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절기 Feb 05. 2022

그렇게 살고 싶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고 나서

 회사생활 6년차. 대부분의 능력이 회사생활을 할수록 개선되지만, 끝까지 개선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타부서에 전화하기이다. 이것은 매우 치명적이다. 왜냐면, 행정직의 업무는 50%의 문서작업, 나머지 50%가 타부서 및 기관과의 협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협의는 전화로 이루어진다.


 요즘 세대들은 문자가 더 편하다고 했던가. 그렇게 요즘 세대들끼리 회사가 물갈이됐으니 문자로 하면 안 되는가 했지만, 회사의 기본은 전화다. 문자를 보내면 언제 대답이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건 내 입장에서 ‘부정’적인 의견일 경우이다. 상대가 부정적으로 나올 것이 뻔한 상황에서 통화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지옥 같다. 전화를 걸기 전부터 등에 식은땀부터 난다. 


콜포비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런 두려움을 느끼는건 나뿐만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속 주인공이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기를 주저하는 것이 너무 이해가 간다. 심지어 그들의 보너스를 포기하라고 말해야 한다니, 산드라는 이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본인이어도 보너스를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사실 말이다. 나야 전화에서 거절 받아봤자 상사에게 욕을 먹을 뿐이지만, 산드라는 자신의 일터에서 자신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자신이 존재가 가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랬던 그녀가 여러 번의 좌절의 반복에도 다시 앙상한 몸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긍정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남편의 긍정. 산드라의 옆에서 응원하며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남편도 속으로는 안될 가능성을 크게 갖고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할 수 있었던 건 그 불안 속에서도 작은 빛을 보았던 긍정의 힘에 있었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동료들의 긍정. 자신의 이익보다 산드라의 복직을 선택하는 행동이 옳다라는 긍정. 이런 긍정은 결국 마지막 산드라의 긍정으로 이어진다. 남편에게 받은, 희망은 있다라는 긍정과, 동료들로 받은 자신의 선택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 것이라는 긍정. 영화 마지막 그녀의 미소는 그 긍정의 빛 때문인지 그녀를 비추는 햇살보다 더 밝게 느껴진다.  



 결국 이 영화는 긍정이 옮아가는 이야기이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한 산드라의 울상이 긍정적인 미소로 변하는 이야기. 부정적인 마음은 전염이 빠르다. 베르테르 효과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 부정보다 더 많은 긍정이 있어야 세상은 밝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주변에 부정적인 마음을 전염시키는 사람인가, 긍정인 마음을 전염시키는 사람일까. 만일 전자라면 후자로, 만일 후자라면 더 큰 긍정을 전염시키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질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