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날, 전반부
이사팀을 꾸렸다, 출근하는 남편은 제외하고. 큰아들은 포함시켰다, 직장인임에도. 우리 집을 조금 알아요 하시는 분들은 이사팀에서 '남편 배제'와 '큰아들 합류'라는 나의 빅픽쳐를 단박에 이해하시리라. 남편이 퇴근 후에 이사한 집을 '잘 찾아오시면',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thank YOU, more than enough! 인 것을.
작은 아들, 아들 친구, 큰아들과 나 이렇게 4명으로 이사팀이 꾸려져 이삿날의 동선과 일정을 의논했다. 이삿날 아침이 되었다. 동녘에서 밝은 해가 두둥실 떠오.....
르지 않고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나는 소풍날이나 이사하는 날의 날씨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20여 년 전 영국 여행 당시,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의 3일 체류 중 이틀 내내 비가 왔었다. 옷은 물론이고 모세혈관까지 적시는 영국의 비속에서 나는 쉬지 않고 걸었고 열심히 보고 다녔다, 오히려 영국제 우산을 사게 되었다고 좋아라 하면서. 가스, 전기, 수도 등 공과금과 관리비를 정산하여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통해 이사 올 분들과 정리했다. 이삿짐센터분들이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에 올라서며 바닥 보호용 매트를 까는 것으로 종로구 구기동으로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한 번이라도 이사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가지 사실에 동의한다, 우리 집에 짐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나처럼 한두 달 전부터 정리하고 버린 경우여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많은 짐을 이고 지고 살았구나, 그러니까 말 그대로 '짐'이 '짐'이었구나. 어디선가 꾸역꾸역 튀어나오고 끊임없이 기어 나오는 짐들을 쓸어 담고 나니 얼추 오전 11시가 되었다.
우리가 재미 삼아 '떡팀'이라고 이름 붙인 작은아들과 아들 친구는 이사떡을 찾기 위해 한발 먼저 길을 나섰다. 큰아들과 나로 구성된 ‘본진’은 구기동으로 출발했다. ‘물류팀’으로 개명한 떡팀이 이사떡, 종량제 봉투, 세탁물과 함께 도착하면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정릉을 떠나 구기동으로 향하는 내 가슴에서 노래 하나가 맴맴 돌았다. '자아 떠어 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들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우리들 가슴속에는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자꾸자꾸 내 맘속에서 반복되었다. 10여 년 전 '나는 가수다'에서 자우림이 불렀던 것을 마지막으로 들은 적도 없고, 그래서 생각난 적도 없었던 이 노래가 자꾸 재생되었다 내 마음에서.
"술, 노래, 춤, 뭔 짓을 해봐도 가슴에는 온통 슬픔뿐이고, 몸부림을 쳐봤지만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사랑이 깨졌고, 그래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삼등 완행열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허망하기 짝이 없는' 꿈을 좇아 바다로 가자"라는 가사를 얹은 멜로디를, 나는 계속 흥얼거렸다.
북악터널을 지나 평창로를 따라 구기동으로 진입하며 마지막 이사이기를 꿈꾸는 나와, 사랑을 잃었기에 모든 것을 놓쳐버린 후 동해로 떠나는 고래사냥 속 주인공의 처지는 비슷한가?
성실하지 못해 놓친 사랑이 있고 어리석어서 놓아버린 사랑이 있다, 나에게도. 바람, 돌, 여자, 이 세 가지가 많아 삼다도라 불린 제주도에 빗대어 피부 좋고, 머릿결 좋고, 인성 좋다고 나를 삼다도라고 불렀던 여고시절 친구, 고등학교 입학실 첫날, 익명의 급우들 사이에서 그 친구와 나는 정확히 '눈이 맞았다.' 우리는 '같은 재질'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세상을 한 눈으로 보고 세상을 같은 이야기로 써나갔던 우리는 여고 3년, 첫날 부터 마지막 날까지 젓가락 한쌍처럼 붙어 다녔다. 대학교가 갈리며 아직도 기억 속에 뚜렷한 하나의 사건으로 헤어졌다, 친구와 나는. 그날 내 청춘이 끝났다. 그 시간 이후 나는 애늙은이가 되었다. 그 날 내 ‘순수’는 생명을 다했고 그 날이후 내 우정속에는 계산이 들어왔다, 그리고 내 모든 친구관계는 불가근불가원으로 수렴되었다. 우리들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읽는다 해도'를 부르는 '고래사냥'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아닌가?
갈망한 꿈은 작고 적았지만 그 얼마 안 되는 꿈조차 이루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할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점점 줄어든 '쪼그라든 이순'이 되어 버렸다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주름 가득한 양볼에 기미가 올라앉고, 푸석하고 갈라지고 얼마 안 남은 머리털을 헤아리며, 성격 별로가 되어버린 나도 '이쁜 고래'를 꿈꾼다. 노랫말 속 사회를 '건설'하는 젊음에서 '소비'만 하는 고령층속으로 눈 깜작할 사이 진입하고야 말았지만, 청춘과 노인이라는 이런 엄청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노래의 주인공과 나에게는 공통점 하나가 남는다, 꿈속의 '이쁜 고래 한 마리'
꿈이 있다, 나에게는.
이제는 체력과 나이로 사회와 이웃에 큰 도움은 못되겠지만 적어도 민폐는 끼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 나에게는.
나이를 먹는 것이 40에서 50을 넘어 60이 되는 숫자 변화가 아니라 신체와 정신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건강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조금 덜 고장 나고 덜 아프면서 늙어 갔으면 좋겠다는 어리석은 희망이 있다, 나에게는.
나는 내 꿈속 이쁜 고래 한 마리를 찾아 평창로를 지나 비봉길로 들어섰다. 구기동 집 앞에서 사진을 한방 찍었다, 내내 부른 노랫말 때문인지, 뜬금없이 급감상적이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