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고
올 명절에는 장염으로 고생을 했다. 나는 분기별로 심한 장염이 온다. 가끔 병원에서는 신경성이라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지라고 생각한다. 명절을 마무리하면서 영화'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았다.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 동료들을 찾아가는 모습 그리고 동료를 설득하는 모습에서 노란 간절함이 보였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에서 남편과 통화하는 주인공 산드라의 "그래도 잘 싸웠지? 나 행복해"라는 대사에서 마음이
쿵 -
내려앉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잘 싸웠을까하는 생각이 마음을 지나갔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부끄럽게도 또 노량진을 생각한다.
지난 2년간 두 권의 책을 만들어 내면서 나는 이 두 권의 책과 앞으로 내가 만들어 나갈 이야기가 노량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져온 것은 전부라는 말이고 가져오지 못한 것은 '합격'이라는 종이쪼가리인데 나는 이것이 왜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 내가 아직 미련이 있어서 아닐까. 사실 지난 연말 수험서를 다시 주문했다.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수험서를 주문하면서 결단을 지불하고 미련을 구입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경찰관이 되고 싶다.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움이 되는 사람인데 그래서 그 경찰관이라는 직업을 한다면 가장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에 맞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경찰관이 되지 않아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노숙자에게 파란 1000원짜리 한 장을 주는 것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도 있다. 내가 하는 조그만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문제다. 문제만 많고 정답은 없다.
나는 왜 아직도 책상 한 쪽에 수험서를 쌓아놓고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겉표지만 보면서 공부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합격이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가 이루어내지 못했던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싶은 것일까.
어쩌면 나는 내가 보냈던 시간이 불합격이라는 딱지를 가만히 둘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보냈던 시간이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일까 겁이 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잘 싸웠다고 잘 싸웠지만 졌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졌다는 사건이 중요하지만 때로는 잘 싸웠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내 노력의 엔딩이 합격은 아니었지만 내 노력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모양일 때 "그래도 나 잘 싸웠지? 나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아직 나의 엔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는 모든 과정을 습득하고 있다. 그냥 모든 과정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는 나라는 사람에게 꼬옥 그렇게 말해줘야지
"그래도 나 잘 싸웠지? 나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