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키에, 적당한 근육, 무심한 표정에 적당히 말도 없던 남자는 생각보다 외로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렸을 때 - 하얀 양복에 백구두를 챙겨 신고 손자를 오토바이에 태우던 할아버지를 따라 '어른들의 커피숍'에 쫓아갈 때만 해도 - 자신이 외로워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생은 상상 못 했던 순간으로 우리를 데리고 갈 때가 있는데, 남자에게 그 순간은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 남자에겐 심리적으로 많은 변화가 찾아왔을 것이다. 그중에서 남자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체념하는 법'이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체념은 적당한 처방이었다. 체념하고 나니 마음은 편안했지만, 삶의 태도까지 바뀌게 되었다는 걸 그는 놓치고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입을 다물어 버리는 '침묵의 습관'이었는데 불평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친구들에겐 성숙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변화는 말버릇처럼 한 마디를 하게 된 것이었다. 실망하고, 좌절하는 순간에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기에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남자는 이 방법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고 '어쩔 수 없이'외로운 심정을 가슴에 묻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늘 외로웠던 남자가 성인이 됐을 때, 꿈같은 연애를 이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다.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들은 어떤 불만을 털어놓았을지.
꼭 그런 이유가 아니었겠지만, 몇 번 실연을 하게 된 남자는 의외의 장소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됐다. 남자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은 여자였는데, 여자는 남자를 바라볼 때 '난 너의 마음을 알고 있어.'라는 식의 눈빛을 보였다. 타인에게 예민했던 여자와 그런 예민한 말투가 좋았던 남자는 술 한잔을 두고 마주 앉았다.
그날의 대화는 마음에 묻어둔 상처에 대한 것이었는데, 아마도 남자가 아픈 기억을 모두 꺼내놓는 방법으로 자신을 알리려 작정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여자는 그의 말을 모두 들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남자가 자신의 상처를 꺼내놓은 방식이 '사실'을 말하는 것에 그쳤다는 것. 그 시간 속에서 겪었던 슬픔과 고통 같은 아픈 감정을 꺼내놓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두 사람은 결혼했지만, 안타깝게도 감정적으로 한 걸음씩 물러나 있었다.
여자가 힘든 일을 투덜거릴 때마다 남자는 공감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고 한 마디를 했고, 여자가 남자의 마음이 궁금해 '괜찮아'라고 물을 때조차 남자는 '괜찮아'라고만 했다. 괜찮지 않다는 말을 배운 적이 없었고 그것은 나약한 말이라고 생각하며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두 사람 모두 불만이 생겼다. 여자는 남자와 더 가까워지지 못하는 것이 남자 때문이라고 했고, 남자는 여자의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말하지 않는 감정, 그 깊은 내면에 자신이 들어갈 수 없다고 느낀 여자는 더 이상 '이해하고 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또 어떤 속상한 일을 꺼내놓더라도 어차피 '어쩔 수 없잖아'라고 대답할 남자 앞에서 여자는 자신의 통증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처럼 말수가 줄어들고 조용해지면서, 남자는 이전보다 더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 자신은 달라진 게 없는데, 여자가 달라졌다고 결론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차이가 갈등이란 탑을 쌓고 있던 어느 날, 남자는 술에 취해 전혀 예상 못했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미 의식은 블랙아웃이 되어 기억마저 사라진 순간, 남자는 강렬한 통증을 한꺼번에 꺼내놓으며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남자를 사로잡은 감정은 '그만두고 싶다'였고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뛰어내리고 싶다'였다.
그날 밤, 여자는 자신보다 큰 체구의 남자를 껴안아 생애 처음으로 알 수 없는 괴력을 발휘해 힘 있게 잡아당겼다.
말하는 방식이 다른 우리는 위로하는 것과 위로받는 방식도 모두 다를 수 있다.
조금 세월이 지나고 여자는 말 없는 남자가 다른 방식으로 위로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예를 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매운 닭볶음탕을 만들어준 여자의 수고를 알고 행위 자체로 이미 위로받고 있다는 식의 것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가 습관처럼 하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기로 했다.
"괜찮아. 어쩔 수 없지 뭐."라는 말은
"괜찮을 거야, 어쩔 수 없는 건 받아들이자. 내가 괜찮아지게 해 줄게."로 해석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위로에 힘을 얻을까.
가장 진부한 말과 진부한 행동이 위로가 된다는 걸 애써 외면할 때도 있다.
심장 이미지에서 가져왔다는 상형 문자 같은 '하트 이모티콘' 하나에 주저앉았던 자리를 툭 털고 일어나는 순간도 있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다른 위로를 배우고, 또 나누게 된다.
J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짧은 쇼트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같은 프로그램을 같이 하게 된 작가들이었지만, 예상보다 사교성이 없던 나는 무심하게 인사했을 뿐 습관적 관찰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지 않은 밤에 J 에게서 전화가 왔다.
- 언니, 나 언니가 너무 좋은 사람인 거 같아, 너무 좋아. 우리 친하게 지내요.
- 아.... 그래요.
- 언니, 존댓말 하지 말고 이제 반말해. 나 친해지고 싶어.
- 아... 그래요.. 다음에 만날 때 그렇게 해요...
직진하는 J와 우회하는 나는 그렇게 첫 번째 개인적인 전화를 끊었다.
그 밤 소심한 나의 태도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1년이 넘게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의 적극적인 제안을 내가 소극적으로 거절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도 아닌 사람처럼 함께 일하고 회식자리에서도 만났지만, 서로를 알지 못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조직개편이 진행되면서 J는 나와 한 팀이 됐다. 노랑머리는 갈색이 됐고 짧은 쇼트가 웨이브 있는 길이로 자라났을 뿐 달라진 것이 없던 그녀였다. 그런데 나와 같은 팀이 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J는 이전보다 더 솔직하게 내 삶에 불쑥 들어왔다.
- 언니. 난 언니 없으면 이 프로그램을 같이 할 이유가 없어.....
그제야 나는 알았다. J가 진심으로 나의 응원과 격려를 기다려왔다는 것을.
무엇이든 직진해야 하는 솔직한 J는 방송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많았는데, 그런 열정 때문에 때론 오해를 사기도 했다. 지나칠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고 솔직한 말투로 사실을 꺼내놓기도 했는데 그런 만큼 누군가는 그런 J를 불편해했고, 또 누군가는 그런 그녀의 장점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날 나는 핸드폰과 대화방에 저장돼 있던 J의 이름을 별명으로 바꿨다. 작가라는 수식어를 빼고 '착한'이라는 단어를 이름 앞에 붙였다. 그것은 나 스스로 내가 그녀의 편이 되었음을 공식화하기 위한 나름의 의식이었다.
'우웸 아크판'의 소설 <한편이라고 말해>
조금 오래된 책이지만, 누군가의 '편'이 된다는 것이 생존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소설이 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그리스도 왕 교회'에 사역하고 있는 '우웸 아크판(Uwem Akpan)'의 소설 <한편이라고 말해>다.
이 책의 원제는 'Say You're One of Them'인데 직역하자면 '네가 그 사람들 중 하나라고 말해'라는 뜻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이 소설이 만들어진 의미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책에 등장하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실제로 일어났던, 수많은 아프리카 아이들의 삶을 기초로 쓰였다.
가난과 굶주림, 성폭행, 차별과 같은 고통에 빠져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고통을 소설로 쓰면서 그가 생각했던 한 가지의 충고는 이런 말이었다.
'Say You're One of Them'
책 속의 단편 <부모님의 침실>에서 딸이 죽을까 봐 염려하던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물으면, 너는 그들과 같은 부족이라고 말해, 알겠니?"
"누가 물으면요?"
"누구든지. 그리고 모니크,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 꼭 그래야 해, 알았지?"
"알았어요, 엄마"
"약속하지?"
"약속해요."
내가 너희와 같은 부족이고, 너의 일부라고 말하라 가르치는 엄마 앞에서 딸은 엄마의 충고를 호신용 비밀 무기처럼 챙겨야 했다.
'같은 편이라고 말해'라는 한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범죄 앞에서, 혹은 죽음의 위기에서 '같은 종교라고 말해'라든가, '한편이라고 말해'라고 가르치는 것은 위기에 빠진 아이들에게 어쩌면 생명줄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그 간절함을 담은 말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어린아이들이 처한 가난과 굶주림의 고통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아동학대나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에 있을 것이지만, 미안하게도 현실감은 없다.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종교와 인종 분쟁이 왜 목숨을 위협하는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당신과 한편이에요'라는 말이 아프리카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말일까.
요동치는 슬픔과 외로움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이 말을 기다려본 적은 없을까.
누군가의 삶에 전쟁처럼 벌어지고 있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고통이 느껴질 때 -
그럼에도 내가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
나는 이 말을 떠올리곤 한다.
너무 진부해 쓰기도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진심을 다해 한 마디를 전할 때가 있다.
"힘내. 나는 언제나 너의 편이었어."
때론 힘없이 사라져 아무 위로가 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다.
내가 너와 같은 편이라는 고백은 '내가 앞으로도 너의 곁에 있을 것'이라는 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존박의 노래 'I'm aways by your side'가 생각난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your side'에 의미를 더해 이렇게 해석하곤 한다.
"Cause I worry too much all my fears amplify (많은 걱정에 점점 두려움이 커져 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