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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웃음에 속은 나

망한 결혼의 시작

by 신의손

할머니의 바람처럼 고무신공장에 가서 착실하게 돈을 벌었으면 아마 그 공장에 다니는 남자와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보다 조금은 나를 위해주는 남자였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선택하고 나를 선택한 사람이 지금의 남편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은 자신의 잣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 후회는 없다. 다만 그런 선택을 한 과거의 내가 조금은 야속하다.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은 나를 깎아 억지로 맞추었다. 남편은 순진하게 웃으며 조선시대 한량처럼 나를 가스라이팅했고 바보 같은 나는 당연하다 수긍했다. 결혼을 하기도 전에 이미 나는 수평적 평등의 관계가 아닌 상하 주종의 관계로 나를 묶고 또 묶었다.


시댁에 처음 인사 가는 날아침 여동생과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했다. 결혼은 처음이라 시댁이라는 곳에 인사도 처음이었다. 처음 만나는 시부모님은 내가 거실에 앉자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호구조사를 끝내자 시어머니가 말했다.

"없는 살림에 자식은 뭐 하러 많이 낳아가지고...."

나는 2남 2녀 중 둘째이자 장녀이다. 남편은 나보다 한 살 많은 여동생이 있다. 참지 말았어야 했는데 상을 엎을 수는 없어 참았다. 이날부터 나의 망한 결혼이 시작되었다. 기다란 교자상에 상추를 씻은 소쿠리 2개와 배달회를 스티로폼 접시째로 내놓는 대범함에 나는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회를 배달했다는 말에 나는 너무 기뻐 눈물이 날뻔했다. 어린 시절부터 홀대받고 살아온 내가 이 집에서는 대접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가족이 함께 살던 시골에서 회는 1년에 두어 번 정도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었다. 바닷가인 부산에서 회는 그냥 짜장면처럼 만만한 음식인데 나는 대접받는다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 후 시어머니가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처음 인사를 하러 간 날 나를 돌려보내고 자신들만의 2차를 즐기며 나를 품평하기 위한 음식으로 회가 적당 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시아버지가 나를 원숭이라고 하면서 괜찮겠냐고 물었다고 했다. 남편의 가벼움을 좀 더 빨리 눈치챘었어야 했는데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소화제를 먹고 누워 시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입이 터져라 상추쌈을 싸던 일이 생각나 밤새 이불킥을 했다.

설명절에 남편이 인사를 와 떡국을 먹고 돌아갔다. 결혼 후 몇 년 동안 남편은 나와 다툼이 있을 때마다 백년손님인 사위에게 밥 한 번 차려주지 않은 엄마를 소환했다. 떡국은 밥이 아니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떡국이든 밥이든 정성 들여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된다고 생각한 나와는 달리 시어머니와 남편은 밥이라는 것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밥은 허기만 채우면 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먹는 것이 최우선인 남편은 TV에서나 보던 잔칫상을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이쯤에서라도 도망을 쳤어야 했는데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고 남편을 많이 좋아했다. 내 선택을 믿었고 남편도 나와 같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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