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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Nov 08. 2021

가을볕에 바삭바삭


  가을볕이 바삭바삭 숲을 말린다. 바삭바삭 마른 숲이 길에 내려앉는다. 길을 걸으면 바삭바삭 소리가 난다. 길이 아닌, 숲을 걷는 느낌이다. 숲을 가르는 바람이 이따금 불어온다. 마른 잎들은 순순히 길가로 물러난다. 누가 이렇게 엽렵히 길을 쓸었나, 날마다 하게 되는 싱거운 생각. 길은 말끔해지고 길 옆 작은 생명들은 겨울 채비가 든든해진다. 길가 풀덤불이 매해 풍성해지는 건 낙엽이불 덕분이다. 영양도 풍부한 낙엽이불 속에서 겨울잠에 드는 곤충과 애벌레, 풀씨와 뿌리들.     



   마을 도로가 낙엽송은 불 밝힌 듯 밝아졌다. 촛불처럼 은은하게 밝아오던 것이 이제 끄트머리에 이르렀다. 끄트머리에서 가만가만 발돋움을 한다. 몸 안 빗장뼈가 삐거덕 열리는 느낌.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이여.”* 삭을 대로 삭 향기로운 시 한 구절이 불려 나온다.     


    바삭바삭, 가을볕에 나도 가벼이 마르고 싶어 진다. 잠시 정지해도 좋겠지. 청을 말리고, 고구마와 당근, 사과도 잘라 가을볕에 널어놓는다. 낙엽이불처럼 든든한 양분이 바삭바삭, 겨우내 변치 않도록.     


*서정주 詩 '국화 옆에서'


      

고구마, 사과, 당근 말랭이


마당 복숭아나무도 마르고...


마을 도로 낙엽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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