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름 Dec 04. 2018

해외취업, 끝나지 않을 고민

배불러서 하는 고민이 아닙니다..

작년을 반추해본다.

많은 꿈, 두려움, 설렘, 걱정, 불안, 초조함과 슬픔 등 여러 감정이 끈적끈적한 타르처럼 뒤엉켜서 제 색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제 정신이 아니었던 (?) 몇 달을 보내고, 치앙마이에 도착해 마음을 정리하고 입싱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떠나기 전 나는, 내가 일단 길 위에 발을 내딛기만 하면. 모든 게 잘 될거라 믿었다. 어떤 고민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 그걸 갖고 있었다.  그래서 눈이 멀어, 당장 해치워야 하는 미션(취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끊임없이 나를 갉아먹던 고민들과 불안들이 봄 눈 녹듯 사라져버리고, 행복한 장밋빛 카펫이 촤르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서 했던 고민들의 절반정도는 해결이 되었으나, 새로운 고민들이 자리를 잡아 결국 고민의 중량은 그대로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걱정과 근심거리가 생겨버린 것이다.


한국에서 했던 고민들 중 이상한 방식으로 (?) 해결된 것들은 이렇다. 해결이라기보다는 귀결이라고 하고 싶다.


2017년 : '영원히' 이렇게 살면 어떡하지?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에 결혼해서, 주택청약 저축을 꾸준히 넣고 좋은 아파트 분양에 당첨되길 바라면서, 시부모님 모시면서 아이들 학원을 보내고 전세금을 갚는 삶. 나이들어 결국 하지 못했던 일들을 후회하며 - 남들 눈치를 보며 떠밀리듯 사는 인생. '정해진 트랙 안에 들지 못하면' 낙오자라는 사회의 시선을 감내하기 위해 악을 쓰고 충혈된 눈을 돌리는 세상. '모두가 똑같아 지기 위해' 죽어라 달리는 그런 나날들. 

2018년 : 영원히 '이렇게 살면' 어떡하지? 비자 스폰서십이 끝나면 좋든 싫든 추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삶. 내년, 내후년 계획을 함부로 세울 수 없고. 2년 짜리 핸드폰 계약을 하려다가도 혹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주저하며 1년을 흘려보내는 시간들. 좋은 사람들은 만나도 결국 오랜 시간동안 곁에 둘 수 없는 숙명적인 불안감. 언젠가 그들이 , 혹은 내가 떠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오는 씁쓸함과 고독감.


2017년 : 결혼하기 싫은데, 자꾸 주변에서는 결혼 얘기가 들려오고 억지로 결혼 적령기를 인정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다. 왜 자꾸 집을 해온다느니, 혼수를 했다느니, 돈을 모은다느니 하는 얘기가 들리는 거지? 난 축의금 장사도 하기 싫은 사람인데.

2018년 : 나중에 급 결혼하고 싶어지면 어쩌지? 지금 당장 생각이 없더라도, 싱글의 무덤인 싱가폴에서 누군가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어진다면 어떡해야 하나. 매력적인 이성이 0 에 수렴하는 나라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이 자기 나라로 떠나거나 결혼보다 커리어를 선택하면? 결국 장거리연애 혹은 이별인데. 그 가능성을 감수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나, 아니면 영영 비혼자가 되어 싱글의 삶을 즐겨야 하나. 답은 냉동난자다. 난자 얼려야겠다.


2017년 : 돈 좀 더 많이 벌고 싶다. 이 월급으로 살 수야 있지만 더 좋아진다는 희망이 없다.

2018년 : 작년보다 미세하게 조금 돈을 많이 벌고, 보너스를 받고 해도 뭐한담. 집세랑 워낙 생활 물가가 한국의 1.5배인 나라인데. 물론 버티고 이직을 몇번 하면 월급이 훅훅 뛰겠지만, 그게 말이 쉽지. 언제까지 오래오래 버틸 수 있을까. 여행도 내킬 때 다니고 싶고, 좋은 곳에서 편하게 혼자 살고 싶고, 친구들과 가끔 기울이는 술잔에 부끄럽지 않게 내가 내고 싶기도 하고, 교회에 헌금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돈 모으기가 예상보다 힘들다.


2017년 : 비행기 자주 타고 싶다. 그래! 난 역마살이 있어! (?ㅋㅋ) 여행 죽어라 다녀도 절대 안 질릴 것 같은데. 한국에서 주말을 끼고 여행을 가려면 중국이나 일본 밖에 선택지가 없어서 힘들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배낭 여행을 즐겨한 여행자니까, 싱가폴만 가면 여행을 많이 다니고 ~ 그렇다면 죽어도 좋을 정도겠지? 여행가고싶다! 

2018년 : 여행 노잼. 출장 싫다. 비행기 지겹다. 공항 극혐. 귀찮고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소진되는 느낌에 집에 가고 싶다. 고향이 없는데 자꾸 고향이 그립다. 싱가폴에 딱히 정해진 집도 없으면서, 괜히 따스한 집밥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그런 '내 집'이 미친듯이 그리워지는 그런 순간. 감기에 걸려서 만성 중이염이 도지려고 하는 순간에 억지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륙을 해야하는 그 공포감은 아무도 모른다. 귀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고, 침을 2초에 한번씩 삼키고, 발이 저절로 동동 굴러지는 데도 아무도 체감할 수 없는 고통.


2017년 : 한국만 떠나면 돼. 난 한국만 떠나면 무조건 만족하고 행복해질거야. 다 필요없어. 

2018년 : 내 후년엔 어느 나라에서 살고 있을까? 10년 뒤엔 나는 무슨 일을, 어느 곳에서, 누구와 함께하고 있을까? 당장 1년 뒤, 2년 후, 5년이 흐른 다음을 예측도 못하면서. 어떻게 감히 평범한 계획을 세운다 할 수 있지? 영국에 가야 하나. 호주에 가고 싶지 않았나? 아니, 최종 정착지는 항상 미국이라면서. 늦기 전에 홍콩에서 1년 정도 살아볼까? 아니면 싱가폴 영주권 신청을 하고 운이 좋으면 여기서 오래오래 사는 건? 아, 모르겠다.


2017년 : 일단 내 인생이니까. 나를 먼저 생각하자! 부모님, 동생, 반려견, 남자친구, 사랑하는 친척들과 친구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그럼 다 될거야. 내 선택을 존중하고 이해해줄거야.

2018년 :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면, 난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 모든 걸 다 접고 한국으로 갈까? 아니면 괜찮아, 며칠만, 몇달만, 일년만 하며 미루고 미룰까? 아직까지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지만. 혹여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죽음까지 도달하게 된다면? 마지막에 곁을 지키지 못한 그 찰나를, 마음 시리게 죽을 때까지 간직하지 않을까. 쓸데없이 마음이 여린 내가 죽는 날까지 죄책감이 오래갈 것 같은데. 후회하지, 않을까?


2017년 :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공허함에 외롭다.

2018년 : 외롭다. 그냥 외롭다. 이건 이방인으로써 느낄 수 밖에 없는 본능적이고 실존적인 외로움. 


동급 최고 겁 없는 사람인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쓸데 없는 겁도 많고 두려움도 짱 많은 쫄보스. 모든 게 다 잘 될 줄 알았는 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한국에서 했던 생각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민을 지속하고 있을 줄이야.


 사람은 문제 없는 삶을 살 수는 없는가보다. 그렇게 원하던 걸 이뤘는 데. 많은 것들을 등 뒤로 하고 떠난 새로운 세계에서, 어찌보면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낙원에 도착한다 해도. 기왕 그렇다면 '좋은 문제들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겠군, 하고 얼렁뚱땅 결론을 내리고 글을 마쳐야지. 


P.S. 술 먹고 쓴 글. 마음으로 담배 한 갑 피우면서 쓴 글. 그리운 사람들을 그리며, 기리며, 끼적끼적 쓴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