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맨> 넷플로 보긴 아쉽고 극장에서 보긴 아깝고

#3 나만 이런 생각한다고?

by 달밤


1. 액션 영화이니 안 죽는 건 이해하겠는데, 18년이 지나면 늙긴 해야지.

2003년, 아버지를 죽이고 플로리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코틀랜드 젠트리(라이언 고슬링 분)에게 도널드 피츠로이(빌리 밥 손튼 분)가 찾아온다. CIA 요원인 피츠로이는 암살 전문 유닛인 '시에라 프로젝트' 소속이 되면 감형시켜주겠다며 달콤한 제안을 한다. 말이야 달콤하지 수박 맛 껌 하나에 넘어가 무기한 CIA의 살인기계가 되는 셈이다. 무튼, 제안을 받아들인 젠트리는 '시에라 식스'가 되고, 시간이 흘러 18년 뒤 방콕에서 새 임무를 받는 식스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아니 근데, 18년이나 지났는데 하나도 안 늙었다고요? 주인공 버프가 심해도 너무 심한 거 아닌지.


2. 2억 달러 야무지게 썼네

제작비가 무려 2억 달러라는데, 유럽 전역을 무대로 한 액션을 보고 있노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특히 방콕 액션씬은 넓은 공간에서 카메라가 동선을 그리며 움직이는데 속도감과 몰입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 매우 좋았다. 이 영화의 액션씬 중 규모로 따지자면 작은 편이었던 비행기씬도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한정적인 공간에서의 뻔한 액션을 연막탄을 활용해 변화를 주고 시선을 사로잡은 점이 좋았다. 분명 액션씬 하나만큼은 넷플릭스로 시청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

3. 의심의 여지없는 캡틴 아메리카 상 크리스 에반스, 콧수염쟁이가 되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보면서 단 한 번도 미국을 상징하는 캡틴 아메리카 역할에 크리스 에반스가 아닌 다른 배우가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 에반스 이름을 들으면 정직하고 의로운 영웅 캡틴 아메리카가 떠오를 거다. 그만큼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앞으로 그의 배우 생활의 발목 잡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레이 맨>을 보면 크리스 에반스가 얼마나 훌륭하고 또 영리한 배우인지 알 수 있다.

<그레이 맨>에서 그는 전 CIA 요원이자 소시오패스인 로이드 핸슨 역을 맡았다. 원하는 걸 위해선 불법도 서슴지 않는 비열하고 야비한 악역. 콧수염 하나 생겼을 뿐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크리스 에반스라는 걸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변신을 이뤄냈다.


4. 국경 넘을 때 = 요원 쉬는 타임?

<007>, <본> 시리즈 등을 첩보 액션 영화를 보면서 항상 생각하는 건데 주인공들은 쫓기는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국경을 넘는다. <그레이 맨>도 유럽 전역을 무대로 촬영했고 식스는 핸슨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 가짜 여권을 만들어 도주하려 한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못하지만 앞선 과정에서 분명히 여권을 못 만들었는데, 다음 씬에서 나라를 이동했다. 이 비밀요원 매우 유능하다.


5. "just another thursday."

<그레이 맨>의 명대사다. "just another thursday." 피츠로이의 유일한 가족이자 조카 클레어 피츠로이(줄리아 버터스 분)와 식스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사다. 클레어는 선천적으로 심장병이 있어 심장 박동기를 달고 있다. 클레어가 늦은 밤 박동기에 문제가 생겨 응급실에 다녀온 뒤, 식스가 집에 몰래 침입한 암살자를 죽인 뒤 태연하게 내뱉은 대사가 "just another thursday."(그냥 평범한 목요일이야.)다. 심장이 아파 고통에 쓰러지고, 목숨을 위협받고 살인을 저지르는 게 평범한 일상인 사람들.


6. 영화 값만 안 올랐어도 무조건 극장각

제작비를 모두 액션과 출연료에 투자했나 싶을 정도로 액션씬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만족도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이 맨>에 대한 리뷰를 보면 아쉬움을 드러내는 평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스토리 라인이 부실한 이유라 할 수 있겠다. 첩보 액션 영화의 스토리가 새로울 게 뭐가 있겠냐만은, 이를 감안하더라도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하고 뻔한 이야기가 심드렁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영화 값만 아니더라도 더운 여름 시원한 극장에서 친구, 가족과 문화생활을 즐기기에 딱 좋은 영화였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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