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날, 후반부
우리 이사팀 4명은 동네 초입의 김밥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콩나물 라면의 마지막 건더기를 들어 올렸을 때 이삿짐센터 측으로부터 집 앞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서둘러 집으로 올라갔다.
이사하는 날 오늘이 우리 가족이 처음 구기동 집을 보는 날이다.
집에 들어선 큰아들은 집 전체를 한 바퀴 느릿하게 돌고 난 후 긴 팔을 들어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큰아들 : 텔레비전 프레임 색이 왜 저런.....?
나 : 어 어, 그거, 마그네틱으로 되어 있어서 뗐다 붙여다 해도 되고 그거 공짜야 공짜, 그 밑에 원래 프레임, 블랙 프레임이 있어.
큰아들 : 그럼 지금 떼시지요 저 베이지색 프레임.
나 : 어 어, 그게, 그거 공짜야, 따라오는 거야, 언제든 뗄 수 있어, 쓰다가 지겨워지면 그때 떼려고.
큰아들 :....
나 : 좀 쓰다가 그때....
큰아들 : 집안 전체 분위기와 안 어울려요
나 : 헉, 바로 옆 아빠 키높이 책상과 색상이 같잖아, 공부하는 아빠, 넷플렉스 보는 아빠, 완전 어울리잖아.
큰아들 : 암튼요.
나 : (빠지직).......
큰아들은 큰 눈을 한번 감았다 뜨더니 다시 팔을 들어 긴 손가락으로 현관을 가리켰다.
나: 뭐 뭐 뭐 또 뭐.
큰아들 : 저 현관 펜던트 등 색이... 스카이 블루, 저거 튀어요.
나 : 어 어 그게, 현관이 좁잖아, 환한 색, 화이트로 신발장과 중문을 만들었어, 손잡이는 옐로 골드로 달았어. 화이트에 옐로 골드 조합 괜찮잖아. 또 옐로 골드가 제일 이뻐 보일 때가 스카이 블루와 같이 있을 때잖아. 그래서 펜던트 등은 무조건 스카이 블루로 가자 싶었었지.
큰아들 : 튀어요.
나 : fair lady, 금발에 푸른 눈 미녀, 그거잖아. 확실하게 뽀인트를 주고 싶어서 그랬지. (중얼중얼, 중언부언)
큰아들: 암튼 튀어요, 튀는 건 금방 싫증 나요.
나 : (아휴 내가 정말 참는다 참아.) 어 싫증 나면 그때 바꾸면 되지, 나 청계천 가서 이쁜 거 많이 봤어, 나중에 더 이쁜 걸로 바꾸면 돼.
큰아들 : 나중에 바꿀 거면 지금 바꾸세요.
나 : (내 멘탈 바스스스).....
큰아들 : 고생 많으셨어요.
나 : (너 시방 나에게 병 주고 약주냐?) (넌 나에게 당혹감을 주었어 ['달콤한 인생'의 김영철 버전])....
작은 아들은 집안의 구석구석,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며, 엄마 이거 이뻐요, 저거 좋아요, 이 아이디어 신박한데요, 와아 저거 아주 편할 것 같아요, 엄마 정말 많이 힘드셨지요? 애쓰셨어요. 넘 좋아요라며 나를 안아 주었다, 토닥토닥.
서너 방울씩 약하게 떨어지던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이삿짐이 본격적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짐을 풀고 대충 정리하다가 얼핏 밖을 보니 어느덧 비가 그쳐있었다. 이삿짐센터분들이 바닥에 깔았던 보호 매트를 챙긴 후 떠났다. 우리 이사팀 4명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아직도 따끈한 이사떡 한 조각을 떼어내어 막 내 입에 넣으려는데, 작은 아들이 슬며시, 훅, 들어왔다,
작은 아들 : 엄마 근데 화장실은 건식으로 하신다고 했었지요.
나 :.....
작은 아들 :....
나 : 나도 그러려 했는데... 정말 그러려고 했어, 근데 인테리어 사장님이 그게 좀...
작은 아들 : 맞아요, 여긴 여기 상황에 맞추어야 할 거예요.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
나 : 힝, 맞아 건식을 고집하기가 쉽지 않았어, 내 맘 이해하네, 고마워 힝!
뉴욕에서 태어났고, 초중고를 건너뛰고 다시 뉴욕시에서 공부하는 작은 아들에게는 건식 화장실이 자연스럽고 나 역시 건식으로 화장실을 만들려고 생각했었다. 근데 이런 공사가 생각만으로는 한계가...
퇴근시간이 가까워 오기에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경복궁역에서 탈 버스 번호와 우리 집 앞 정거장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서 남편에게 보냈다. 경복궁역의 버스번호는 대부분이 숫자 '7'이 들어 있어서 헷갈리기 십상이라 내 맘속에 걱정이 차올랐다. 아침 출근 때 남편에게 알려주었던 내용을 반복해서 적어 보냈다. 몇 번 들여다 보아도 톡 옆의 숫자 1이 없어지지 않아 문자로 같은 내용을 다시 보냈다. 아까 남편과 통화할 때 분명 알았다는 답을 들었지만 남편의 '알았어'와 'ok'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글자들의 뜻이 아닐 때가 종종 있기에.
대충 넣을 것은 욱여넣고 버릴 것은 버리며 나머지 정리를 하고 있는데 퇴근한 남편이 집에 '잘' 도착했다. 작은 아들이 아빠의 백팩을 받아 들었다.
남편 : 어 수고 많았지! 힘들었지? 배고프겠다, 밥 먹으러 나가자.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고는 직진해서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나와, 고개를 좌우로 한 번씩 돌려 집안을 일별 한 후), 나가자, 배고프겠다.
우리 : 어어어, 넵!
남편 : 자자, 나가자, 여보 저 텔레비전 선, 인터넷 선 저거 뭐야?
나 : 곧 정리할 거예요.
남편 : 자 나가자. (벌써 신발을 다 신고) 나와라 ( 벌써 계단 아래로 성큼성큼 내려가며).
남편은 방금 전 벗었던 신발을 다시 신고는 앞장서계단을 내려갔다. 그가 오늘 처음 본 집, 이제부터 살아갈 집을 둘러본 시간은 20여 초? 남편이 본 공간은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나오는 거실과 주방, 그리고 자신이 잠시 들렀던 거실 화장실이 전부였다. 작은 아들, 아들 친구, 큰아들과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실실 웃었다, 역시 우리 아빠야, 역시 우리 MSK!
늘, 줄곧, 꺾이지 않고, 각자의 '성질대로' '스타일대로' 살아온 msk, 큰아들, 작은 아들, 우리 가족 세명이 구기동 집을 처음 본 반응은 각각 이러했다.
구기동 집에서의 첫날밤,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서 제각각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잠자리에 누웠다. 이사를 결정하며 생각한 집의 지역이나 크기, 그리고 계획한 인테리어 항목들 중에서 20~30프로 밖에 이루지 못했음에도, 그럼에도, 기이하게 나는 행복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청계천에서 펜던트 등을 살 때도 그러했다. 등을 사서 배달을 부탁하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광화문까지 걸었었다. 길가에 늘어선 조명가게들에는 내가 방금 산 것보다 훨씬 더 이쁜 등들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더 젊은 나였다면 아까 산 등을 환불하던가, 아니면 포기하고, 더더더 이쁜 등을 기어이 움켜쥐었을 것이다. 나는 입을 헤 벌린체 내가 산 등보다 더 이쁜 것들을 어루만지듯 들여다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기이하게도 그냥 좋았다. 더 좋은 것을, 저 것을 가져야겠어라는 열망은 전혀 피어오르지 않았었다.
원하는 것의 일부분만 이루어진 집에서 자는 첫날밤, 다 이룬 것 같은 기이한 충족감에 눈이 스스로 감겼다. 잠이 조용히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