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으로 공간을 쓰다 -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을 쓰다 시리즈 5/5

by 조금

20세기의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는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손에서 빚어졌다. 철과 유리는 미스를 만나서야 건축물이 됐다. 미스가 평생 추구한 건축 철학은 건축을 넘어 현대 모든 디자인의 모토로 쓰인다. 모더니즘에 대한 비난이 미스의 무덤 위로 쏟아지지만, 현대 건축의 시선은 다른 어느 건축 거장보다도 미스를 향한다.


미스가 처음부터 모던 건축의 선구자였던 것은 아니다. 미스의 건축 스타일은 1905년부터 1921까지 16년에 걸쳐 서서히 변화했다. 초창기 선보인 고전 스타일은 같은 사람의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1927년 최초로 출간된 미스의 작품집에는 1921년 이전의 작품 대부분이 제외되었다.


미스가 새로운 건축 스타일을 선언한 건 1921년 프리드리히 거리 고층 건축물 공모전에서다. 미스는 공모전에 기단부 없이 1층부터 옥상까지 수직으로 올라가는 타워를 디자인해 제출했다. 145개가 넘는 출품작 대부분이 기단부와 타워로 이루어져 있던 상황이다. 파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스는 20층 건물 전체를 철과 유리로만 만들었다. 골격과 외피를 철저히 분리해 바닥에서 천장까지 전면을 유리창으로 감싸고, 프리즘 형태의 건물 각 입면에 깊은 홈을 내 빛을 끌어 들였다. 투명하고 가벼운 건물의 탄생이다.


규정을 무시한 작품은 공모전에서 탈락하지만 미스는 1928년 새로운 구상을 실현할 기회를 얻는다. 그해 7월 독일 정부가 미스에게 바르셀로나 박람회 독일관 설계를 의뢰한 것이다. 미스는 특별한 기능이 없는 이 건물에 자신의 건축 세계를 자유롭게 펼친다. 마스는 널찍하고 평평한 하얀색 지붕을 8개의 크롬 기둥으로 붙잡아 둔 후 유리를 둘러 사방으로 뚫려 있는 공간을 창조했다. 내부엔 직접 디자인한 ‘바르셀로나 의자’ 몇 개만 덩그러니 놓았다. 모든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외부와 내부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눈으로 봐서는 안 되고 몸으로 체득해야만 알 수 있는 공간이다. 공간과 기능을 분리한 ‘무한정 공간(universal space)’은 이후로도 미스 건축 세계의 중심 주제로 쓰였다. 이 건물은 1929년 박람회가 끝나고 철거 됐다 1986년 복원됐다.


미스는 이후 1930년부터 1933년까지 조형학교 바우하우스의 교장을 맡아 교육에 정진했지만 나치의 탄압을 이길 수 없었다. 당시 나치는 현대 예술과 건축을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 결국 1933년 7월 바우하우스를 공식적으로 폐교한 미스는 1937년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다. 제2의 전성기다.


1938년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건축대학 학장으로 취임한 이후부터 미스의 대표작들이 쏟아진다. 크라운 홀 등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건물들과 프로몬터리 아파트, 860-880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 등 20세기 고층 건물 형태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들이다.


1951년 완공된 형체를 초월한 건축의 절정 판스워스 하우스도 이 시기 작품 중 하나다. 커다란 유리 상자 같은 모습의 판스워스 하우스는 8개의 얇은 철재 기둥 위에 사뿐히 떠있어 마치 숲 한가운데 놓인 조각품 같다. 건물 사방을 유리창이 둘러싸 건물 안으로 자연의 빛과 풍경이 스며든다. 물론 찬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판스워스 하우스의 주인 이디스 판스워스는 집이 엑스레이같이 투명해 옷걸이 하나를 사더라도 밖에서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미스 특유의 미학은 꿋꿋이 이어졌다. 뉴욕 시그램빌딩이 대표적이다. 미스는 최초로 시그램빌딩에 건물 전체를 유리로 덮는 커튼월 방식을 적용했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도심 곳곳에 시그램빌딩 모방작들이 널려있다. 한국 대표 근대 건축가 김중업이 지은 삼일빌딩도 시그램빌딩을 모티브로 삼았다.


미스는 독일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완공 1년 후인 1969년 8월 17일 숨을 거뒀다. 무미건조한 고층건물로 뒤덮인 21세기, 모더니즘 실패에 대한 비난이 미스에게 몰린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 그가 남긴 말만이 변명처럼 남았다. 미스는 생전 독일 정부와 미국 정부로부터 대십자 공로 훈장과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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