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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차 Oct 27. 2024

모두의 초보 시절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얻고 앞으로 나아가는 초보의 여정


다양한 곳에서의 초보

인터넷에 '초보'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이미지는 뭘까? 90% 이상은 '초보 운전' 딱지 이미지가 나온다. 초보와 운전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고유명사가 된 듯하다. 나 역시도 이제 겨우 두 달 차가 된 '초보 운전자'이다. 운전 연수 첫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연수 선생님이 들을 정도로 심장은 미칠 듯이 뛰었고, 늦여름 날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으며, 얼굴은 눈치도 없이 초 단위로 빨개졌다. 13년 만의 장롱면허 탈출이라, 설렘보다는 두려움/막막함/긴장감 같은 무거운 감정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올해엔 운전 말고도 첫 발걸음을 내딛는 일이 세 개나 됐다.

처음 팀을 맡아본 초보 리더

10년 만에 처음 온전한 나만의 시기를 보내는 초보 자립자

본격적으로 글을 작성하기 시작한 초보 작가

어느새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업력이 10년 차가 된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다양한 곳에서 초보가 되어 있었다. 어쩌다 4개의 분야에서 초보 시절을 보내고 있는 나는 문득 '초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초보 시절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

운전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초보 딱지를 빨리 떼고 싶다.'였다. 왕초보 티가 팍팍 나서 어리숙해 보였고, 모든 행동이 서툴러서 바보 같아 보였다. 초보 딱지를 붙여서 남들이 나를 더 답답해하고, 무시하는 건 아닐까? 등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댔다. 스스로에 대한 생각은 운전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팀을 맡을 때도, 처음 브런치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도 초보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면 모두가 그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초보 시절을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걸까?


인간 본능적으로는 '어리숙하고 잘못하는 상태'보다는 '숙련되고 잘하는 상태'를 원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초보'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으로 인해 초보자들이 더욱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국은 워낙 빠르게 성장하기도 했고, 아직도 성과주의가 만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에 익숙하다 보니 본인도 초보 시절을 빠르게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쳤던 것 같다. 실행하기도 전에 과하게 시물레이션을 많이 돌려본다던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려고 애쓴다던가,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던가 등 정말 다양하게도 스스로에게 압박을 줬었다.


초보 운전 같은 경우 출발하기 전에 모의 주행을 통해 길을 다 외우기 전까지는 출발하기가 어려웠고, 유튜브로 충분히 주행/주차 연습을 하기 전까지는 동승자를 구해 연습했다. 초보 리더일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초반부터 무리해서 잘하려고 애썼다. 초보 작가일 때도 어김없이 남들에게 잘 쓴 글을 발행하고 싶어서 한 글자도 쓰지 못한 날들이 많았으며, 쉬어본 적이 거의 없는 초보 자립자는 쉬는 동안에도 뭘 해야 할지 몰라 헤매기도 했다. 4가지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주된 감정은 '두려움'과 '조급함'이었다. 서툰 장면들이 계속되니 앞이 막막했고 자꾸만 두려워졌다. 그렇게 나는 초보 시절의 터널을 빠르게 통과하고 싶어했다.



발견하지 못한 초보의 특별함

초보자의 마음은 그저 불안하고 두렵기만 한 것일까? 놓치고 있던 다른 소중한 감정은 없었을까? 초보 시절을 마냥 두려워만 하기엔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워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른 면의 감정도 꺼내보고 싶어졌다. 첫 시작의 설렘과 기대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 말이다.


처음 운전을 시작한다고 선언했을 때, 가장 먼저 '가족과 친구들을 태우고 멋지게 드라이브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봤다. 상상만 해도 입가에는 미소를 짓게 되고, 드라이브를 하고 난 모습 끝에는 괜스레 자신감이 차오르기도 했다. 스스로 자립을 하기 전에도 나만의 온전한 휴식 시간을 어떻게 꾸려갈지 자주 그려봤다. 보고 싶었던 책/영화/전시, 가고 싶었던 장소들,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나에 대한 글쓰기 여정의 시작 등 리스트를 꽉 채운 종이를 보며 빨리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기도 했다.


초보여서 좋았던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초보일수록 성장하는 것은 눈에 띄게 잘 보였다. 초반에 후진 주차가 그렇게 어렵더니, 2주 만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한 번에 주차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글을 이제 막 쓰는 어린이처럼 글을 써 내려가는 게 익숙지 않았던 과거의 나는, 매일 한 문단씩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다 보니 벌써 3편의 글을 써내려갈 수 있게 됐다.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작은 성장들을 발견할 때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무한한 믿음도 생기게 된다. 마치 '나라는 어린아이를 키워내는 기분'이었다. 모든 게 처음인 어린아이에게는 사소한 일에도 칭찬과 응원을 해주는데, 어른에게는 왜 이토록 각박했을까? 어른도 초보 시절을 통해 배우고 성장할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긍정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 같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초보 시절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은 초보 시절을 통과해 왔다.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처럼 계속 서툴었던 시기가 있었다. 과연 처음부터 전문가처럼 잘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두 달도 안 된 초보 운전자인 내가, 하나하나 너무 다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며 주변 지인은 이렇게 말한다. "두 달 차 초보 운전자가 20년 차 택시 운전사와 실력이 같을 수 있겠냐? 그 경험과 실력을 쌓아온 시간부터가 다른데, 왜 그렇게 조급하게 한 번에 잘하려고 해? 지금은 실수하고 못 하는 게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초보인 거지. 괜찮으니까, 포기만 하지 말고 계속 연습해."


두 달 만에 전문가처럼 숙련된 상태를 바랐던 나를 바라보며 참 나답다 싶었고, 금새 웃음이 새어나왔다. 스스로 초보인 상태를 인정하니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한거다. 초보 티가 나는 것은 부끄러운 것도, 미안해할 일도 아니었다. 조급해할 필요도 전혀 없었다. 내 위치를 수용하고 나니 초보 시절은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누구에게나 어렵고 서툰 시기인 것을 인지하게 됐다. 다시 초보가 되어보니, 이제는 모두의 초보 시절을 안아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 모두 계속 초보가 된다

서툴렀던 초보 시절을 기억하는가? 아직도 새로운 분야를 도전하게 되면, 초심자의 마음을 장착하여 긴장하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특별한 초보 시절은 여러 감정을 남긴 채 금방 지나가 버린다. 시간이 흐른 뒤 초반의 두려움, 무서움, 부담감은 온데간데없이 적응하며, 어느새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다. 감정은 다소 둔해진 채 말이다.


한 해가 지날수록 어린아이 보다 어른이 더 겁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익숙하지 않았던 새로운 환경은 앞이 보이질 않으니, 첫발을 내딛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스스로 초보가 되길 포기한다. 초보 시절만큼 진실한 감정이 드는 순간이 있을까? 최근엔 그 유약한 모습이 나답다고 느껴졌다. 많이 불안해하기도 어려워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부딪히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가장 인간다워 보이기도 했고. 분명 10년 전일 때는 늘 어리숙한 초보자가 되길 싫어했던 나이지만, 지금은 다시 초보 시절이 겪을 수 있음에 감사해하며 이 과정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기록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곳에서 불안을 밀어내고, 첫걸음을 계속 내딛는 용기를 내고싶다.


당신은 지금 어떤 분야에서 초보가 되려 하는가? 부디 이 글을 읽고 우리 모두의 초보 시절을 다정하게 안아주길 바라며,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초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래본다. 현재 초보 시절을 보내고 있는 당신을, 초보인 내가 많이 응원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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