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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영 Feb 05. 2022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질 거야

스물아홉, 분주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했을  나는 부당한 일을 겪었다. 어느  우리 매장에 전배를  부점장과의 트러블이었다. 정신없이 일하는  등 뒤를 지나가며 “이런 애랑 무슨 일을 하라는 거야.”라는 모진 말을 뱉었다. 실제로 내가 일을 잘하지는 못해서 당신의 말이 힘겨웠지만,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상사의 나무람은 늘어만 갔고, 나뿐만 아니라 후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정식적으로 일을 가르쳐준 적은 없었다. 답답하다는 이유를 핑계로 우리는 배울 기회를 빼앗겼고, 단순 노동만을 할 뿐이었다. 


그가 미웠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참아내고 있으니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참고 또 찾아가던 어느 날, 부점장은 큰 실수를 했고 우리는 애써 수습하고 있었다. 점장이 나타나 상황을 묻자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가장 열심히 일하고 후배를 챙기던 파트너였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을 대로 끓어버린 나는 결국에 점장과 따로 약속을 잡았다. 점장이 과연 나의 편이 되어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오래 일을 한 부점장의 편을 들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입술이 바싹 타들어갔다.


결국에는 잠을 설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점장을 만나러 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둘러대기에는 많은 시간 참아왔고 함께 일하는 사람의 한숨과 눈물이 보였다. 용기가 넘치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장 그만둔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함께 좋은 마음으로 일하던 동료들은 계속해서 이 상황을 견뎌야만 할 테니 그것 역시 싫었다. 점장이 내려준 커피를 받아 한 모금 마시고는 모든 이야기를 전했다. 부점장과의 일, 그리고 그 뒤에서 견뎌야 했던 우리의 시간을.


말을 하는 내내 커피가 담긴 컵을 바라보고 있었던 나는  말을 모두 끝내고 나서야 겨우 정면을 바라보았다. 점장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다며 자신을 탓했다. 미안하다고, 조금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사과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나는 한동안 벙쪄있다가 휴지를 가져와 점장에게 건넸다. 다음  부점장은 내게  사과했고,  후로부터 내가 그만두기 전까지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나를 위해 싸워본 것이었다. 도망치지 않고 나를 위해, 나의 내일을 위해 싸워본 경험은 그 후로도 내게  힘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산드라가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망설이고 주저하는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았다.  사람  사람을 만나며 기대하고 실망하면서 끝까지 노력해보는 그녀의 여정이 지난날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하고 그를 위해서 맞설  알아야 한다. 누군가 대신해주는 일이 아니니까. 이기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말뿐인 사과를 받더라도 괜찮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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