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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금 Feb 12. 2019

욕조를 잡자 일어설 힘이 생겼다

종일 떨었던 하루,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갔다. 꽁꽁 언 발에 온기가 돌도록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물에 잠긴 엉덩이가 남의 것인 듯 무겁다. 온몸의 근육에 힘을 줘 보지만 물에 오래 불린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결국 욕조를 손으로 잡고 당기듯 몸을 일으켰다. 혼자 엉덩이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욕조에 의지해 팔로 몸을 끌어당기자 저절로 엉덩이 아래와 허벅지 앞쪽의 근육이 바짝 서며 힘을 보탰다. 몸을 덮고 있던 물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일제히 빠져나가고, 나는 발을 하나씩 욕조 밖으로 빼냈다.

사람은 무슨 힘으로 일어설까. 자의 또는 타의로 주저앉아야 했던 지난날, 나는 늘 일어서는 방법을 몰라 헤맸다.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 무엇에 기대 무게를 덜어내야 하는지 알지 못해 주위만 두리번거렸다. 주저앉았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금방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아 허우적대는 내가 한심해 속이 죽었다.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이 내가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상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너무도 부끄러웠다.

뜨뜻한 물에 오래 잠긴 덕에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말랑말랑해진 것일까. 어쩌면 내게 필요한 건 아주 약간의 지지, 잠시 기댈 수 있는 만큼의 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조를 붙잡자 저절로 자리를 잡던 내 몸의 숨은 근육들처럼, 내게도 다시 용기를 내기 위한 사소한 계기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이전에는 차마 떠올리지 못했던 나를 향한 위로들이 김 서린 화장실에서 퐁퐁 피어올랐다.

원치 않던 변화에 주저앉은, 일어서는 방법도 방향도 모른 채 혼자 끙끙대고 있는 나를 본다. 여느 때처럼 인상 찌푸리는 대신 괜찮다 말한다. 손을 뻗으면 잡히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나의 욕조가 되어줄 거라고, 잠시 움츠러든 나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도피처나 해결책이 아닌 그런 따뜻함이라고 되뇌어본다.


아무리 손 뻗어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을 때에도 괜찮다. 그럴 때를 위해 욕조가 있으니까. 욕조가 찰랑이도록 따뜻한 물을 받아 몸을 흠뻑 담그면 그 뜨거움에 질식할 것 같다가도 어느새 노곤하게 녹아들 테니까. 욕실 가득한 수증기 속에서 나를 위한 위로를 하나 둘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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