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쓰다 시리즈 4/5
유럽 모방에 불과하던 미국 건축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만나고 나서야 자기만의 양식을 갖춘다. 라이트는 자연과 맞닿아 있는 작품으로 기존 건축계의 틀을 깨뜨렸다. 자연과 사람, 건축을 하나로 만든 라이트. 그는 자신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라고 평했다.
라이트는 루이스 설리번과 프뢰벨 블록, 일본 목판화 세 가지만이 자신의 건축에 영향을 끼쳤다고 인정한다.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을 남긴 근대 건축의 선구자다. 라이트가 평생 추구한 유기적 건축 역시 스승으로부터 전수해 발전시킨 것이다.
라이트가 건축을 시작한 건 1887년 루이스 설리번 밑에서 일을 하면서다. 하지만 라이트는 1893년 그간 몰래 개인 의뢰를 받은 것이 발각돼 해고당한다. 설리번의 곁을 떠난 라이트는 곧장 개인 사무실을 열었다. 프레리 하우스(초원 주택)라 불리는 라이트만의 독특한 주택 스타일이 이 시기 태어났다.
프레리 하우스 양식의 정수는 1909년 완공된 로비 하우스다. 약 6m의 지붕과 낮은 테라스가 평평한 대지와 평행을 이루며 내부 공간을 외부로까지 확장한다. 주요 주거 공간인 2층은 벽이 없다. 라이트가 집의 심장으로 여긴 벽난로를 중심으로 공간이 막힘 없이 퍼져 나간다. 라이트는 “초원은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그 자연미와 평온함을 인식하고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트 최초의 대형 프로젝트 라킨빌딩과 라이트가 ‘나의 자그마한 보석 상자’라 부르던 유니티 교회 등 주택 외 대형 건물에서도 그의 건축 철학은 일관된다.
라이트의 황금기는 스캔들로 무너진다. 결혼한 지 19년이 된 아내 키티를 버리고 고객 매이마 체니와 사랑에 빠지면서다. 라이트는 새로운 집 탤리에신을 짓고 1911년부터 매이마와 함께 산다. 아내와 이혼하지 않은 채다. 가십에 일거리가 끊기고 급기야 1914년 8월에는 가족이 살해당한다. 라이트는 일본 도쿄의 데이코쿠 호텔을 짓는 등 불행을 털어내려 애썼다. 데이코쿠 호텔은 1923년 일본을 강타한 관동 대지진에서 홀로 살아남으며 엔지니어로서 라이트의 이름을 높이지만 그의 슬럼프를 해결할 순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라이트를 구시대 건축가로 취급했다. 미국을 휩쓴 대공황도 문제였다.
1932년 라이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탤리에신 펠로십’이라는 실습생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라이트는 거기서 왕으로 군림하며 재기할 힘을 얻는다. 1935년 설계해 1939년 완공된 낙수장은 그 결과물이다. 라이트는 숲 속 폭포 옆에 여름 별장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는 아예 건물을 폭포 위에 띄웠다. 거실은 개울을 가로지르고 바닥은 돌 표면은 그대로다. 한쪽 끝만 잡아 수평을 유지하는 캔틸레버 공법으로 건물과 자연이 하나가 됐다. ‘사람들은 도면을 보기만 해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라이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라이트는 이 건물을 3시간도 안 들여 디자인했다. 소매를 흔들어 디자인을 빼낸다는 비유는 허풍이 아니었다.
두 번째 황금기는 이어졌다. 1936년 서민들을 위한 실용적인 주택 유소니언 하우스가 최초로 실현됐다. 민주주의를 건축으로 구현한 존슨 왁스 빌딩도 지어졌다. 라이트는 작품 전시와 강의 요청이 미국과 유럽에서 쏟아졌다. 영국왕립건축가협회와 미국건축가협회가 금메달을 수여했다.
1956년 뉴욕에 지어진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의 명성을 완성했다. 라이트는 나선형이 유기적 전신을 상징한다는 철학을 구겐하임 미술관 전체에 구현했다. 미술관 내부는 평평한 바닥 없이 경사면으로만 이어진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뻥 뚫린 모든 공간이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흐른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은 시시각각 내부 색채를 바꾼다. 꼭대기에서부터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내려가면 벽 위에 기대진 미술품들이 자연히 눈에 들어 온다.
1959년 4월 9일, 라이트는 구겐하임 미술관 완공을 6개월 앞두고 세상을 떠난다. 약 70년간 이어진 다작이 막을 내린 것이다. “위대한 건축은 인간이 위대하다는 가장 위대한 증거다.” 라이트는 생전 총 1천141점의 디자인을 남겼으며 그중 532점이 완공됐다. 지금까지 남이 있는 작품은 409점으로 그중 100점 가까이가 미국 국가사적지로 등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