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밥
아파트 헬스장에 천국의 계단이라는 운동기구가 새로 들어왔다. 오늘 나도 천국을 경험하고 왔다. 밥 할 힘도 없지만 아들이 배가 고픈지 냉장고 문을 수도 없이 여닫는 걸 보고 간단하게 먹을걸 고민하다가 동생이 가져다준 김치가 생각났다.
묵은지를 씻어 짠맛을 빼주고 물기를 제거해 준다. 묵은지에는 양념을 하지 않았다. 어제 먹고 남은 스팸이 남아서 가위로 대충 잘라 밥에 섞어주고 들기름과 소금, 깨소금으로 밑간 했다. 속재료는 기호에 따라 넣어주면 된다.
돌김이 있어서 살짝 구워 반으로 잘라 사용했다.
냉장고에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는 이것만 한 게 없다. 아들이 이제는 성인이라 나와 입맛이 맞을 때가 간혹 있는데 이 묵은지가 그렇다. 세상에 김밥은 쳐다도 보지 않는 아들이 내일도 만들어 두라고 하니 생각보다 맛이 있었던 모양이다.
자투리 묵은지는 작게 밥만 말아주면 한입에 쏙 들어간다.
둘둘 말아 잘라주면 먹기도 좋다. 컵라면과 먹으면 궁합이 딱 좋다.
아들도 이제는 어른이 되어가는지 초등학생 입맛에서 벗어나고 있다. 중간 없이 아재 입맛으로 가지는 않겠지만 7월 군입대를 앞두고 먹고 싶다는 걸 더 많이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언젠가 오늘 해준 이 묵은지말이를 해 달라고 하겠지? 그럼 나는 또 아재 입맛이냐고 웃으면 김치를 씻고 있겠지?
이렇게 평온한 하루가 정말 고맙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오늘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남편이 아니라 자식이라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김치를 씻고 콧노래로 음식을 만들었을 것이라 내 속마음을 짐작해 본다. 맛있게 먹어만 준다면 잠깐의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식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오늘도 아들 수발 성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