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숲의 시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나무 May 21. 2024

휴게소에서 아주 살 뻔한 이야기

  동생은 운전 솜씨가 서툴다. 운전 경력 17년 차가 넘었는데도 그렇다. 초보일 땐 연차가 쌓이면서 조금씩 실력이 나아지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세월이 갈수록 줄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이 들어가며 판단이나 감각이 둔해지는 게 일반적 현상이니. 더구나 동생 경우엔 운전할 일이 드문 산골에서 십 년 넘게 살고 있다. 함께 사는 나도 동생도 마을 주변 산책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 편이지만, 차를 타고 나가는 외출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읍내 농협 자재상이나 마트, 철물점에 갈 일이 있을 때는 차를 움직인다. 그러니까 한 달에 두어 번 집에서 15분 거리 정도의 운행만 해온 지 십 년이 넘었다. 꼭 필요할 경우 장거리 운전을 할 때도 있지만 아주 드문 일이다. 돌보는 고양이 때문에 도시의 동물 병원에 가거나 부모님을 찾아뵐 때 같은.

  

  평균 잡아 일 년에 한두 건 정도인 그 장거리 운전을 얼마 전 하게 되었다. 지난 이월 엄마가 산골 집에 오셨을 때 오월엔 우리가 찾아뵙겠다, 약속했다. 봄 농사 바쁠 시기가 끝나갈 무렵으로 방문 날짜를 정했. 하루 전날 부모님 댁에 가져갈 선물로 나물거리를 잔뜩 해서 씻고 데치고 볶았다. 저장해 둔 두릅숙회, 두릅장아찌 갖가지 산야초 무침과 볶음, 샐러드. 음식 장만을 하는 동안 부모님 집까지 길 찾기 상세 안내도가 줄곧 머릿속엔 펼쳐졌다. 운전은 동생이 하지만 길 안내는 언니인 내 몫이었다.

       

  동생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방향 인식이 남다르다. 가령 우리 집에서 마을 반장님 댁은 분명 동쪽에 있는데 동생에게 위치를 물어보면 태연히 서쪽을 가리킨다. 장난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11년째 같이 살아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동서 방향뿐 아니라 좌우도 곧잘 헷갈린다. 운전 중 우회전하라 일러주면 어느새 좌회전을 해버리는 식이다. 그러니 가야 할 방향을 그 순간 손으로 정확히 가리켜야 한다. 병뚜껑 열 때나 나사를 풀고 조일 때도 왼쪽으로 열고 오른쪽으로 잠근다는 걸 번번이 짚어주어야 한다. 동생 말에 의하면 자신 같은 사람은 귓속 해마에 장애가 있을 거라고 했다. 의학적 검사를 해 본 적은 없으니 그 말 진위를 알 순 없다. 다만 유전적 영향은 분명히 있다고 짐작이 된다.

  

  동생이 좀 더 심할 뿐 우리 가족 중 절반 정도는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이다. 엄마 쪽은 아니고 아버지 쪽이다. 아버지도 방향 인식에 곤란을 겪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가족을 태우고 운전할 때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늘 길을 알려주던 것이 생각난다. 그땐 차량 내비게이션이 없어 엄마가 그 역할을 했다. 설령 내비게이션이 있었어도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와 여러모로 닮은 꼴인 내 경우엔 내비게이션을 잘 읽지 못한다. 길 안내 화면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 머릿속이 엉겨 버리고, 500미터 앞에서 12시 방향이라고 안내가 나오면 일단 500미터에 대한 감이 오질 않는다. 내가 혼란에 휩싸이면 동생도 덩달아 긴장 수위가 높아져 "12시 방향이라는 게 도대체 어느 쪽이라는 거야?" 다가오는 삼거리를 앞에 두고 흥분할 지경이 된다.

   

  그런 자매가 산골에만 처박혀 살다 먼 곳에 갈 일을 앞두었으니, 머릿속에 도로망이 계속 펼쳐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부모님 집까지 가는 길은 익숙지 않았다. 두 분은 50여 년간 살던 서울을 떠나 두 해 전에 주에 있는 다산 신도시로 이사를 했다. 이번 방문이 그곳에 가는 세 번째였다. 첫 방문은 우리 수준을 잘 아는 남동생이 차로 마중을 나와 앞서가며 길 안내를 했다. 다행히 막내인 남동생은 위의 세 누나와 달리 길 찾기도 운전도 능숙한 편이다. 가는 내내 폰으로 교신하며 전을 수행하듯 안내를 해 주어 즐겁게 따라갈 수 있었다. 두 번째 방문은 작년 추석 때였다. 첫 방문 때 중요 포인트를 짚어 종이에 상세 약도를 그려놓기에 이제 우리 힘으로 찾아가 볼 만했다. 사실 가는 길이 그리 복잡하진 않았다. 두 시간가량 거의 직진 방향으로만 국도를 타고 가다 도시에 진입할 때 몇 군데 갈림길만 놓치지 않으면 되었다. 운전자인 동생은 오직 나만 믿는다, 했고 나도 나만 믿었다. 내 공간지각력도 좋은 편은 아니나 동생보다는 한결 나았다. 그날 마지막 갈림길을 놓쳐 조금 우회하긴 했지만 결국 찾아갈 수 있었다. 그때 놓쳤던 길이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찍혀 있기에 이번엔 실수 없이 갈 수 있을 거였다.

   

  드디어 부모님 댁 가는 당일 아침. 10시까진 도착할 예정으로 730분경 출발했다. 처음부터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숲과 계곡을 끼고 가다 터널 몇 개를 통과하고 다시 푸른 숲을 보며 달리는 2차선 도로. 휴가철에만 살짝 붐빌 뿐 평소엔 차량도 많지 않은 한적한 길이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모처럼 느끼는 속도감도 좋았고, 엄마를 보러 가는 마음이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긴 했지만,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놓은 약도를 따라 마침내 부모님 사는 아파트까지 순조롭게 도착했다.

  "이젠 자주 와도 되겠다."

  전혀 헤매지 않고 제대로 왔다 했더니 엄마가 반색했다. 늘 우리가 그립다 하시는 엄마. 연세 들수록 몸은 불편해지고 마음은 여려지셨다.

  "그래. 좀 자주 보자."

  언니도 말했다. 산골 동생들의 쉽지 않은 행보에 언니도 동참하여 미리 와 있었다.

  "그럼 한 달에 한 번씩 여기 모이기로 할까?"

  내가 호기롭게 말했다. 그렇잖아도 부모님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용자리까지 완벽하게 도착했을 때, 이젠 자주 와야겠다 마음먹었던 차였다. 그 말에 엄마가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산골에서 가져간 산채와 언니가 준비해 온 연어며 왕새우를 구워 점심을 차려 먹고 다 같이 산책을 나섰다. 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잘 구획된 조경 사이 반듯한 보도블록을 디디는 것이 동생과 나로선 색다른 즐거움이었고, 그런 우리를 보며 언니와 엄마도 재미있어했다.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다시 집에 와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웃다, 어느새 떠날 시간이 되었다.

  "다음 달에 또 올게요."

  아쉬워하는 엄마에게 인사했다.

  "잠깐만 있어 봐."

  엄마는 냉장고를 털어낼 기세로 사과며 딸기, 오이, 양배추 같은 걸 챙겨주더니 반쯤 남은 에너지바 한 박스까지 찾아들고 왔다. 언니도 우리에게 줄 대형마트 식품들을 한가득 챙겨 왔다. 읍내 마트에서도 웬만한 건 다 살 수 있는데 뭐라도 하나 더 주어 보내려는 그 마음이 뭉클했다.


  많은 짐을 나눠 들고 언니가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와 우리를 배웅했다. 그만 들어가라 해도 차가 움직일 때까지 어둑한 주차장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서 있는 자그마한 언니. 다음 달이면 또 볼 건데 어째 눈물이 나려 했다.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지만 힘든 일이 생길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언니였다. '내겐 언니가 있어'라는 생각만으로 든든한 존재. 어릴 때부터 그랬다. 부모님께 가장 감사한 게 언니를 낳아준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빨리 출발해."

  나는 운전석 동생에게 속삭였다. 애틋할수록 이별 간은 짧은 게 나았다. 동생은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느라 꾸물거렸다. 자주 하는 일이 아니니 단번에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언니는 그사이 몇 번이고 우리 건강과 안전 운전을 당부하고 있었다. 마침내 차가 움직였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언니와 손 인사를 나누며 주차장을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왔다. 

    

  "정문에서 좌회전." 

  나는 손으로 방향을 가리고는, "보고 나면 더 보고 싶어지는 게 가족인가 봐." 중얼거렸다. 방금 헤어진 언니의 잔상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맞아. 이젠 정말 더 자주 만나러 오자." 동생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말투였다. 비슷하게 구획된 아파트 단지들과 상가를 따라 도로가 이어졌다. 신도시를 벗어나기까지 좌회전 3번과 우회전 2번을 더 해야 한다는 걸 나는 떠올렸다. 이젠 정신을 차려야 했다. 산골 집에서 기다릴 여섯 마리 고양이를 생각해야지. 동생이 길가에 잠시 차를 세우더니 내비게이션을 다시 만지작거렸다. 설정이 제대로 안 되어 그냥 출발한 것이다.

  "내비 안 켜고 가도 될 것 같아."

  내가 말했지만 기계를 통해 확인해야 안심이 되나 보았다.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시작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얼마지 않아 뭔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엔 분명 좌회전인데 내비는 우회전을 지시했다.

  "어느 쪽이야 빨리 말해."

  동생이 재촉했다. 내 기억이 틀렸나. 그러고 보니 내비가 알려주는 우측 방향에 걸린 타이어 광고판이 눈에 익은 듯도 했다. 우회전. 나는 결단을 내렸다. 잠시 전방을 주시하며 달리자 점점 처음 보는 광경들이 다가들었다. 한진아파트라고? 저 아파트는 본 적이 없는데 하는 순간 내 눈에 띈 도로 표지판에 나는 경악했다.

  "뭐야, 왜 구리 인터체인지가 나오지?"

  IC라면 고속도로가 나온단 말인가. 길은 두 갈래였다. 구리 IC를 피하자면 내비가 알려주는 대로 또 한 번 우회전해야 했다. 우회전. 나는 다급하게 말하며 손으로 지시했다. 그 길로 얼마간 달리자 도로는 다른 도로와 합쳐져 순식간 4차선으로 넓어졌다. 차량이 갑자기 많아졌고 차간 거리는 바짝 당겨졌다. 무엇보다 차들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곧 새로운 표지판이 보였다.

 <수도권 제1 순환 고속도로>

  보는 순간 멍해졌다. 저게 뭐란 말인가. 우리는 지금 저 알 수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떡하면 좋아.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동생이 부르짖었다.

 "일단 깜빡이 켜고 갓길로 나가서 세워!"

  우측 갓길을 가리키며 나는 말했다. 동생이 갓길로  속력을 줄이더니 를 세웠다.

   "어쩌면 좋아."

  동생이  중얼거다. 야말로  상태로 보였다. 나도 다를 바 없었지만 왜 이런 이상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는지 알아보아야 했다. 내비게이션을 보 이대로 가면 퇴계원 IC로 가게 되는 모양이었다. 예상 진로는 퇴계원 IC 직전 우측 도로를 향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 내비가 미쳤나 싶었다. 우리에겐 전혀 생소한 지역이었다.

  "단 가보자. 갓길에 계속 멈춰 있을 수도 없고."

  내가 말했다.

  "그럼 언니가 운전해. 언니는 고속도로도 다녀봤잖아. 난 고속도로 같은 건 타 본 적이 없어."

  동생이 말했다. 동생이 겁을 잔뜩 집어먹은 건 표지판에 보인 '고속도로'라는 말이었다. 오래전 차를 구입해 오직 출퇴근용으로만 사용하다 산골로 온 동생이기에 도로 경험이 다양하지 않았다.

  "말이 되니."

  내가 말했다. 나도 필요한 시기에 운전을 한 적은 있다. 서른 초반에서 후반까지 8년 정도. 서울 근교 대학가에서 카페를 운영할 때였다. 가게를 접은 뒤엔 차를 팔았고 더 이상 운전한 적이 없. 운전할 때의 긴장감이 싫었기에 다시 운전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쨌든 20년이나 지난 일이다.

  "저기 봐. 이 길로 가면 어디 샛길이 나오나 봐. 저 차들도 갓길로 가네."

  멍하니 있던 동생이 앞을 보며 말했다. 가만 보니 우리처럼 갓길로 빠지는 차들이 보였고 그들은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그 차들을 따라 우리가 도착한 곳은 '구리 휴게소'였다.  한숨 돌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휴게소는 주차할 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붐볐다. 끄트머리 가서야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스마트폰을 켰다. 현재 지점에서 어떻게 가야 할지 연구해 보아야 했다. 지도를 보자 아주 엉뚱한 길로 온 건 아니었다. 내가 알던 길과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길은 도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형태였다. 그러니까 두 길이 양팔처럼 좌우 원을 그리 합류하는 지점이 있고 그곳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었다.


  " 난 다시 저 위로 못 올라가."

  내 설명을 들은 동생이 도로 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가능치 않아 보였다. 엄청난 차량에 엄청난 속도였다. 길 동생이 어떻게 끼어든단 말인가. 우린 너무 오래 시골길로만 다녔다.

  "그럼 어떡해. 휴게소에 계속 있을 순 없잖아."

  나는 말했다. 아무래도 도움을 청해야 했다. 남동생이 가까이 있다면 당장 오겠지만 멀리 대전에 가 있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부모님 댁에 있기만을 바랐다.

  "언니 지금 어디야?"

  다행히 언니는 아직 거기 있었다. 형부가 곧 도착한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라 했다. 아침에 형부는 언니와 함께 왔다가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 언니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걱정할 테니 엄마에겐 알리지 말자 했는데 스피커 상태라 이미 같이 듣고 있다는 것. 에고, 참 면목이 없었다.

  "걱정하지 말고, 거기 위치 알아야 하니까 내비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 줘."

  언니가 말했다. 부가 도착하는 대로 함께 오겠다고 했다. 언니와 통화한 뒤 마음이 좀 놓였다. 휴게소 풍경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주차한 끄트머리 출구 쪽에 주유소가 보였고, 구 쪽 그리 크지 않은 건물엔 편의점과 간식코너, 화장실 정도를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건물 앞에 그냥 서 있었다. 휴게소로 들어오는 차들이 끊이지 않았다. 도시엔 정말 차가 지나치게 많 싶었다. 곧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부가 와서 출발했으니 금방 만날 수 있을 거라 했다.

  "여기서 얼마 안 걸린대. 형부가 내비 사진 보고 그러더라. 얘들 겨우 10분 거리에 있다고."

  엄마 집을 떠나 고작 10분 만에 이 지경에 처해졌단 말인가. 한심했다. 하긴 어떤 위험도 휘말리는 건 순식간이다. 언니와 형부가 곧 도착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형부가 내비를 켜서 동생에게 길을 찬찬히 설명해 줬다. 앞서갈 테니 자기 뒤만 따라오라고.

  "끈으로 묶고 가면 좋겠어요."

  동생이 웃지도 않고 말했다. 동생 불안감은 여전했다. 형부 차와 자기 차를 묶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안전한 곳까지 언니가 대신 운전해 주고 싶어 했지만 보험 적용도 안 되고 여러모로  될 말이었다. 형부가 앞장서서 출발했다. 동생에 맞춰 형부아주 신중하게 움직였다. 십여분 정도 달렸을까. 드디어 순환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차량이 덜 붐비는 2차선 도로에 들어섰다. 전화를 걸어 이제부턴 우리끼리 갈 수 있다고 알렸다. 교차 지점에서 형부와 언니가 탄 차가 깜빡이를 켠 채 멀어졌다. 차창으로 손을 내밀어 인사했다. 바이. 고마운 형부와 언니.

  

  "난 정말 거기서 영영 못 빠져나올 줄 알았어."

   집이 가까워져서야 동생은 평소 말투를 찾았다.

  "잘못하면 휴게소에서  살 뻔했네. 톰 행크스 나오는 그런 영화 있었잖아. 공항에서 계속 체류하는 이야기."

  나는 말했다. 늘 걷던 마을 이렇게 반울 수가. 집에 도착했다. 그다지 반기지도 않는 마당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마구 날렸다. 율무야 보리야 해님아 달님아, 우리 돌아왔어! 집 고양이 하루키와 하루에게도 우리 도착을 알렸다. 늘어지게 자고 있던 폼 그대로 꼬리만 슬쩍 움직이는 녀석들. 때로 삶의 위기가 오늘을 행복하게 만든다. 지금 일상이 얼마나 다행인지 자각하게 되니까. 언니에게 카톡을 보내고 엄마에게 전화 했다. 

  "이제 너흰 올 생각 하지 마. 우리가 갈게."

  엄마가 말했다. 읍내까지만 살살 다니고 어디 멀리는 가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걱정 마시라 했다. 우리도 이젠 직일 마음이 .



  


내비 안내로 가게 된 구리 지역. 순환고속도로 정말 무서웠다.


엄마와 신도시 산책


돌아온 일상. 딸기밭 풀매기.


마당 고양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