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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숲 Apr 19. 2021

별들과 교류하는 자



<도롱뇽의 장소>는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가 낭송하는 걸 듣고 느낌이 좋아서 기억했다가 검색하여 적어놓았다. 이브본느프와라는 시인은 1928년생이고 보들레르와 쌍벽을 이루는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이라고 한다. 시는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어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도 좋았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데 마음에 닿는 느낌이 있는 시를 나는 좋아한다.  

       

도롱뇽의 장소 / 이브 본느프와    


기습당한 도롱뇽이 움직이지 않고

죽음을 가장한다.

돌 틈에서 의식의 첫걸음은 이러하고

가장 순수한 신화

정신은 큰 불길을 가로지른다.    

도롱뇽은 벽의 중간 높이에

있었다, 우리 집 창들의 햇살 속에.

그의 시선은 단지 돌이었으나

난 그의 심장이 여전히 뛰는 것을 보았지.    

오 나의 공범자 그리고 모든 순수한 것의 

알레고리인 나의 사고여

이렇듯 자신의 침묵 속으로 환희의 힘을

억제하는 자 내 사랑하리.    

부동의 덩어리인 육신이기에

별들과 교류하는 자 내 사랑하리

승리의 시간을 기다리며

숨죽여 땅에 애착을 갖는 자 내 사랑하리.   


         

왜 <도롱뇽의 장소>가 내 마음에 들었을까. 신화, 불길, 심장, 침묵, 부동의 덩어리, 육신, 별 이런 단어들이 짜놓은 그물에 나는 걸려들었다. 보기에 만만해서 마음 놓고 들어갔는데 말들은 촘촘하게 내 의식을 조여 왔고 심장을 쿵쿵 울려댔다. 낭만적인 느낌이 들어 몇 번 소리 내어 도롱뇽의 장소를 읽어보았다.

   

시에 언급된 부동의 덩어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죽음은 생명체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육신은 죽어서 별이 될 것이다. 지구라는 별은 언젠가는 팽창하다가 환하게 폭발해버릴 것이고 우주를 떠돌다가 먼지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 너무 앞서간 걸까. ‘부동의 덩어리’라는 말은 염세적이거나 비관적이지 않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함을 보여준다. 자연 앞에 두 손 모아 겸손하다. ‘승리의 시간을 기다리며’ 는 오만하거나 건방지지 않다. 그 시간은 순리에 따르기 때문일 거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는 ‘숨죽여 땅에 애착을 갖는 자’ 이기 때문이다. 귀를 활짝 열고 바람에 실려오는 미세한 냄새까지 놓치지 않으려 코를 벌름거리며 땅에 엎드린 자. 그는 누구인가. 시인은 그를 도롱뇽이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시인 자신과 공범이라고 함으로써 자신 또한 자연 앞에서 순수한 사고를 가졌다고 노래한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몇 해 전 얼음계곡에서 만난 도롱뇽을 떠올렸다. 꽝꽝 언 얼음이 찬바람을 막아주는 안온한 물속의 돌에 도롱뇽의 알 덩어리가 굵은 팔찌처럼 붙어있었다. 가까운 곳 돌 틈에 겨울 추위를 피하고 있는 도롱뇽도 있었다. 그 아이는 정말 땅에 애착을 갖는 자였다. 땅 속은 추위를 막아주고 자신을 해치려하는 동물로부터 숨겨주는 곳이다.  

   

땅 속에서 돌 틈에서 낙엽 밑에서 자신을 낮추고 ‘환희의 힘을 억제하는 자’ 는 자신을 침묵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얼마나 암울하고 슬플까. 환희는 환호작약해야 속 시원한 게 나의 성격인데 아무래도 나는 도롱뇽처럼 살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하루의 기쁨과 하루의 슬픔을 그날에 써버리는 편이다.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고양이 발톱을 숨기고 사뿐사뿐 걸으라는 말을 잊어버리고 때론 교만하고 때론 낙담한다. ‘승리의 시간을 기다리며’ ‘별들과 교류하는 자’ 그는 신선이 아닐까. 신선이 되지는 못할 것 같으니 오늘도 나는 자연 속에서 그를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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