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쓰다 시리즈 3/5
르코르뷔지에를 빼고는 현대건축을 설명할 수 없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 피카소의 입체주의,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등장한 20세기 초, 변화가 필요하던 건축계에 르코르뷔지에는 이름 그 자체로 새 시대였다. 새로운 언어로 시대를 초월한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는 현대 건축의 바이블이다. 급진적 사상가, 논객, 화가, 조각가, 가구 디자이너, 도시계획가, 공예가, 건축가. 다양한 수식어가 그를 기억한다.
스위스 소년 에두아르 쟈네레는 화가를 꿈 꿨지만 자질이 부족했다. 스승은 화가 보단 건축가의 길을 권했다. 소년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한 건축에 소질이 있었다. 1905년 17살의 나이에 첫 작품 팔레 주택을 설계한다. 건축 이론을 연구하던 28살에는 ‘도미노’ 시스템을 창안한다. 도미노는 집을 혁신한다는 뜻으로 철근콘크리트 기둥으로 모서리를 지지해 개방적 구조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벽이 자유로워지자 규모와 디자인이 무한해졌다.
젊은 건축가에게 모국은 좁았다. 1917년 파리로 옮긴 에두아르 쟈네레는 화가이자 디자이너 아메데 오장팡을 만나 순수주의 잡지 『에스프리 누보』를 창간한다. 르코르뷔지에라는 이름을 쓰며 새로운 건축 개념을 주창한 게 이때부터다. 파리 건축계에 그의 이름이 퍼져나갔다. 1923년 잡지에 쓴 글을 엮은 책 『건축을 향하여』가 출간됐다. 르코르뷔지에의 ‘제1시대’가 막을 연 것도 그 즈음이다.
1922년 르코르뷔지에는 사촌과 함께 건축사무소를 열고 개인 주택 설계에 매진한다. 지금까지도 주택 설계의 기본 공식으로 여겨지는 ‘현대 건축의 5원칙’을 적용했다. 도미노 시스템이 발전한 5원칙은 필로티, 자유로운 파사드, 자유로운 평면, 수평 창, 옥상정원으로 정리된다. 1931년 프랑스 포아시에 세워진 빌라 사보아가 이 원칙을 온전히 설명한다. 얇은 기둥 위에 얹힌 이 건물에는 하중을 부담하는 벽이 없다. 그 덕에 파사드와 평면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으며 가로로 긴 창문을 내 자연광을 한껏 들일 수 있다. 보는 지점마다 건물의 인상이 달라진다. 지층은 열려 있으며 건물 내부를 잇는 원형 계단은 동선을 자연스레 옥상 정원으로 이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르코르뷔지에의 대표 명제는 실로 인간을 향한다.
르코르뷔지에의 ‘제2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온다. 폐허가 된 유럽이 꿈을 이룰 기회의 땅이 됐다. ‘300만 거주자를 위한 현대 도시’ 등 도시계획을 발표했지만 실현에는 실패하던 차다.
1945년 르코르뷔지에는 프랑스 임시정부의 의뢰로 현대 아파트의 시초,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설계한다. 무려 337가구, 1600명이 살 수 있는 그 자체로 작은 도시다. 공장 생산된 판을 조립해 만든 철근콘크리트 건물은 세간의 평을 반으로 가른다. 건축사협회와 위생고등위원회, 프랑스 미학협회가 철거를 요구했다. 하지만 르코르뷔지에는 1952년 낙성식에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표준 모듈러 이론이 만들어졌다. 모듈러 이론은 아름다움의 근간인 인간 신체에서 황금 분할을 찾아 건축학적으로 수치화한 것이다. ‘훌륭한 비례는 편안함을 주고 나쁜 비례는 불편함을 준다’는 르코르뷔지에의 철학이 담겼다.
이후 르코르뷔지에는 자신의 도시 계획 이론을 프랑스 밖에서도 펼친다. 1951년 건축 고문을 맡은 인도 최초의 계획 도시 찬디가르가 대표적이다. 르코르뷔지에는 대도시가 될 찬디가르의 미래를 생각하며 도시계획안을 만들고 국회의사당과 총리 관저 등을 설계했다.
말년의 르코르뷔지에는 종교 건축과 미술관 건축으로 예술로서의 건축을 실험한다. 각각 1955년과 1959년에 완공된 프랑스 롱샹 순례자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이 대표적이다. 무한히 증축이 가능한 전시 공간을 뜻하는 ‘무한성장 박물관’ 개념은 1960년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서야 빛을 봤다.
르코르뷔지에는 1965년 작업실 근처 바다에서 심장발작으로 숨을 거둔다. “우리는 돌, 나무, 시멘트를 이용해 집을 짓고 회관을 짓는다. 이것은 건설이다. 여기에 재능이 작용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내게 도움을 준다. 그러면 행복해진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답군! 그것이 건축이다.” 르코르뷔지에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2016년 7월 유네스코는 7개국에 흩어져 있는 르코르뷔지에 작품 17개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