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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흔들렸지만 끝내 피어났던, 나의 열 번의 봄

변화 속에서 멈추지 않고, 길을 엮으며 걸어온 10년

by 안차

시간은 참 기묘하다. 어떤 날은 더디게 흐르다가도, 돌아보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것만 같다. 어느새 커리어의 길 속에서 열 번의 봄이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며 나만의 길을 새롭게 만들어가기도, 걸어오면서 여러 갈래의 길을 이어가기도 했다. 때로는 망설이다 걸음이 더디기도, 내가 온 길이 맞는지 의심하느라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걸어온 10년의 길. 그 흔적을 하나둘씩 더듬어보니 가슴 한편이 이상하리만큼 먹먹해진다.


스무 살답지 않게 나는 꽤 치밀했다. 세라믹 디자인 학과에 입학한 것마저도 시각 디자인 학과로로 가기 위한 발판이었으니까. 밤을 새워가며 전과를 위한 고학점을 차곡차곡 쌓았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조바심에 쉼 없이 달려댔다. 그때의 나는 알았을까? 이 조바심이 언젠가는 단단한 근력이 되어줄 거라는 것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첫 취업 준비로 네이버 지원서를 쓰던 날이지 않을까 싶다. 그때의 기억은 사진을 찍은 것 마냥 장면 하나하나가 아직도 선명하다.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 장차 6시간 넘게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던 나. 단어를 적었다 지우기를 수십 번.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도대체 내 이야기를 뭘 써야 할까?' 자괴감에 빠져 눈물을 쏟아냈던 수많은 나날. 전과생이라 학과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의지할 교수나 선배도, 외부에서 만날 멘토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외로움이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고, 스스로 자립하며 길을 만들어가는 힘을 길러주었나 보다.


불안 끝에 첫 직장인 UX 컨설팅 에이전시에 입사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구조조정으로 6개월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만 같아 다시 또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하지만 모든 경험이 그러하듯, 새로운 연결로 예상치 못한 곳에 가닿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선임의 추천으로 디자인 전문 에이전시로 길이 새롭게 열렸고, 그 길은 또다시 나에게 <스타트업>의 길로 안내해주었다.


<리멤버> 스타트업계의 첫 시작은 내 커리어의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되어주었다. <리멤버>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사람과의 연결, 팀과 문화, 창업과 시스템을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내가 만든 <리멤버 커리어> 서비스로 레몬베이스 C레벨 분들과 연결이 되었고 가장 오래 다닌 조직이 되었다. <리멤버>에서의 경험은 시작과 가파른 성장이었다면, <레몬베이스>에서는 비즈니스, 고객, 지속가능한 성장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깊이 경험할 수 있었다. 다양하게 이어지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하나같이 소중한 인연이 되어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겼고, 그것이 또 다른 가능성이 되었다.


첫 커리어를 시작하던 24살 어린 나는, 불안함과 조급함 때문에 늘 한 곳에 진득이 머무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쌓아온 10년의 시간은 나에게 경력 이상의 것을 가져다줬다.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법. 실패에서도 배움을 찾는 법.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새로운 길 위의 출발선에 서서 나만의 속도로 내 진짜 서사를 쓰면서 걸어가도 된다는 것을.


10년의 길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해 보니, 이제야 마음 깊이 깨닫는다. 어떤 폭풍우가 몰아쳐 와도, 어떤 갈림길 앞에 서더라도 덜 두려워할 것 같다. 더 이상 조급해하며 불안에 떨 이유도 없다. 그저 나의 속도로, 나와 함께할 이들과 더불어, 나다운 방식으로 묵묵히 걸어가면 그만인 것이다. 이것이 나의 열 번의 봄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봄에도, 나는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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