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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Sep 30. 2023

여름 새참 심부름.

야속한 마음

    

 여름이 오려는지 이른 아침부터 마당은 햇볕으로 가득했다. 한 날 할머니께서 마당에 솥을 걸고 논에 가지고 갈 새참으로 국수를 삶고 계셨다. 할머니를 도와 은영이도 마당에 걸린 솥에 나무를 주워 넣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매캐한 연기에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나무 그늘 속에서 매미만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할머니가 끓는 물에 국수를 넣고 하얀 거품이 일어나면 은영은 끓어오르는 솥 옆에 서서 키만 한 주걱으로 국수가 눌어붙지 않게 저었다. 할머니는 삶아진 국수를 소쿠리에 담고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까지 가득 채웠다. 그리고 수건으로 둥글게 똬리를 만들어 은영의 머리 위에 얹고 그 위에 국수를 담은 대야를 얹었다. 한 손엔 노란 막걸리 주전자도 잊지 않고 쥐여 주며 잘 들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은영에게 당부를 했다. 은영이 대야를 이고 걸어가는 뒷모습은 마치 큰 대야가 혼자 움직이는 것 같았다.

     

 동네 앞에서는 고무줄놀이하고 있는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불렀다. 야속한 마음도 들었지만, 새참 시간이 한참 지나 발걸음을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머리에 얹힌 새참은 무겁고 덜그럭거렸다. 한 손에 쥔 막걸리 주전자는 막걸리를 조금씩 토해내 은영의 발등에 떨어지고 있었다.      


 은영을 발견한 엄마가 저 멀리서 빨리 오라 손짓을 했다. 마음이 급해진 은영은 서둘러 발을 내딛다가 그만 수로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은영은 국수도 막걸리도 놓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바람에 그대로 수로에 처박혔다. 머리에 이고 있던 국수는 흙으로 범벅이 되었고 엎어진 빨간 양념장은 참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막걸리 주전자는 수로에 빠져 토해낸 막걸리보다 더 많은 물과 섞여 본래의 색을 잃어 가고 있었다. 저 멀리서 은영의 엄마가 모내기하다 말고 노란 고무장화를 신은 채 뛰어와 엎어진 국수와 그릇들을 소쿠리에 담으며 은영에게 무섭게 화를 냈다. 은영은 흙 묻은 국수와 그릇이 담긴 대야를 이고 막걸리 주전자를 손에 쥔 채로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집으로 가야만 했다. 머리 위에서 그릇과 수저가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가 났지만, 은영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무릎이 까져 핏물로 신발이 젖고 있었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소리 없는 눈물만 은영의 볼을 타고 내려왔다.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은영의 엄마는 은영의 까진 무릎을 보며 또 혼을 내고 있었다. 참았던 서러움에 은영은 울다 지쳐 저녁도 굶은 채 잠이 들었다. 늦은 밤 방문 닫히는 소리에 잠을 깨 무릎을 보니 연고가 발려져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부엌으로 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엄마를 돕고 있는 은영은 어젯밤 잠든 자신의 무릎에 연고를 발라준 엄마를 생각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무릎에 상처도 아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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