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나무 Jan 02. 2024

새해 떡국

  새해 아침, 혼자 떡국을 먹었다. 혼밥을 즐기지만 생일이나 특별한 날엔  옆집 동생과 겸상을 한다. 그런데 새해 아침엔 너무 일찍 깨어나 날이 밝기 전 배가 고팠다. "아침에 떡국 먹으러 와."라고 전날 동생에게 말해 두었는데 할 수 없었다. 묵은해 마지막 이틀 동안 내린 눈으로 밖은 온통 새하얀 세상이 되었다. 눈을 너무 많이 보아서인가, 해가 바뀌고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따끈하게 끓인 하얀 떡국부터 생각났다.

   

  떡국 끓일 준비는 하루 전 미리 해 두었다. 무를 채 썰고 마른 표고버섯과 떡도 물에 불려 놓았다. 전기밥통에 무채를 넣어 한 김 푹 끓인 뒤 떡을 넣어 또 푹 끓였다. 표고버섯도 넣고 달걀도 풀고. 마지막엔 잘게 썬 파와 김을 얹었다. 무채를 넣어 끓인 떡국은 처음인데, 오 맛이 괜찮았다. 무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구수한 국물에 말랑한 떡의 조합. 날이 밝은 뒤 동생이 건너왔다.

  "난 먼저 먹었어."

 다시 떡국을 끓여 동생 아침을 차려주었다. 내 떡국보다 업그레이드된 떡국. 동생 떡국은 표고버섯과 달걀지단을 따로 채 썰어 파와 김과 함께 얌전히 고명으로 올렸다. 동생이 먹고 싶다고 했던 무채 전도 넉넉히 만들어 곁들였다.

  ", 냄새가 끝내줍니다."

  동생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 함께 떡국을 먹을 줄 알았다가 혼자 먹게 되어도 전혀 실망하지 않는 동생이다.   

  

  "어제는 누가 눈을 밀어주고 간 걸까?"

 떡국 먹는 동생 곁에 앉아 무채 전을 맛보며 내가 말했다. 지난 이틀 동안 내린 눈은 10센티도 넘게 쌓였다. 영상에 가까운 기온이라 눈은 쌓이면서 주저앉아 무게가 상당했다. 눈삽으로 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눈을 몇 삽 퍼 올리다 포기, 눈썰매를 타기로 했다. 이곳에 이사 온 초기에 산골 생활을 만끽하느라 구입한 눈썰매. 자주 즐긴 편은 아니어서 아직 멀쩡하다. 마당 아래 하얀 비탈길을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가다 커다란 눈더미에 막혀 퍽, 썰매가 눈을 뒤집어쓰며 멈췄다. 일어나 보니 길 아래로부터 눈이 밀려 올라와 눈 방어벽이 생겼다. 누군가 제설 장비를 갖춘 차량으로 눈을 밀어 놓고 간 것이었다.

  "소금 아저씨겠지."

  동생이 말했다. 마을에서 구죽염을 만들어 판매하는 분을 우리는 소금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다.

  "아냐. 반장님 같아."

  내가 말했다. 추측 가능한 인원이 거기까지다. 마을에서 제설 장비를 갖춘 사람이 그 두 사람밖에 없다. 누가 되었든 고마운 일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굳이 외딴 기슭까지 와서 슬그머니 눈을 치워주고 가시다니. 그 마음을 생각하니 새해를 맞아 때깔 고운 복주머니를 찬 듯했다. 




복: 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행운과 오붓한 행복.

   

 


무채 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연말 파티엔 역시 떡볶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