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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Aug 02. 2021

구기동에서 4

인테리어 공사 - window seat





[응접실 바로 옆의 식당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그곳엔 책장이 하나 있었다: 나는 얼른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삽화가 있는 책인지를 확인하면서. 나는 창가 자리로 올라갔다: 두 발을 모아 올려 책상다리를 했다, 터키 사람처럼; 그리고,  두꺼운 양모천 커튼을 몸에 바짝 붙여 쳤다, 나는 이중으로 가리어져 성소에 고이 모셔졌다.]

* Jane Eyre 초반, A breadfast-room adjoined the drawing-room.으로 시작해서 I was shrined in double retirement.로 끝나는 문단을 읽기 좋게 살짝 의역했습니다.





Jane Eyre 삽화 중 한 장면 [출처: 구글 이미지]





영국 작가 Sharlotte Bronte의 1847년 작품 'Jane Eyre' 한 장면이다. 몇 가지 복선을 비롯해 제인의 인생 전부를 모양 짓는 시발점인 이 문단에 window-seat이란 단어가 처음 나온다.




Gardening에 관한 라디오와 텔레비전 채널을 수없이 갖고 있을 정도의 영국인들에게 정원이나 작은 꽃밭이 보이는 window-seat이 주는 정서는 우리, 아니 나와는 몹시 다르다. 나에게 창가 자리, 창문이라 함은, 중고등학교 청소시간, 창가에 매달려 먼지를 닦던 부정적 기억부터 시작된다. 고소공포증과 먼지라는 이중고였다. 지금도 그러하다. 창문을 보면 '어이구야 저 먼지를 우찌 할꼬!'라는 한탄이 우선 튀어나온다. 창문의 먼지란 안에서만 닦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 나에게 창문이란 먼지와 등가이며, 골칫덩어리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기동 집의 주방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남쪽 창에는 window seat!'을 열망했다.




 

공사 전 주방과 남쪽 창의 모습





어린 시절부터 대학에서 전공서로 접하기까지 여러 번 읽었던 Jane Eyre의 낭만 때문에, 오로지 그 때문에 window seat을 계획한 것은 아니다. 일단 구기동 집의 주방이 길쭉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남쪽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제법 장했다. 식탁을 주방에서 빼내어 거실을 가로질러 북쪽 창으로 배치한 것이 내가 window seat을 생각한 결정타였다. 나에겐 주방에 앉을 만한 곳이 꼭 필요했다.




나는 돌솥이나 무쇠솥으로 밥을 짓는다. 돌솥밥은 부르르 밥물이 끓으면 약불로 바꾸어 12분, 불을 완전히 끄고 30분 동안 뜸을 들인다. 무쇠솥은 속재료에 따라 중불에 8-10분, 약불에 5-10분, 불을 완전히 끄고 20분 정도 뜸을 들인다. 이러한 5, 8, 10분 등등 동안 나는 앉을자리가 필요하다. 찹쌀가루를 살짝 코팅한 꽈리고추를 찜솥에 넣고 찌는 시간 6-7분 동안, 4등분으로 배를 가른 가지를 찜솥에 넣고 찌는 4분 동안 나는 어딘가에 앉고 싶다. 볶은 보리와 옥수수와 결명자를 넣고 한솥 가득 차를 끓일 때 나는 어디든 앉고 싶다. 흙을 털어낸 열무에 천일염을 뿌린 후 줄기가 낭창낭창 고운 숨을 쉴 때를 기다리며 내 돌뎅이 같은 장딴지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





10년 사용 중인 우리 집 돌솥
귀요미 무쇠솥, 콩나물밥 만드느라 열일 중 입니다





내가 빵이나 스콘을 만들 때 어느 정도 만족한 결과물을 꾸준히 얻어내는 것은, 180도에 20분!! 과 같은 레시피의 값으로 오븐을 설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주 오븐을 들여다보며 구움색을 확인하는 시간이 한몫을 차지한다. 밀가루에 따라, 때론 속재료에 따라 섬세하게 돌보아야 하는 것이 오븐의 온도와 굽는 시간이다. 이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는 앉을자리가 필요하다. 거실의 소파는 뒀다 뭐하려고?라고 묻는다면 양념 냄새 풀풀 풍기는 앞치마나 옷차림으로 내가 정갈하게 관리해온 소파에 앉기 싫다. 저 튼실한 광목천의 소파 커버를 뜯어내 세탁하고 다림질하느니 차라리 30분 동안 100번 서있는 쪽을 택하겠다. 하아! 주방의 불들, 가스레인지 건, 인덕션이건, 오븐이건 간에 그들은 사용자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귀신같이 이를 알아채고 끓어 넘치거나 내용물을 태워 재로 만들거나 그릇을 몽땅 눌러 태우며 성질을 부리기 마련이다.





오렌지 필&크림치즈 스콘 - 그라노파다노&체다치즈 스콘 - 전 처리한 피칸과 럼에 절인 크랜베리 스콘을 굽는 중입니다.





오븐 안에서 열심히 몸집을 부풀리는 중인 크루아상





진득이 버터를 뱉어내며 고소하고 바삭한 맛을 위한 여정을 시작한 크루아상





내 사정이 이러하니 이 집을 처음 본 순간부터 리딩 누크(reading nook)라고도 불리는 window seat을 희망했고 인테리어 실장님으로부터 처음엔 '한번 해보자'라는 답을 받았으나 실내공사 중반부엔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어도 포기되지 않았다. 가격이나 공사의 난이도로 힘들거나 불가하다는 여타 희망사항들, 예를 들어 히든 도어나 무 몰딩은 손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손쉽게 놓아 버렸어도 window seat은 죄송함을 무릅쓰고 다시 한번, 그래도 다시 한번 부탁하게 되었다. 인테리어 실장님과의 톡을 짚어보니 '내가 쥐구멍에 들어가는' 이모티콘이 제일 많은 곳이 window seat에 관해 협의하는 내용들 사이사이였다.   









내 희망과 읍소에 대한 인테리어 실장님의 성실하고도 순한 맛 응답의 결과로 나는 결국 window seat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짧은 기도를 올린다. 나는 브라운 체크무늬 방석이 놓여있는 이 window seat에 앉아 영수증을 정리하거나 레시피를 확인한다. 나는 창가의 이 자리에 앉아 새소리를 듣는다. 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엄청나게 가냘픈 소리로 더 엄청나게 길게 노래하는 저 새는 내가 앙코르! 앙코르! 를 외치고 있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다. 아들이나 친구와 전화통화가 길어질 기미가 보이면 나는 벤치 방석에 누워 다리를 까닥거리며 희희낙락 거리기도 한다.




내 희망이 얻어낸 이 자리에 눕는다, 발을 길게 뻗어 방석 위에 올린다, 잠깐만 이렇게 있어야지 하다가 짧게 낮잠을 잔다. window seat위에서의 낮잠은, 깊은 충족감이 그려내는 꿈은, 마누카 꿀처럼 달고 맛있구나.





공사 후 이사 오기 전
공사 후 이사 오기 전






이사 후 처음 스콘 구운 날
또 또 스콘 구운 날





창밖에는 비 오고요 장대비 내리고요
이 빗속을, 아니 아니 비 내리는 밖
비는 언제 그치려는지





밖엔 장맛비인데도 밝기가 이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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