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는 과학 발명품이다.
말소리를 전파나 전류로 바꾸었다가 다시 말소리로 환원시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기계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서 전화는 기계가 아니다.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이고, 업무를 해결하는 수단이다.
텍스트로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고, 간단히 안부를 묻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전화를 건다.
중요한 사람에게도 전화를 건다.
전화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자는 예의가 아니라고 느껴질 때. 버튼을 눌러 신호음을 듣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대방의 신호음을 듣는 것이 두려움이 됐을까.
처음 꺼낼 말을 생각하면서.
'뭐라고 해야 하지?' 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누르면서 말이다.
직장 초년생에게 '출근하면 전화 보고부터 해'라던 선배 때문이었을까.
'너는 손가락이 부러졌니, 왜 전화를 안 하니?' 라던 시어머니 때문이었을까.
술에 취해 모르는 사람들과 통화하라던 남편 때문이었을까.
목소리를 듣고, 감정을 전달하고, 마음을 공유하고, 궁금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에 하나이고 관계 유지를 위한 아름다운 수단이 되는 전화를 왜 이제 불편하게 생각할까.
전화벨이 울린다.
이름을 확인하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누워있다가 일어나 앉으며 힘 있게 대답한다.
여보세요!라고.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왜 힘이 없냐고 묻는 누군가의 질문이 신경 쓰여서.
자고 있었냐, 뭐하냐는 탐색의 질문이 불편해서.
나의 작은 마음이 들킬까 봐 두려워서.
전화를 거는 것도, 또 받는 것도 불편해져 버렸다.
전화벨이 울린다.
국장님?! 안녕하셨어요~~?
내 목소리에 힘없는 답변이 들려왔다.
정 작가, 나 인지 어떻게 알았어?
은퇴할 때까지 나와 프로그램을 했던, 지금은 노인이 된 KBS PD 였던 그는 나와의 통화가 무척이나 반가웠던 듯했다.
식사 한 번 하자는 나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그는 허허, 웃으며 만남을 미뤘다.
그럽시다. 시간밖에 가진 것 없는 내가 찾아가야지. 바쁠 텐데 수고해요...
라는 대답을 남겼을 뿐이다.
기운 없는 그의 목소리에 어디 아프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혹시 진짜 아플까 봐이기도 했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힘이 날 일이 없는 상황일 수도 있어서.
또 우리의 거리가 그만큼 가깝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묻지 않았다.
어쩌면 만나게 된다면 알게 될 수도 있을 테니.
먼저 전화 거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통화는 반갑다.
반가운 사람은 모든 게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