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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Aug 06. 2024

개량은 없다. 물 깍두기 담기

사람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도 그렇다.

 처음 결혼하고 김치를 시작으로 아이가 태어나 아토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먹였다. 아이에게 설명을 했고 몸으로 느끼는 아토피는 나의 설명보다 더 큰 효과로 나타났다. 마트에 가도 과자나 음료를 사달라고 떼를 쓰지 않았고 먹고 싶은 걸 말하면 내가 만들어 주었다. 그 아이가 자라 이제 성인이 되었고 나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김치조차도 사 먹게 되었다. 10kg  배추김치를 사면 6개월 정도는 넉넉히 먹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깍두기를 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결국 어제 마트에 들러 무를 사서 왔다. 

 가을무처럼 단단하지는 않지만 바람이 들지 않은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반달모양으로 썰다가 너무 큰 것 같다 자르다 보니 애매한 사이즈가 되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애매한 모양의 무를 천일염을 뿌려 절여놓고 양념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춧가루와 마늘, 새우젓을 넣고 액젓과 약간의 설탕을 넣었다. 쌀가루로 풀을 쑤고 동전육수 하나를 으깨 넣었다. 개량은 없다. 그냥 손 가는 대로 느낌대로 '대충'하다 보니 모양도 맛도 그럴싸한 양념이 완성되었다. 절여놓은 무를 헹구고 양념에 버무렸다. 여기에서 멈추었어야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천일염 한 숟가락에 정수기 물을 따라 간을 맞추고 김치통에 부었다. 새콤한 김치국물에 국수를 말아먹겠다는 생각이 그 순간에 나를 지배한 것 같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설거지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부터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한 건지 과거의 나를 질책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익히려고 부엌에 내어놓은 김치통은 몇 시간 만에 보글보글 발효가 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물을 붓기 전에 몇 개를 반찬통에 담아놨다는 것이다. 그거라도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큰아들은 뭔지도 모르고 먹을 생각도 없어서인지 내가 걱정을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자기 일이 아니고 말을 해 봐야 이득이 될게 아니니 입을 닫은 것 같았다. 내가 만들었고 다 내 차지이다. 볶아먹고 졸여먹고 채 썰어서 먹어야겠다.  



 주말에 잠시 들른 여동생도 탄식을 쏟아 냈다. 낙장불입. 어쩔 수 없는 일을 너무 해맑게 저지르고 나니 이제는 잘못된 선택이 아니길 기다릴 뿐이다. 조금 덜어내 놓은 무는 어느새 익어 반이 없어졌다. 삼삼한 간으로 크게 한입 베어 물면 먹을만하다. 무엇보다 짜지 않아 내 입에는 좋다. 후회로 이틀 동안 싱크대에서 보글거리는 것을 확인하고 김치냉장고에 넣었다. 일주일이 지났는데 겁이 나 확인을 하지 못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한 것 같다. 김치는 사 먹어야 제맛인데 알면서도 또 내손을 타게 만들었다. 간혹 운이 좋아 얻어걸리기도 하지만 그런 요행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싫다. 작은 자존심을 앞세워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볼 뿐이다. 어차피 애들은 안 먹고 잘되도 망해도 다 내 차지다. 시골에서 보내준 양념들이 아까울 뿐이다. 


 사람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이지 싶을 때도 있지만 간혹 수습이 안될 때면 타인에게 표 내지 않고 속으로 나를 원망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내 마음을 누르고 달래서 마음을 둥글게 둥글게 말아 준다. 그래! 어차피 다 내 거야. 좋은 마음으로 김치냉장고에서 망한 김치가 맛있게 회생되길 기원해 본다. 어쩌면 운 좋게 가던 길을 돌아 맛있게 익어 나에게 오길 바란다. 꼭!


그리고 김치는 사 먹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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