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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콜 May 03. 2024

잘 쉰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에게 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어떻게 쉬어야 하는 걸까?

  최근 몇 년 동안 나에게 제일 고민이었던 것은 '어떻게 쉬어야 잘 쉬는 것일까?'였다. 어쩌다 백수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지게 되면서 조급함과 불안함만 쌓여갔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고, 이런 생활이 점점 지속되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의 내가 놓여 있음을 발견하였다. 쉬는 것도 무언가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애매한 시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분명 나는 내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도 무언가를 '제대로'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제대로' 쉬며 여유를 즐긴다는 느낌도 없었다. 가끔씩은 그 중도의 길을 균형 맞춰 걸어갔지만 대부분은 균형을 잃고 이쪽저쪽으로 휩쓸려 버리곤 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자 점점 지쳐만 갔다. 결국은, 하나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결론이 났다. 쉴 거면 제대로 쉬고, 할 거면 제대로 하는 것. (사실 조금 더 일찍 그걸 알아채고 고민했음 덜 스트레스받았을 텐데.. 싶긴 하지만, 이제라도 알아챈 것이 다행이다 생각하려 한다.) 애매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아닌, 악보처럼 각각 마디를 끊고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쉰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지금껏 한 번도 이렇게 긴 휴식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대학을 다닐 동안 딱 한 번 휴학을 해봤는데 그것도 인턴을 위한 휴학이었다. 졸업 후에는 취업준비를 하며 바삐 지냈고,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할 때에도 이직하기 위한 공부를 했다. 정말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쉴 줄을 모르는 거구나, 바쁘게 살지 않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이리도 불안하고 죄책감이 드는 거구나 싶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이제라도 제대로 쉬는 것을 내 삶 속에 스며들게 하고 싶어졌다. 앞으로 살 날이 더 긴데, 그 시간 동안 잘 쉬는 법을 몰라 쉬지 못한다면 너무 안쓰럽지 않은가.

 

 잘 쉬는 법, 잘 쉰다는 것 등 여러 키워드를 검색해 봤다. 다양한 동영상도 찾아보고 책도 읽어봤다. 내가 접한 대부분의 콘텐츠들은 결국 잘 쉬는 것은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저 사람들의 말대로 쉴 때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게 나에게 맞는 쉼일까? 아니 그전에, 나는 도대체 여태 어떻게 쉬어왔나? 그동안 '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며 쉬는지도 제대로 자각이 안 됐다. 그저 내가 평소에 하던 것들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 생각났다. 과연 평소에 하던 것들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쉼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 쉼을 하고 난 뒤에 딱히 긍정적인 기분을 가졌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을 때운다는 생각이 강했다. 


  나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었다. 우선 나는 '쉰다'라고 생각하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나에게 쉰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를 찾아보고 싶었다. 과연 내가 원하는 쉼은 무엇일까? 

몇 달간 관찰한 결과, 내 몸에 익어있던 '쉼'은 소파에 널브러져 무언가를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밀린 예능이나 영화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던가. 평소에 '쉴래'하고 말한 뒤, 내가 하는 행동은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내가 택한 '쉼'의 행위가 만족스러운가? 결론은.. 아니었다. 이런 행위들을 한 뒤 나는 오히려 시간을 버렸다는 것에 부정적 감정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죄책감에 휩싸이던가 불안감에 휩싸이던가 자책까지 하는 경험이 잦았다. 부정적 감정이 드는 이유는 분명했다. 내가 할 것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잘 쉬는 것에만 급급한 주객전도된 상황이었을 때. 그리고 쉬고 나서도 의욕이 다시 차오르지 않아 의욕이 생길 때까지 쉬는 행위를 반복하게 되었을 때였다. 결국, 이런 부정적 감정을 더 돋우는 행위들은 나에게 맞는 쉼이 아니었던 것이다. 동시에 내가 원하는 '쉼'이란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나에게 맞지 않는 쉼의 반복이 주는 나비효과였을까? 이번 4월 한 달 동안 당최 의욕이 나질 않았다. 무엇을 해도 허무했고, 부질없이 느껴졌다. 이미 소진된 배터리를 1%씩 겨우겨우 충전해서 써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꾸역꾸역 일어나 보려 했지만 결국 만족스러운 결과는 없었다. 2 주내 내 그렇게 괴로워하다, 그냥 이왕 이렇게 된 이 김에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하며 푹 쉬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기회에 나에게 맞는 잘 쉬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잘 쉬는 것도 잘 쉬는 걸까 싶긴 하지만.. 뭐 아무튼.) 금상첨화로 우연한 좋은 기회들도 합쳐져서 4월 한 달 정말 다양하게 쉬어 볼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캠핑도 다녀와봤다. 집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반 가량 운전을 해서 울창한 숲이 많은 시골 동네로 향했다.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가니 컨테이너 집 한 채가 있었다. 바로 그곳이 우리의 첫 캠핑장이었다. Getaway라는 캠핑장의 이름에 맞게 속세에서 벗어나 단절된 채 숲 속에서 하루를 지내는 것이었다. 비록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는 날씨로 밖에서 고기를 구워 먹진 못했지만, 넓은 통창을 통해 비 오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다. 안에 조리공간이 있어 그 좁은 조리공간에서 대충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할 게 없어서 남편과 카드게임을 하며 도란도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밤에는 비가 그쳐 기대했던 캠프파이어도 해봤는데 사방이 너무 캄캄해 곰이 나올까 봐 좀 무서웠다. 하루종일 폰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봤던 캠핑이었다. 그다음 주에도 바로 다른 곳으로 캠핑을 다녀와봤다. 미국 동부에 Cape Cod라는 아주 유명한 동네가 있다. 현지 사람들에게도, 주변 한인분들에게도 여러 번 추천을 받은 동네였다. 심지어 여름이면 차가 막혀 가 볼 수 없다는 그곳을 비수기일 때 후다닥 다녀와봤다. Cape Cod에 있는 캠핑장은 카라반 같은 곳이 우리의 숙소였다. 이 캠핑장은 첫 캠핑장과 달리 카라반과 텐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어 활기가 넘쳐 좋았다. 그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캠핑을 하며 모닥불에 고기도 굽고, 스모어도 해보고, 밤에는 북두칠성도 봤다. 이렇게 두 가지 캠핑을 하며 쉬어본 결과, 나는 단절된 채 숲 속에 콕 박혀 있는 것이 더 쉬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고 오히려 충전되는 기분이 더 많이 들었다.


  여행도 다녀왔다. 올 초부터 계획했던 상반기 MAIN 여행이었다. 바로 캐나다에 있는 Banff National Park였다. 주변에서 정말 예쁘다고 꼭 다녀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서 올 초에 바로 예약을 했었던 곳이었다. 작년에 서부의 Yosemite National Park와 동부의 Acadia National Park 두 군데를 다녀온 뒤 국립공원의 매력에 푹 빠졌던 터라 많이 기대됐다. 특히, 그 어떤 여행보다 국립공원을 여행하면 마음이 많이 편해지는 걸 느꼈어서 이번 여행도 그리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장엄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다 보면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지고 잠잠해진다. 4월임에도 봄과 겨울을 모두 갖고 있는 곳이었다. 어떤 곳을 향하다 보면 갑자기 눈이 쏟아졌고, 어떤 곳으로 향하다 보면 해가 뜨며 따스한 봄날이었다. 소복이 쌓이는 눈을 밟으며 사박사박 빽빽한 침엽수림을 올라가는 것, 꽁꽁 얼어붙은 얼음호수 위를 뛰어다니는 것, 따스한 햇살 아래서 푸르른 녹음을 바라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마냥 행복하고 평온하게 다가왔다. 그 거대한 산맥과 호수를 바라보면 내 걱정과 불안이 한없이 작아졌다. 성공적인 힐링 여행이었다.


  그 외에도 자잘한 많은 것들을 시도했다. 좋아하던 만화와 소설을 정주행 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식물을 하나 사서 키우기 시작하기도 했다. 게임을 해보기도 하고 미술관도 평소보다 많이 가봤다. 사람들도 평소에 만나던 횟수보다 더 많이 만났다. 이렇게 다양하게 어떤 행위가 나에게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지 찾아보려 노력했다. 그 결과, 시도했던 쉼 중 가장 '에너지가 충전된다'라고 느꼈던 쉼은 바로 자연 속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글을 쓰면서 자신에 대해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전혀 알아채지 못했었는데.. 난 그동안 계속 자연 속에서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도 답답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으면 무작정 집 앞 공원으로 나가 앉아있거나 걸어 다녔다. 이 동네로 이사오기 전에는 살던 집 근처 강변 공원에 앉아 강을 바라보며 쉬는 걸 좋아했었다. 초기 정착 시기에 우울증이 왔을 때에도 틈만 나면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들을 찾아다니며 한두 시간 산책을 하다 오곤 했다. 심지어 미국으로 이사오기 전에도 나는 자연 속에서 쉬어가곤 했었다. 마곡나루에서 자취할 당시, 자취방 근처에 서울식물원이 있었다. 퇴근을 한 뒤에도, 연차를 쓴 날에도, 주말에도 정말 시간만 나면 이 공원에서 걷다 오곤 했다. 안양 신혼집에선 신혼집 근처 냇가를 거의 매일 걸었다. 냇가를 걷다 보면 나는 풀내음과 물비린내가 좋았다. 그렇게 자연 속을 걸으며 계절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아, 이렇게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나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구나... 나는 꾸준히 그렇게 나도 모르게 나에게 가장 효과적인 쉼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며 처음으로 나에게 맞는 '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찾아보는 시간을 한 달 동안 가져봤다. 그 과정에서 긍정적 에너지 중 특히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의욕, 동기부여가 다시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러한 쉼을 택하고 행하고 있었던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어떤 사람들에겐 그냥 스트레스를 해소하여 해방감을 느끼는 것, 하던 것들을 모두 잠깐이라도 멈춰버리고 고요함 속에서 평온함을 채우는 것 쉬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이 모든 쉼의 의미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2024년 4월을 살고 있던 나에겐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한 부담감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의지, 해내겠다는 의욕을 충전시키는 쉼이 필요했던 것 같다. 캠핑, 여행 등을 통해 에너지가 가득 충전되었는지 이제는 여행을 가기보다는 해야 할 것들을 해나가도 싶다는 마음까지 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한 달 동안 치열하게 '쉼'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실험해 보면서 이런 경험이 인생을 살며 한 번쯤은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저 시간을 소진시키는 행위를 쉼이라고 착각하여 부정적 에너지만 쌓아왔던 나이기에 더 절실하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저 쉬지 않고 달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정말 잘 쉬는 것이 결국 잘 달려 나가는 것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나의 인생은 아직도 흘러가는 멜로디다. 모든 음악에는 강약이 존재한다. 여태껏 강약이 애매하게 존재하는 멜로디였다면, 이젠 강약이 확실히 존재하는, 마디마디가 뚜렷한 의미가 있는, 그래서 효과적이고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멜로디가 흐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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