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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숲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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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Mar 08. 2024

봄, 신기루

  N에게


  어제는 봄눈이 내렸습니다. 아침부터 눈 예보가 있었지요. "오늘 날씨는?" 아침 커피 마시는 시간, 동생이 물었을 때, 스마트폰을 켜 날씨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눈이 온다는데." 나는 말했습니다. 예보대로라면 그 시각 눈이 내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기상예보는 늘 흥미롭습니다. 볕이거나 비거나 눈이거나 바람일 텐데 어느 것이어도 기다리게 됩니다. 올겨울 눈은 실컷 보았고, 겨우내 눈을 치웠데, 또 눈이 온다는 소식이 싫지 않았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창 너머를 바라보았습니다. 밖은 온통 습기로 가득 차 뿌옇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눈이 내리는 건 아니었습니다. 잠시 그대로 마당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곧 눈이 내려왔습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다가 큐 사인을 받은 듯 내려오는 눈이었습니다. 몇 년 전인가도 그런 눈을 본 적이 있어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커튼처럼 눈이 일렬로 가지런히 내려왔지요. 참 희한한 광경이었습니다. 넓은 창에 하얀 눈 커튼이 천천히 내려오는 광경. 그때도 아마 이맘때였을 거예요. 겨울이 떠나고 봄이 시작되는 시기. 

    

  삼월, 이젠 봄이라 해야겠지요. 기온만 보자면 겨울 같지만 이미 마음에서 겨울은 물러갔습니다. 아무리 바람 불고 추워도 꽃샘추위라 여길 수 있지요. 계절을 바꾸는 시기엔 늘 그렇듯 거센 바람이 자주 몰려옵니다. 잠잠히 웅크렸던 겨울 숲을 한바탕 일으켜 먼지와 묵은 가지를 털어내는 것이지요. 밤새 바람이 숲을 휘도는 소리를 듣고 깨어난 아침, 마을 길엔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그날도 눈이 내렸지요. 날이 꽤 추웠지만 산마루까지 경사진 도로를 천천히 걸어 올랐습니다. 눈이 바람을 타고 미친 듯 휘몰아치는 장관을 놓칠 순 없었습니다. 숲과 허공을 무수히 쓸어가던 눈보라. 삼월에 만난 눈보라는 신기루 같았습니다. 바닥에 닿은 눈은 이내 녹아 사라졌지요. 하얀 휘날림도 보고 있는 순간 사라져 갔습니다. 사라짐조차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이상스레 납득이 되었습니다. 매 순간 사라져 가는 강물 같은 그 흐름에 우리조차 사라져 가고, 그조차 이내 잊을 수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올 테면 오라."

  어제 커튼처럼 내리는 눈을 보 동생은 호기롭게 말했습니다. 봄눈은 그렇지요. 만만합니다. 아무리 천지 가득 하얗게 내려도 이내 사라질 것이니까요. 어제 아침 그렇게 시작된 눈은 종일 오락가락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때마다 세상은 믿을 수 없게 순식간 바뀌었지요. 오후엔 바람도 몰려왔습니다. 눈이 하얗게 바람결에 날아가다 그치면 이내 녹아 사라지기를 거듭했지요. 어느 순간엔 시침 뚝 떼고 볕이 나서 환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또 금방이라도 땅에서 푸른빛이 보이고 나뭇가지에도 꽃눈이 봉긋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눈이 내리고 사라지고.  

    

 사라지는 그것이 저를 홀렸던 것이겠지요. 봄엔 때로 모든 것이 신기루 같습니다. 신기루는 온도 차가 클 때 빛의 굴절로 일어나는 오묘한 착시라고 하지요. 착시지만 실체가 있어야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굴절의 순간 하늘이 비쳐 호수처럼 보이는 것이라 하니까요. 무엇이 실체인지 저로선 끝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이라도 잠시 오묘한 굴절로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것은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곧 피어날 봄꽃의 환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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