안 들어’라고 말한 거랑 똑같다면서, 어쩜 그리 잔인할 수 있냐고 핀잔을 받았다. 남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거다.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머리를 긁적이고 있자 소개팅을 20번 정도 해봤다는 동생이 손을 꼭 잡으며 조언해 줬다. “언니, 애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시간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굴어야 해요. 너무 조급하게 언니가 굴면 상대도 달아나요.”


그래. 내가 또 소개팅을 한다면 이번에는 그냥 시간의 흐름과 의식의 흐름에 나를 맡기리라!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지만 30대 후반의 연애에서 참으로 이상적인 태도다. 소개팅을 좋아하지 않는 건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다. 물론 나는 쾌활하고 낯을 가리는 편이 아니라서 남들이 보기엔 굉장히 유연하고 능숙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근데 그 자리에 가기까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목적을 갖고 서로를 탐색하고 재고 따지는 시간들이 마치 마트에서 예쁜 귤을 고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 같다. 부자연스럽다.


“주말엔 뭐 하세요?”

“음식은 뭐 좋아하세요?”

“취미는 뭐예요?”


이런 수학의 정석 같은 질문 말고


“상대가 어떻게 해 줄 때 사랑받는다고 느끼세요? 모든 걸 함께 하는 게 좋으세요? 아니면 각자의 공간이 있는 걸 좋아하세요?”

“꿈을 좇겠다고 친구가 회사를 관두겠다고 하면 뭐라고 하실 것 같아요?”

“화가 났을 때 상대가 어떻게 해 주는 걸 좋아하세요? 풀어줘야 해요? 아니면 혼자 둬야 해요?”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있다면, 뭐예요?”

“편안함을 추구하세요, 아니면 편리함을 추구하세요?”

“살면서 가장 아팠던 기억이 뭐예요?”

“아파트 굳이 안 사고, 캠핑카 타고 여행 다니며 사는 삶은 어때요?”

“여행 스타일이 어떻게 되세요? 도미토리에서 자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이런 질문이 하고 싶다.


그러면 상대가 ‘이 여잔 뭐지?’하고 부담스러워서 실종되는 거 아냐? 아.. 나는 그냥 나대로 살고 싶은데, 특이한 점들이 보일 때마다 심히 고민스럽다. 소개팅을 하면 처음에 꼭 남자가 밥을 먼저 사고 여자가 커피를 사는데, 난 내가 그냥 밥 사고 싶기도 하고. (남녀평등을 겁나 외치면서 왜 이런 지점에선 늘 남자가 더 쓰기를 바라는지 이해 안 됨), 그럼 또 자존심 상해할라나? 이렇게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다 보면.. 내겐 보통의 누군가를 만나긴 어려운, 어렵다기보다는 녹록지 않은 면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웃긴 건 나이가 들수록 어렵고, 싫은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 살의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포옹력있고 넓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절대(네버) 싫은 것들이 생기면서 바운더리가 좁아지는 기분이다. 인간 관계도, 삶의 영역도, 실제 내 마음의 크기도 그렇다. ‘혹시...그런건가?’ 보다 ‘그거네. 그거야!’하는 태도를 자주 취한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의 아웃라인이 선명해진다. 그런 선들 때문에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데..


그래, 어쩌면 지금 내겐 소개팅 성공법보다 잘 나이 드는 법. 이를 테면 먹는 나이만큼 넉넉함을 갖추고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존재로 성장하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뭐, 소개팅도 잘하고 나이도 잘 들면 더 좋고요.


 







소개팅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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