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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Dec 30. 2022

도쿄여행 2

2022, 12월 4일. 긴자





손을 씻고 양치를 하고 짐을 정리한 후 호텔방을 나섰다.









눈길 가는 대로 쉼 없이 사진을 찍으며 호텔과 맞닿은 조조지와 시바코엔을 가로질렀다. 내 기억 그대로의 골목들을 보고 다시 돌아보며 긴자 쪽으로 걸었다. 햇빛에 두 눈이 부셨지만 선글라스는 꺼내지 않았다. 열과 성의를 다해 튀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지은 듯한 고층 건물들, 작거나 큰 가게들, 간판들과 가로등이 무채색의 파노라마로 눈앞에서 펼쳐졌다. 대도시 도쿄는 끊임없이 옷깃을 여며서 도무지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불현듯 나타나는 작은 신사 앞에서 문득 쉼표를 찾은 나는 멈추었던지도 몰랐던 숨을 훅하고 내뱉었다.



























도쿄에 오면 으레 가는 초밥집으로 갔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임에도 대기자가 147명이었다. 일분일초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고 온몸을 던져 일하는 매니저의 두발과 두 손이 이제까지 내가 본 중에서 가장 바빴다. 대기표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시 긴자거리로 나섰다. 연말을 앞두고 일정시간대에 차 없는 거리를 시행하는지 도로 한복판에 간이식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있었고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은 피아 구별 없이, 차도나 경계선에 상관없이 군데군데 앉거나 서있거나 지나갔다.






















눈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 명란삼각김밥과 카페라테를 사들고 나와 줄지어 늘어선 가로등이 한눈에 보이는 도로 연석에 앉았다. 김이라면 당연히 이런 향이 나야지, 이 김이 바로 찐이지라는 생각 중에 불현듯, 나중에 도쿄에 와서 잠시라도 살게 된다면 기필코 편의점 근처에 자리를 잡겠노라 남몰래 결심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출렁이는 가로등을 반찬삼아, 사진을 찍거나 음악을 듣거나 홀로 조용하거나 여럿이서 소곤거리는 풍광 속에서 명란 김밥의 마지막 한 톨까지 씹어 삼키고 목을 한껏 뒤로 꺾어 카페라테의 마지막 모금까지 탈탈 털어 마셨다. 2018년 9월과 2022년 12월이 단숨에 맞닿았다.





나는 여행 전에 쇼핑을 계획하지 않는다. 경추 5번과 6번이 딱 달라붙어있는 목디스크에 더해, 양쪽손목의 인대가 지속적인 문젯거리인 나는 물건을 사들고 다닐 생각만으로도 숭모근이 욱신거린다. 하지만 이번 여행엔 꼭 사야 할 쇼핑목록이 하나 있었다. 운이 좋아야 살 수 있는 물건이라 도쿄시내에 흩어져 있는 분점들을 다 가볼 각오도 했다. 목표한 물건이 있는지도 살필 겸 긴자의 상점들을 흩어보고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밖이 어두웠다. 대기자가 얼마나 줄었는지나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초밥집으로 갔다.




14명도 아니고 147팀을 기다려야 한다니 기가 막혀서 대기표를 뽑아놓고는 다시 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지 30분 정도 기다려서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본가게의 거대한 특징 중 하나인 좁은 공간 안에 몸을 한껏 쑤셔 넣고 맘 급하게 '생맥주'를 주문했다. 햇빛은 충분했으나 꽤 쌀쌀했던 거리를 몇 시간 쏘다니다 왔어도 시원함이 기꺼운 생맥주는 목구멍 너머로 콸콸거리며 잘도 넘어갔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한 모퉁이에 조신히 서있는 건물이 내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키가 작은 건물에 박혀있는 서로 다른 디자인의 창틀이 내 눈엔 왕관에 박혀 서로 다른 빛을 뿜어내는 보석 같았다. 조신한 눈길을 내리깔고 서있는 침착한 벽돌색의 그 건물을 밝은 날 다시 와 보겠노라 다짐하며 호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호텔로 돌아와 거대하고 묵직한 창 앞에 섰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두 블록쯤 되는 거리에 대학병원의 간판이 반짝였다. 영화 '도쿄타워'에서 마사야(오다기리 죠)와 엄마 (키키 키린)가 앉거나 누워있는 병실의 무대가 아마 저곳이리라. 평소 두꺼운 암막커튼은 물론이고 안대까지 꼼꼼히 둘러야 잠이 드는 나는 커튼을 완전히 젖혀둔 체 침대시트 속으로 들어갔다. 마사야가 도쿄의 중심, 일본의 중심이라고 말하던 도쿄타워를 등대 삼아 잠의 바다에 들어갔다. 온갖 종류의 밍밍함이 모여 독특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도쿄 한 복판에서, 지상 80미터쯤의 높이에 누운 나는, 안대도 없이, 그날 밤 한 번도 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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