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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Sep 16. 2021

가지무침에서 가지 만두까지

가지로 만든 다섯 가지 요리

  구월 들어 텃밭에 가지가 넘쳐난다. 이삼일에 한 바구니수확하고 있다. 반은 저장하고 반은 먹는다. 저장용은 두툼하게 썰어 프라이팬에 구워 냉동하거나 얇게 썰어 볕에 말린다. 눈 쌓인 겨울, 장작난로 위 뚝배기 볶아 먹는 가을 가지 별미다.  

 

 저장하고 남은 건 내키는 대로 요리를 한다. 가장 손이 덜 가고 맛도 있으면서 보기 좋기로는 가지 구이다. 김밥처럼 도톰히 썰어 기름 두른 팬에 앞뒤로 살짝 굽기만 하면 된다. 참기름을 친 소금이나 간장 찍어 먹는 것을 권하지만 번거롭다면 구울 때 소금을 다.


손질 오 분,  굽기 십 분,  십오 분이면 근사한 가지 구이 완성이다. 양파와 곁들여 구우면 양파 향이 배여 더 맛있다.  
저장용으로 구운 가지. 냉동실에 차곡차곡.

  가지 무침도 맛있다. 기에 둥근 모양 그대로 찐 뒤 조금 식혀 결대로 찢어 무쳐도 되고, 음부터 기 좋은 크기로 썰어 찐 것을 무쳐도 된다. 가지는 살짝 쪄야  살캉거리는 식감에 맛도 좋고, 예쁜 보랏빛도 살아 있다. 찜기에 김이 오른 뒤 3분가량만 더 두었다 불을 끄면 적당하다. 뜨거울 때 꺼내 넓은 그릇에 펼쳐 김이 충분히 빠지게 두었다 양념을 한다. 소금과 국간장으로 심심하게 간을 맞추고 마늘과 파, 참기름을 넣어 젓가락으로 살살 버무리면 향긋하고 감칠맛 나는 가지무침 완성이다. 콤한 맛을 좋아하면 양고추를 조금 썰어 넣는다.

담백한 가지 무침

  칼로리를 걱정하지 않는다면 가지 튀김이나 전도 괜찮다. 가지를 길쭉하게 썰어 냄비에 넣고 소금 약간 뿌린 뒤 오 분 정도 기다린다. 숨이 조금 죽으면 밀가루 두어  넣어 냄비를 흔들어 묻힌다. 밀가루가 살짝 입혀진 상태로 그냥 기름 두른 팬에 부치면 가지 전이다. 튀김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가끔은  따로 밀가루를 풀어 튀김옷을 입힌 뒤 기름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에 튀긴다.

꽈리고추와 같이 튀길 것이라 가지도 비슷한 크기로 잘랐다. 꽈리고추엔 포크로 구멍을 낸다. 둘 다 맛소금을 뿌려 두었다가 숨이 좀 죽으면 밀가루를 묻힌다.
감자, 꽈리고추, 가지 튀김

  가지로 김밥도 만든다. 가지를 세로로 길게 갈라 기름 두른 팬에 굽고 부추도 살짝 숨 죽을 정도로 익힌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밥도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해 둥글게 뭉쳐둔다. 이번 김밥은 가지에 부추, 고추지를 넣어 만들었다. 김밥 한 줄에 가지 한 개 들어갔다.

김밥 준비...기름 두른 팬에 구운 가지와 살짝 익힌 부추. 같이 넣을 고추지가 짭쪼름하니 소금 간은 약하게.
적깻잎 깔고 가지와 부추 고추지를 올려 김밥을 만다
가지 김밥...깔끔하고 향긋한 맛이었다.

   가장 최근에 만든 가지 요리는 만두였다.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어 반죽부터 했는데 사실 처음에 만들려고 한 건 꽃빵이었다. 중국식 꽃빵을 만들고, 고추잡채처럼 가지와 양파를 볶아 곁들여 먹을 생각이었다. 가지볶음은 채 썬 마늘과 양파를 먼저 기름에 볶아 향긋한 기름을 낸 뒤 가지를 넣어 볶았다. 가지볶음이 완성되자 마음이 바뀌어 만두 만들 생각이 들었다. 실온에 둔 반죽은 그새 발효가 되어 몽실하게 부풀었다. 반죽을 길게 늘여 만두 만들기 좋을 크기로 등분을 나누었다. 둥글게 만두피 모양을 만들어 가지볶음을 가운데 올리고 꼭꼭 눌러가며 모양을 잡았다. 손끝으로 만두피 가장자리 원을 차곡차곡 접어 오므리면 살짝 부푼 꽃처럼 만두 모양이 만들어진다. 떻게 그게 만들어지냐. 옆에서 구경하던 동생이 감탄하며 자기도 만들어보겠다 덤볐다. 반죽을 내주었더니 내 손 모양을 따라 그럭저럭 들어 냈다. 되네. 만족한 동생의 웃음. 그러니 집에 가지가 있다면 시도해보시라. 웬만하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이젠 만두를 찔 차례. 넓은 냄비에 물 한 컵 넣고 납작한 돌 두 개를 받침 삼아 찜판을 올려 준비했다. 천 대신 칡잎을 깔고 만두를 올렸다. 만두 찌는 시간은  십 분 정도.        

가지 볶음...마늘과 양파를 기름에 먼저 볶다가 소금을 치고 가지를 넣어 볶았다.
가지 만두...만두를 빚어 찜판에 올려 십 분 정도 쪄냈다

      

   "오늘 한 끼라도 먹었니?"

   만두 찌는 동안 동생은 식탁 가까운 책장 모서리 쪽에 쭈그리고 앉아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누군지 나는 안다. 동생이 요즘 정 들인 거미다. 내 책장 아래칸 모서리에 거미줄을 친 엄지손톱만 한 왕거미.  열흘인가 녀석을 처음 발견한 뒤부터 동생은 이따금 녀석의 상태를 살핀다. 크기는 왕거미인데 너무 말라서 안쓰럽단다. 도무지 먹이가 걸릴 것 같지 않은 곳에 진을 친 것을 두고 답답하게 여긴다. 그리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닌가 봐, 거미 입장에선 기분 상할 수도 있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어제는 유명을 달리한 하루살이 몇 마리를 휴지로 집어와 거미줄에 걸어주려 하는 걸 말렸다. 말리는 나조차 한심한 일이었다. 거미 입장에 제발 그냥 내버려 둬 싶을 것이다. 우리가 지켜보는 걸 느껴서인지 거미는 늘 죽은 듯 꼼짝 않고 있는데, 한참 뒤 다시 보면 자리를 조금 옮겨 있다. 근근이 살아가는 모양이었다.

  “거미줄을 꼭 저런 데 쳐야 하나.”  

  식탁에 앉아 막 쪄 낸 따뜻한 만두를 먹으며 동생이 말했다.

  “산 입에 거미줄 치는 것보단 낫지.”   

  내 말에 윽, 너무 괴상한 말이야 하며 동생이 인상을 썼다. 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산 입에 거미줄이라니. 별생각 없이 내뱉는 흔한 속담을 곰곰 생각해보면 한 줄로 압축된 말의 묘미와 뜻에 탄복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속담은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다. 넘어졌다가 에라 이 참에 쉬자꾸나, 하는 상황 자체가 생각만 해도 웃기다. 비슷한 것으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도 있다. 조건이 얼추 맞을 일을 행한다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책장 모서리 거미도 넘어진 김에 쉬어 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저 나름 얼추 무언가 조건이 맞아 그곳에 진을 친 것이겠지. 아니면 단순히 취향 문제일 수도 있다. 먹이 풍부한 저잣거리보다는 한적한 모서리가 좋다거나.

  인간만 복잡한  아니다. 동생이 보살피는 고양이들을 가만 보면 밥 먹는 자리, 쉬는 자리가 저마다 정해져 있다. 모두 어찌나 나름 까다로운 가소로울 지경이다. 밥그릇만 바뀌어도 사료에 입 대기를 꺼려하고 입맛도 제각각이다. 그러니 거미라고 단순할 것인가. 나로선 특별히 거미 취향에 관여할 마음도 없고 불만도 없다. 책장 아래칸이야 평소 보지 않는 책을 주로 꽂아 둔 곳이라 신경 쓰이지 않는다. 입에 거미줄 칠 일도 없다. 도무지 수그러들지 않는 바이러스 위협으로 읍내 마트에 다녀온 지 오래되었건만, 가지가 이토록 풍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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