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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도 예방이 되나요?

독감처럼 불쑥 찾아오는 번아웃

by 안차

번아웃을 경험한다는 것

IT와 스타트업, 둘 중에 한 단어만 있어도 번아웃이 오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업계에서, 오랫동안 있다 보니 번아웃은 이미 만성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IT 스타트업에 있는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번아웃'은 한 번쯤 성과를 내려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관문처럼 여기기도 한다.


가장 번아웃이 자주 왔던 곳은 역설적이게도 나와 동일시할 정도로 애정했던 조직에서의 경험이다. 초창기 멤버로 합류했었고, 진심으로 조직에 있는 나의 동료들과 서비스를 사랑하며 매일같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지다 못해 타버릴 정도로 선을 넘을 때가 잦아졌다. 쉼이 없으니 과하게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고, 그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쓸데없이 조직 환경 탓, 동료 탓, 마지막엔 심한 자기혐오까지도 가기도 했다. 그렇게 가면 조금 남아있던 나의 신체적/마음적 에너지 마저 다 소진이 되어, 스스로 전원을 끄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런 번아웃을 몇 차례 겪다 보면 끝엔 극심하게 무기력해진다. 나 하나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게 안쓰러워 매번 현타가 오기도 한다. 10년 정도 일을 하면 이제는 번아웃 같은 것 따위 안 오지 않나? 싶지만 독감같이 불쑥 찾아오는 번아웃은 도통 피해가는게 어렵더라. 매번 일에 몰입하고, 그곳에서 만난 배움과 사람을 좋아하니 나중에 또 번아웃이 올게 뻔해 보였다.


독감 주사를 미리 맞는다고 해서 절대 독감에 안 걸리지 않는 것처럼, 번아웃도 마찬가지일 거다. 번아웃이 올 것이 무서워서 새로운 시도를 안 하기보다 언제든지 번아웃은 또 찾아올 수 있다는 '인정'과 다시 찾아와도 덜 아프게 예방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처방법'을 만들어보는 게 훨씬 효력이 좋을 것 같다.


번아웃을 예방하는 나만의 처방법

번아웃 전조증상이 관찰이 되면, 즉시 내 세계를 단정하게 가꿔나가기 위한 행위를 펼치는 편이다.

1. 가장 기본인 아침에 일어나 환기시키며, 침대 자리부터 정리하기. 엄청 사소한 일이지만 외출하고 난 다음에 들어오면 정돈된 모습을 보면 꽤나 뿌듯하다.

2. 그 위에 앉아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쉬어보기. 이게 뭔가 싶지만 이 큰 한숨을 통해 지금 현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3. 그리고 미지근한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셔준다.

4. 외출하기 전 따뜻한 샤워는 꼭 잊지 않으려 하고. (각종 우울과 불안은 수용성이다. 씻기만 해도 기분전환이 된다 분명히.)

5. 일주일에 두 끼는 스스로에게 맛있는 거를 꼭 해먹이려고 한다. (직접 요리하기 어려우면, 가고 싶었던 곳에 가서 근사한 한 끼를 먹기도 하고)

6. 나를 가장 잘 알아주는 이들에게 전화를 통해 안부인사를 나눌 겸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대기.

7. 필살기인 낮에 가장 좋아하는 한강 산책을 하며, 길고양이들과 사랑을 주고받는다.
8. 웬만하면 자극이 되는 환경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핸드폰, 컴퓨터, 바쁜 도시 등)


이런 소소하고 작은 일상의 조각들로 하루를 채워나가 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복잡하고 고통스러웠던 일은 잠시나마 잊히게 된다. 이런 시행착오들을 통해 감기처럼 자주 찾아오는 번아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게됐다지. 내 세계에는 일 말고도, 정말 다양하게 중요한 요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 같다. 앞으로 나에게 또 수많은 번아웃들이 찾아오겠지? 그럴 때마다 부적처럼 보면서 말해줘야지.


뭐가 크게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너 있는 그대로도 괜찮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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