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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숲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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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Nov 29. 2024

첫눈

  내리는 아침 동생과 나는 읍내 하얀 건물 이층 실내에 있었다. 2절지 도화지 만한 창이 띠벽지처럼 한쪽 벽면에 연이어 나 있는 실내였다. 실내는 아치형 가벽을 사이에 두고 대기실과 치료실로 구분되어 있었다. 나는 대기실 벽면을 따라 기역자로 부착된 의자에 앉아 있었고 동생은 아치형 가벽 너머 치료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기 보세요. 치아에 금이 갔네요."

  여자 의사가 모니터를 통해 치아 상태에 대해 동생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내에 다른 환자는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동생 곁에서 진료를 하고 있었고 다른 두 간호사는 카운터와 치료실 한쪽에서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다. 치료 과정에 대해 계속 설명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으로 다가갔다. 빗소리가 점점 요란해지고 있었다. 비에 흠뻑 젖은 창밖 골목은 해 뜨기 전 새벽처럼 어둑한 데다, 세찬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빗줄기로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춥고 질척한 저 골목을 통과해 이렇듯 환한 조명이 켜진 따뜻한 실내에 와 있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동생 치료는 몇 주가 걸릴 모양이었다. 한 시간여에 걸쳐 처치를 해 준 뒤 일주일 뒤 다시 내원하라 했다. 신경 치료가 필요할지 시간을 두고 가늠해 보자는 것이다. 건물을 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동안 비는 갑자기 우박으로 변했다. 차 전면 유리에 부딪혀 튀는 하얀 얼음 알갱이를 볼 수 있었다. 쌀알 같은 입자가 하얗게 쏟아지는 도로를 달려가자니 꿈처럼 몽롱해졌다. 나비꿈을 꾼 장자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비 오는 어둑한 골목과 환한 실내, 얼음 알갱이가 떨어지는 도로. 모두가 어쩐지 현실 같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고도 우박이 잠시 더 쏟아졌다. 이런 날씨에 숲에 사는 생명들은 어디서 견디는 걸까. 아무도 살 수 없을 것처럼 세상은 황량해 보였다. 영하에 가까운 기후라 집안도 추웠지만 그래도 벽과 지붕이 있는 공간에서 나는 밖을 보고 있었다. 비가 다시 시작되었다. 아침에 내리던 진득한 비와는 느낌이 달랐다. 머물 생각 없는 나그네처럼 빗줄기가 휙휙 바람을 타고 날았다. 나그네 비는 어느 순간 햇빛을 받아 환한 빗금을 긋는가 싶더니 다시 묵직해지는 허공에서 진눈깨비로 변해갔다. 리고 마침내 눈이 쏟아졌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올겨울 첫눈이었다.  


첫눈 오는 마당 풍경

   

  이렇게 다시 눈의 계절이 되었다. 산골에 와서 살면서 열한 번째 맞는 눈의 계절. 날짜 흐름에 특별히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닌데 겨울이면 괜히 숫자를 꼽게 된다. 외진 산골에서 동생과 둘이서 열한 번이나 이런 계절을 살다니, 대견한 것이다. 올겨울 첫눈은 여러 날에 걸쳐 내리고 있다. 나흘째인 오늘까지 눈발이 날리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적설량이 30센티는 넘는 것 같다. 눈으로 이어진 나흘은 하루 같기도 했. 눈이 내리면 치우고 다시 눈이 내리면 치웠다. 마당에서 산 아래 비탈길과 다시 도로에 닿는 오르막길까지. 동생과 둘이 눈삽을 밀며  250여 미터 넘는 길을 치우고 집에 돌아올 때면 어느새 다시 눈이 내려 길이 하얗게 사라지고 있었다. 산골에 와서 산 뒤 이렇게 첫눈이 근심스럽도록 쏟아지는 건 처음이다.  

   

 

비탈길 아래 지하수 관정까지 눈을 치우고
길 입구 울타리까지 또 눈을 치웠는데
나흘째인 오늘까지 창밖엔 눈이 내리고...


 그래도 아직은 근심보다 설렘이 앞선다고 여기고 싶다. 이런 마법이 있을까 싶게 순식간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걸 보고 있으면 설렐 수밖에 없다. "설렘이란 뼈와 뼈 사이에 내리는 첫눈"이라고 「마음 사전」에서 김소연 작가가 표현한 바 있다. 표현이 어찌나 생생하게 느껴지던지 한번도 본 적 없는 내 살 속의 뼈들이 겨울나무처럼 하얗게 서 있는 숲이 그려졌다. 설렘이 있는 한, 세상에 내리는 모든 눈은 언제나 첫눈이다.



눈 구경하는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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