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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옴 Dec 31. 2024

마요덮밥지수

당신도 마요덮밥지수가 있나요

병원도 은행도 저녁엔 문을 닫기에 모든 걸 점심시간에 해결하는 직장인으로서 점심시간에 볼일을 보고 나면 밥 먹을 시간이 많지 않다. 그때 주로 김밥을 먹는데, 그렇다고 해서 김밥으로 때우는 거냐, 라고 하면 그렇진 않다. 특히 마요네즈에 듬뿍 버무려진 참치가 김밥이 눅눅해지지 않도록 깻잎 위에 한 번 올려져 돌돌 말려 있는 참치김밥을 좋아한다. 대체로 김밥집에서는 참치김밥을 주문하는 편인데, 김밥집 꾸이한끼에서는 데리치킨마요김밥이 이긴다. 소스가 가득 들어간 것이 김밥인데 정말 자극적인 맛이 난다. 나에게 김밥은 대충 먹는 게 아니라 좋아해서 먹는 것. 좋아하는 다른 메뉴들에 비해 칼로리도 적어 보인다. 참기름에 볶은 나물들과 밥이 들어가고, 그 위에 또  참기름을 바르는 김밥이 생각보다 칼로리가 적지 않다고 하지만, 딱히 알고 싶지는 않다.


김밥이 아니면 마요덮밥류를 먹는다. 참치마요덮밥, 치킨덮밥, 스팸마요덮밥 같은 것들이다. 눈치챘겠지만 역시 마요덮밥들 중에서도 1위는 참치다. 마요덮밥에는 필요한 재료가 많지 않다. 밥, 마요네즈, 김가루, 데리야끼소스, 달걀을 베이스로 하고 주 재료만 바꾸면 그 재료가 메뉴 이름을 결정하는 식이다.


고등학생 때 나와 친구들은 모범생이었다. 일탈을 하고 싶었는데 참았냐 하면 그건 아니고, 딱히 그런 마음도 없었다. 원래 모범생이란 그런 것이다. 딱히 금지되진 않았지만 이것도 일탈이라면, 야자(야간자율학습) 시간 전 저녁 급식 메뉴가 마음에 안 들면 한솥도시락을 사 오는 일이었다.


그때 한솥도시락에서 우리가 주로 사 온 건 치킨마요참치마요였다. 친구들은 다 치킨마요를 먹었는데 느끼해서 튀긴 고기를 즐기지 않는 나만 늘 참치마요였으니, 주로 사 온 건 치킨마요였다고 해야 하나. 기억 속 참치마요는 이렇다. 과하지 않게 적당히 들어간 참치와 감질맛 날 정도로만 올려진 계란 지단, 마요네즈와 데리야끼소스를 뿌려 힘없는 투명한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힘겹게 비벼 먹는 것.

스티로폼 도시락에 밥 칸과 김치, 단무지 칸이 있는데 김치, 단무지 칸이 좀 덜 깊어서 밥 다 먹고 김치랑 단무지만 남으면 무게 때문에 쓰러질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당시 치킨마요, 참치마요는 2,700원이었다. 자취하던 대학생 때도 밥 먹을 게 없으면 한솥으로 가 치킨과 참치 사이에서 고민하다, 어김없이 참치마요를 들고 나오곤 했다. 앞에서 김밥으로 말했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참치와 마요네즈 조합을 좋아하는 듯한데, 이상하게 사무실 맞은편에 있는 한솥도시락에는 가본 적이 없다. 로 구내식당이나 김밥집엘 간다.


김밥집에 갔다가 문득 메뉴에서 스팸김치마요덮밥을 보고 주문한다. 7,500원. 마요덮밥 가격이 언제 이렇게 올랐나요? 원래 인플레이션이 소비자 모르게 일어나는 건가. 김밥이 싸다는 집이라 아무래도 다른 건 안 싼 걸까. 어릴 때 아빠랑 짜장면 시켜 먹을  짜장면은 4천 원이었는데, 아빠가 대학생 때인가는 천몇 백 원이었다던가 했던 기억이 난다. 곱절이 넘게 오른 가격에 와 정말 옛날옛적이구나 했었는데 지금은 만 원이 넘는다. 가만 보자, 내가 지금 몇 살이더라. 그 이야길 했을 때의 아빠랑 지금의 내가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7천 원이 넘는 스팸김치마요덮밥을 주문하면서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느낀다. 그때의 나였다면 10분 정도쯤이야 걸어서 한솥에 가 참치마요를 주문하고 말았을 테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용돈보다 점심시간이 한정된 직장인이므로, 가까이서 먹기로 한다.



스티로폼이 아닌 그릇에 담겨 나오는 마요덮밥은 아무래도 좀 더 고급이었다. 스팸이 크게 썰려 많이도 들어 있었고, 데리야끼소스와 마요네즈는 적셨다고 말하는 게 나을 정도로 스팸이 보이지도 않게 뿌려졌으며, 달걀은 무려 오믈렛 형태로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비쌌던 건가.


요즘 한솥도시락의 참치마요는 얼마나 하는지 궁금해져 찾아보니 참치마요는 3,600원, 치킨마요는 3,800원이다. 때 짜장면이 5천 원 정도 했을 텐데 짜장면 가격이 두 배가 오르는 동안 참치마요 가격은 33% 정도가 오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야자를 할 때쯤 최저시급은 4천 원대였는데 지금의 최저시급은 만 원에 육박한다. 최저시급과 비교하자면 참치마요보다는 짜장면 가격이 상승률이 유사하다.


이걸 비교하자니 세계 경제에서 이야기하는 빅맥 지수가 생각난다.


빅맥 지수 (Big Mac Index)

각국의 통화가치가 적정 수준인지 살피기 위해 각국의 맥도널드 빅맥 햄버거 현지 통화가격을 달러로 환산한 가격이다.

2016년 1월 미국 매장 빅맥 가격은 4.93달러, 한국 매장 빅맥 가격은 4,300원이었다. 당시 환율은 1달러당 1,198원. 달러로 환산한 한국 빅맥 가격은 3.59달러로서, 한국 빅맥 지수가 미국 대비 27.2% 낮다. 그런데 이는 한국 원화의 실제 거래 환율이 적정 환율보다 27.2% 저평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일물일가의 원칙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한국 매장 가격인 4,300원을 달러로 환전했을 때, 미국 매장에서도 빅맥 한 개를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환율은 1달러당 872.21원이어야 한다. 즉 구매력 유지를 전제로 할 경우, 원화의 실제 거래 환율(1,198원/$)이 적정 환율(872.21원/$)보다 27.2% 저평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경제편>


참치마요와 짜장면 가격 변화로 환율을 이야기하던 건 아니며, 빅맥 지수가 화폐 가치를 이야기하는 거지 빅맥 가치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반대로 시급 상승률을 고정하고 나니 글쎄, 말하자면 나의 참치마요는 저평가되었다! 그때도 이미 필요 재료만 들어갔었기에 재료 구성의 변화는 딱히 없을 텐데, 가격을 이 정도로 올리지 않았다고 저평가한 것이야 아니겠지만 문득 여전히, 아니 그때보다 더 가성비를 지켜주는 음식이구나 싶다.


세계 경제 말고 나에게서 마요덮밥지수라고 해보자. 마요덮밥지수란, 체감 시간의 흐름? 원래 흘러야 하는 시간 속도 최저 시급이 오른 속도라 가정, 약 100%라고 다면 마요덮밥 가격은 33% 밖에 오르지 않았으니 마요덮밥지수란 33%.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다는 게 서글프지만 마요덮밥은 가격만큼은 아직이라 위안받을 수 있는. 절대 시간이 아닌 그때 먹던 걸 추억 삼아 핑계 삼아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상대 시간의 속도를 마요덮밥지수라 일컬어 본다.


7,500원짜리 마요덮밥이 더 고급스럽고, 씹히는 것도 많고 맛도 풍부하기야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마요덮밥은 아니었다. 짜고 단 맛이 그렇게나 많이 날 필요가 없고, 참치나 스팸이 그렇게나 많을 필요가 없다. 그냥 취향이라면 단순히 취향인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맛과 별개인 맛들이 있다. 미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느끼는 맛들이 있다. 화려함이나 완성도보다 고유명사처럼, 내 기억 속 랜드마크처럼 그것이어야만 하는 맛. 화려한 맛의 아이스크림이 너무나도 많아졌는데 아빠의 선택은 늘 단순한 '고전 아이스크림'인 도 같은 맥락이리라. 살아온 날이 많아질수록 냄새를 맡고 싶어지는 과거가 많아진다. 따라가기 힘든 시간을 마요덮밥지수를 지표 삼아 조금 느리게 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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