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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Oct 03. 2021

알밤이 툭 툭

   밤나무가 많은 동네라 길을 걷고 있으면 툭 툭, 밤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바람 한줄기라도 지나가면 머리에 맞을까 걱정될 정도로 투두둑 떨어진다. 그러니 산골 외출에서 모자는 필수다. 햇볕을 가리거나 보온을 위해서만이 아닌, 밤송이의 충격도 대비하고, 길에 걸쳐진 거미줄이나 높은 나뭇가지에서 느닷없이 줄을 타고 내려오는 곤충이 얼굴에 닿는 불상사도 피할 수 있다.   


  밤나무 밑엔 밤송이가 수북 깔려 있다. 부지런한 이들은 이른 아침에 한 바퀴 돌며 봉지 가득 주워간다. 요즘은 본인 소유가 아닌 곳에서 산나물 채취며 밤 줍는 것을 단속한다지만, 나물 철이나 밤 익는 철엔 여전히  낯선 차량이 이따금 세워져 있다. 어제도 낯선 초로의 남녀가 도로가 밤나무 아래 차를 워 놓고 밤을 주워 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봉지를 벌리고 한 사람은 주워 넣고, 아이들처럼 즐거워하다 동생과 나를 보며 짐짓 웃음을 감췄다. 아마도 부부일, 두 사람의 밤 줍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경계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다람쥐 먹을 것까지 주워가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숲이 적은 도시 근교라면 또 사정이 다를 것이다.  나도 산책길에 한 줌 정도는 주워 온다. 동생은 아 귀찮아, 하며 손대기를 싫어한다. 사방이 밤나무인 산골이다. 길에 떨어진 밤이라야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은 숲에 떨어졌을 것이기에 에 띄는 밤 줍는다면 다람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집에 들어오면 밤을 씻어 놓고 물을 끓인다. 밤이 잠길만큼 끓인 물을 붓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알맞게 겉이 익는다. 겉만 살짝 익힌 밤은 껍데기를 쉽게 벗길 수 있어 좋다. 동생도 나도 삶은 밤보단 생밤을 좋아한다. 생밤은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생수에 담가 냉장고에 두고 먹는다. 오독오독 달고 고소한 생밤. 우리 집에서 알맹이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게 껍데기다. 밤 껍데기는 가위로 채를 썰어 하루 정도 바짝 말린다. 차를 덖듯 냄비에 볶아 말리기도 한다. 그걸 보리차처럼 끓여 마신다. 약한 불에 오래 끓이면 커피색처럼 진해지는데 색이 진할수록 약성이 좋은 것 같다. 맛은 그냥 그렇다. 텁텁한 듯도 싶지만 그다지 거부감은 없는 맛이다. 밤 껍데기 차는 동생을 위한 것이다. 동생은 위에 탈이 잘 나는데 밤 껍데기 우린 차를 마시면 속이 편하다고 .           

  아침엔 엄마에게서 ‘밤 껍 쉽게 까는 법’이 카톡으로 다. 엄마는 자주 카톡을 보내온다. 마늘 보관법, 물 한 잔의 놀라운 효능, 같은 건강 관련 팁이거나 웃긴 영상 모음 같은 것들이다. 카톡 링크에 들어가 보았다. 밤을 한 시간 가량 찬물에 담갔다가 분 찐 뒤, 또 찬물에 삼십  정도 담가 놓으면 손으로도 깔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보도 나름 유익하겠지만 안부 확인 차원에서 카톡은 더 유용하다. 카톡을 보낸다는 건 별일 없다는 것일 테니.    


  엄마에게 밤을 보내고 싶은데 올해는 밤이 그다지 풍성하지 않. 이 잘 된 해는 우리 집 비탈만 몇 번 오가도 한 바구니 주워올 수 있었다. 열매 맺는 나무들은 해를 걸러 풍성해지는 것 같다. 앵두도 블루베리도 대추도 한 해씩 걸러 열매를 가득 맺는. 느 해인가는 히 밤이 잘 되어 엄마에게 생밤을 제법 보낼 수 있었다. 남은 밤으로 고깔 모양의 밤 과자를 만들어 가족 모두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그때 밤 과자를 만들며 알았다. 붕어빵에만 붕어가 없는 게 아니었다. 중에 파는 밤 과자에도 밤이 들어가지 않다. 강낭콩 앙금이 주원료라고 한다. 하지만 그때 내가 만든 밤 과자 말 그대로 밤 앙금으로만 만들었다. 삶은 밤을 으깨 설탕과 꿀을 섞어 앙금을 만들어 오븐에 구운 밤과자. 맛도 좋았지만 모양이 예뻐서 먹기 아까울 정도였다. 손이 많이 가는 건 아닌데 어딘가 넣어둔 짤주머니와 모양 깍지 꺼내기가 번거롭기도 해서, 다시 만들게 되지는 않는다.

  툭 툭, 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그래도 그 예쁜 밤 과자를 가족과 함께 나눠 먹었던 생각이...


   

짤주머니에 상투 과자 깍지를 끼우고  밤 앙금을  고깔 모양으로 짠 뒤 오븐에 구웠다.
밤 앙금으로 만든 밤 과자(상투 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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