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사람에게 숲은 없다.
경력단절의 큰 산을 넘어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이 되는 과정은 정말 눈물겨운 역경들이 많았다. 제일 큰 적은 남이지만 나와 법적으로 엮인 시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또 다른 걸림돌은 두 아들들이었다. 내 자식이야 어떻게든 이고, 지고 산 넘고 물 건너갈 수 있지만 남의 아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존재다.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 정말 발 뒤꿈치만 봐도 화가 나는 존재다. 무엇이든 해야 했다.
절박함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 지금의 직장인인 나를 만들어 냈다.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아들은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발 뒤꿈치만 봐도 화가 났다. 무엇이든 해야 했었다. 절박함이 맨발로 절벽 앞에선 나를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밀고 있었다.
여성새로일하기센터라는 곳에서 경력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쓰는 걸 도와준다는 상담사의 말에 신청을 했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남편에게 타서 쓰고 검사까지 받는 천 원, 만원이 싫었다. 그래서 경제적인 독립이 꼭 필요했다. 상담사는 나와 짧은 개별상담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세요"
나는 나무를 볼 수가 없었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고 멀리 봐야 되는데 그럴 힘이 없었다. 숲을 보라는 말은 무언가를 가지고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에게 해야 하는 말이다. 당장 할 수 있는걸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에게 사실 그런 말은 무용하다. 무언가 준비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고상한 말로 거시적으로 보고 미래를 생각해 자신의 진로를 생각하라는 말일 것이다. 어떻게 십여분이 좀 넘는 그 짧은 상담으로 나를 판단하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보다 20살은 어린 사람이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고 각개전투를 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물론 나이가 어리다고 그 사람 자체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삶의 무게는 다르고 그 기준이 나이가 아닌 것을 안다.
'네가 내 인생을 알아?'라는 말이 목구멍을 지나 앞니 앞까지 나왔지만 꿀떡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 내가 참아야 했다. 내가 모자라서 이런 말을 듣고 이런 취급을 받는다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내 생각은 틀렸다.
"이 사람들아! 나무도 겨우 본다고. 이제야 나무를 볼 수 있다고... 숲은 개뿔.. 보여야 본다고."
낭떠러지에 서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살아보려 겨우 더듬더듬 느낌으로 나무인 것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숲을 보라니? 보여야 보는 것이다.
원하던 직장인이 된 지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숲을 보라 말은 하지 않는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라고. 자신을 갈아내서 무언가 창조하지는 말라고 조언할 뿐이다.
"가다 보면 나무가 보이고 숲도 만나게 된다고,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당신이 틀린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삶에서 정답은 없다고."
"어쩌면 나무만 봐도 옳은 삶일 수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