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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콜 Mar 19. 2024

'부정적인 성향이 강하신 편이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부정적인 사람은 정말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

 나는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그걸 잘 알고 있다. 나의 뇌는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날카롭고 예민하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그 길을 안내한다. 오랫동안 이 과정이 나를 지켜내는 과정이어서 뇌가 그리 작용하는 것이라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이러한 부정적 프로세스는 너무 벅차고 지겹고 괴롭기만 했다. 그 말인즉슨, 이제 이런 부정적인 프로세스가 지금의 나와는 더 이상 맞지 않다는 것이 아닐까?

 하루를 긍정적으로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너무 빛나 보였다. 동시에 나도 저 사람처럼 빛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그 어떤 사람보다도 긍정적이고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똑같은 하루를 사는데 내 안의 소용돌이 때문에 회색과 검정으로만 물들여지는 내 하루들이 슬퍼졌다. 그리고 억울해졌다. 자연스럽게 내 안의 부정적 성향을 고치고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람으로 변하고 싶어졌다. 나를 위해 주어진 하루에 불안함, 걱정, 두려움 등의 부정적 감정보다는 행복감과 즐거움, 재미, 평온함의 감정 등 아름다운 감정을 더욱 짙게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알록달록한 다채로운 색상의 감정으로 하루를 채워가고 싶어졌다. 내가 살고 싶어서. 나를 위해서. 나도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런 하루를 살아보고 싶어 작년 한 해 동안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나에 대한 연구도 했고, 고치고 싶은 부분에 대해선 심지어 많이 고쳤고 고쳐가고 있었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도 긍정적이고 건강한 하루를 살 수 있음을 반복된 경험을 통해 알게 되며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그 경험을 통해 그 상반된 두 가지의 감정(긍정적 vs 부정적)은 결국 점 하나의 차이로 내 것이 되기도 내 것이 되지 않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예로, 똑같은 일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일이 불안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호기심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똑같은 사건을 겪었을 때 내가 나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느냐에 따라 자괴감과 자기 비난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성장의 밑거름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수많은 경험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점도 존재했다. 바로 이유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우울과 불안이었다. 분명 좋은 하루를 보냈고, 계획대로 살았으며 뿌듯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는데.. 그다음 날 이유 모를 우울과 불안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그러한 주기가 점점 길어지길 바라며 끝까지 노력했으나 내 기대와 노력과 달리 주기는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겠는 먹구름이 어디선가 흘러와 나의 하루를 캄캄하게 만들어버리니 너무나도 답답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힘차게 걸어가고 싶은데 계속해서 내 시야를 막는 먹구름에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한참을 어찌할까 고민을 하다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주변에서 상담을 통해 나아졌다며 강력하게 추천을 하기도 했고.. 뭔가 타인의 시점에서 나를 바라봤을 때 내가 보이지 않았던 부분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면 나도 더 빨리 그 문제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짧지만 짧고 길면 긴 상담을 두 달간 받았고 최근에 그 상담이 끝났다.

 상담을 통해 내가 모르던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어떻게 내 안의 소리를 듣는지에 대한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상담 날, 대화를 나누다 선생님께 '00님은 부정적인 성향이 강하신 편이긴 한 것 같아요'라는 말씀을 들었다. 유독 그 말이 나에게 울림이 컸는지 상담 내내 다른 이야기들은 들리지 않았다. 오직 그 말 한마디만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상담이 끝났을 땐..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들을 들었음에도 정말 많이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이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지? 상담을 더 이어가야 하나?'라는 불안함. '도저히 이런 성향은 바꿀 수 없는 걸까?'라는 좌절감.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두려움 등등. 그 말도 못 할 압도적인 감정들에 삼켜져 다시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펑펑펑.


흘러나오는 대로 눈물을 두었다. 눈이 퉁퉁 붓고 콧물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을 때쯤 눈물이 서서히 멈춰졌다. 게워낸 눈물에 부정적인 감정의 농도가 짙었는지 잦아든 눈물과 함께 평정심이 돌아왔다. 동시에 머리도 맑아지며 스스로 정답을 알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한 정답 말이다.


 가장 먼저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옆에서 한참을 토닥여주던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나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강제성을 조금 부여해 주길. 내가 하루에 한 번은 밖에 외출을 하도록 쫓아내 주길 말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집에서 나가 바깥공기를 쐬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환기가 엄청나다는 것을 작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보다 무기력으로 인한 귀찮음의 힘도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또 하루에 한 번은 꼭 나의 하루를 돌아보고 칭찬을 해달라고 했다. 내가 스스로에 대한 칭찬이 야박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해 익히고 싶기도 했고.. 나의 하루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날부터 남편과 함께 아침에 일어나고 남편이 출근을 할 때 나도 운동을 가기 시작했다. 오전 일정을 보낸 뒤 점심을 먹고 나면 남편의 응원으로 카페로 향했다. 혼자서는 나가기 귀찮아서 나가지 않았을 텐데 남편의 재촉으로 강제적으로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현관문 밖으로만 나와도 기분이 확 달라지곤 했다. 그렇게 비가 오는 한 주 동안 할 것들을 챙겨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나 차 한 잔을 마시며 할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의 끝엔 오늘 하루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내 하루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가며 칭찬을 해줬다. 남편의 칭찬을 들으며 나도 내가 보낸 하루에 대해 '아 내가 오늘 그건 잘했었네.'라고 한 번 더 짚어보며 뿌듯해졌고 동시에 나의 하루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상담을 받는 동안 소홀히 했던 아침 일기와 Digging diary를 다시 작성하기로 했다. 사실 상담 막바지쯤부터 일기와 Digging Diary를 쓰고 싶다는.. 아니 써야 한다는 필요를 강하게 느끼긴 했다. 최근 상담을 받는데도 이상하게 부정적인 성향이 강했던 재작년의 나로 관성처럼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었는데.. 그걸 인지한 내 무의식이 글로 내 생각과 감정을 풀어내며 긍정적이고 건강한 생각을 하곤 했다는 것을 잊고 지내는 나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써보기로 했다. 다시 써보며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것들과 배운 방법들을 토대로 스스로 다시 도전하고 싶어졌다. '작년에 혼자서 이만큼이나 성장했는데 또 못하겠어?'라는 자신감이 들면서 말이다.

 펑펑 운 다음 날 오후. 일기와 아이패드를 들고 동네 스타벅스로 향했다. 좋아하는 오트 밀크 마차 라떼 한 잔을 시키고 비 오는 창가에 앉아 오래간만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나에겐 부정적인 성향의 나에 대한 존재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작년 한 해 내가 만들어온 긍정적 성향의 나에 대한 존재감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커져있던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저 우주의 정말 작은 먼지 한 톨 같은 존재라고 여겼는데, 중력을 가진 달처럼 그 존재감이 꽤나 커져 나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던 걸 알게 되었다. 부정적 성향의 나로 돌아가려는 관성이 거대한 태양과 같이 더 강렬하여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분명 '긍정적이고 건강한 나로 돌아가려는 관성'도 존재했던 것이다. 글을 마구 써 내려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긍정적이고 건강한 결과를 도출하는 나를 발견하며 그 관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자 앞으로 내가 어디로 향하면 되는지, 어떻게 가면 되는지가 너무 잘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나를 아무것도 못 하게 가뒀던 먹구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스쳐 흘러가 사라져 버릴 먹구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 위로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해보지 뭐'라는 용감함과 '이만큼이나 해냈어!'라는 나에 대한 기특함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세 번째로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작년에 내 인생의 일부가 되어버린 여러 가지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달리기'이다. 달리기를 시작하며 마음의 건강을 찾고 새로운 나에 대해 발견하기도 했다. 이런 달리기를 최근 두 달 동안 코로나와 대상포진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미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건강도 많이 회복이 되었으니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새로운 운동도 질러버렸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 지 오늘로써 벌써 3주 차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아주 효과가 좋다. 물론 내가 가진 체력보다 강도가 더 높아 너무 힘들긴 하지만.. 운동을 하며 '현재'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이 건강한 마인드를 가꾸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과거의 내 선택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을 하는 시간보다 현재 나의 호흡, 근육의 움직임, 자세 등에 집중하며 현재의 나에 대한 관심을 늘려가니 즐거운 마음이 더더욱 커지게 되었다. '와 어제는 이만큼 못 했는데 오늘은 이만큼 했네?'라는 소소한 것에 대한 즐거움 말이다. 화창한 날, 비 오는 날, 흐린 날 모두 무조건 밖으로 나가 달리기를 뛰었는데 이때에도 신기한 경험을 했다. 늘 뛰던 코스로 뛰기 시작했을 뿐인데 작년에 내가 달리기를 뛰며 느꼈던 긍정적이고 건강한 생각과 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때 그 생각을 했던 계절, 그 냄새, 그 풍경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묘하면서 애틋하고 몽글몽글하고 뭉클했다. 이렇게 서서히 긍정적이고 건강한 자아의 경험치를 쌓아가다 보면 나도 빛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두 달 만에 다시 홀로서기를 시작한 지 이제 2주가 되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는 듯하다. 분명 언젠간 비가 쏟아져 배가 부서지고 역풍에 방향을 잃기도 하겠지만, 기특하게도 이제는 지금껏 해온 것처럼 잘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 같다. (전우애 같기도 하고.) 분명 그 과정이 길고 고될 게 분명하다. 그래도 평생 부정적으로만 살고 싶진 않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라도 긍정적이고 건강한 나로 바뀌기 위해 버티고 또 버틸 것이다.

 앞으로 써 내려갈 나의 글들의 상당 부분이 이러한 과정에 대한 내용이 담기지 않을까 싶다. 부정적인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자아 성찰기. 사실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솔직하게 내 모든 감정과 생각을 담아서 글을 써 내려가 보려 한다. 부정적인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함께 잘 살아가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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