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과 상수역 사이 힙한 카페에 갔다. 무거운 철제문 안 널찍한 공간에 실로 힙스터 냄새 짙은 이들이 모여 앉아 있는 곳이었다. 저녁 시간 전인데도 조도 낮은 조명을 써 눈을 찌푸리지 않고는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찡찡 거리는 음악이 내내 머릿속을 헤집어 놨지만 한 마리 물고기가 된 척 리듬에 맞춰 분위기를 유영했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최신 유행 스타일로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이들 사이에서 나만 혼자 어색하기 싫어서.
힙스터는 목도 안 마른 걸까. 드물게 컵을 입가에 가져다 대는 사람들을 따라 평소보다 천천히 커피를 마셨는데도 나는 금방 화장실에 가고 싶어 졌다. 힙한 곳이라 부러 화장실을 찾은 게 아니다. 나는 평소에도 화장실에 자주 간다. 남보다 방광이 작은 게 분명하다. 화장실에 너무 자주 가는 거 아니냐고 팀장님에게 혼날 것 같아 오후에는 전화받는 척 몰래 화장실에 갈 때도 있다.
처음 가본 카페지만 익숙한 척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화장실에 갔다. 분위기를 읽는 척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면 화장실 표시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힙한 곳이라 그런지 화장실도 널찍했다. 마치 재벌 3세가 취미로 하는 카페인 듯, 화장실 가는 복도와 화장실 안 세면대 공간에 테이블 3개쯤은 더 넣을 수 있는 널찍함이었다.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카페를 싫어하지만 이렇게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곳을 보면 왠지 모르게 심통이 난다. 이 카페 사장은 전생에 무슨 공을 세워 이렇게 힙한 곳에 이렇게 넓고 힙한 카페를 차린 걸까. 나는 변기에 앉아 생각했다. 앞으로 여기에 자주와 힙스터들의 옷차림을 열심히 보고 따라 해 봐야겠다고. 그리고 나의 패션을 비웃는 모든 이를 비웃어주겠다고.
하지만 이 결심은 뒤처리를 위해 휴지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사라졌다. 일전에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꺼슬함이 손가락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에 몇 만 원하는 고급진 카페부터 천 원짜리 한 장에 동전 몇 개 보태면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싸구려 카페까지 두루 가봤지만, 이런 휴지는 처음이었다. 카페에 꽤 있었지만 화장실 가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 한 것, 화장실에서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나. 이런 휴지로 내 몸 어딘가의 피부를 문지른다면 피부가 헐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휴지는 꺼슬했다.
내가 어떻게 뒤처리를 마쳤는지, 어느 정도의 깔끔함으로 화장실을 나섰는지는 비밀로 하겠다. 다만 카페를 나와 맛없는 저녁을 먹은 후 갑작스러운 칼바람에 다급히 들어온 스타벅스 화장실에서 도톰하고 부드러운 휴지를 만났을 때, 고객님을 위해 고급 화장지를 사용한다는 스타벅스가 마치 청결과 편안을 위한 그곳의 안식처처럼 느껴졌다는 것만은 알아주기를. 전국의 카페 사장에게 말하노니, 널찍한 공간 힙한 인테리어도 좋지만 커피 한 잔 마시면 화장실에 두어 번은 가는 나 같은 손님을 위해 고급 화장지를 구비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