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1년이 넘도록 못 갔던, 가고 싶었던 곳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걱정이 앞섰다. 해외여행을 자제하라는 이 시국에 가게 되다니. 게다가 출발 몇 주 전부터 일이 많아 준비도 제대로 못했다. 쇼핑몰에도 가지 못하니 가족이나 친구들 선물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일이 많고 정신이 없어 쇼핑하러 갈 시간도 없었다. 짐 쌀 정신도 없어서 제대로 챙겼는지도 걱정이지만 여권이랑 핸드폰, 지갑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우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짐들을 내리고 차를 주차장에 넣으면서부터 주머니에 넣어둔 스프레이형 세니타이저를 주기적으로 손에 뿌렸다. 손에 뭔가가 닿았다 싶으면 다시 뿌리고, 얼굴을 만지고 싶으면 또 뿌렸다. 마스크는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벗지 않았다. 귀가 아파서 손으로 잡고 있기도 했다.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화장실을 쓰고 싶을 때도 세니타이저를 적극 활용했다.
내가 출발한 지역에서 한국까지 직항이 없는 터라 한 번의 경유가 필요했고, 경유지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서류작성은 시작되었다. 공항 내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탑승하는 승객들은 카운터로 와서 작성할 서류를 받아가라는 방송이 들렸다. 한국 여권을 가진 사람은 노란색 종이를, 한국 여권을 가지지 않았지만 한국에 체류할 사람은 흰 종이를 작성해달라는 방송이었다. (한국어로 방송해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영어가 서툰 한국인들은 이 곳에서 서류를 가져가지 못하고 나중에 한국 공항에서 받더라.)
비행기를 타자마자 작은 세니타이저와 물티슈, 장갑, 마스크 등이 담긴 일명 '클린케어' 팩을 나누어주었다. 기내식은 모두 포장이 된 도시락의 형태로 내 앞에 놓였다. 물티슈로 팔걸이와 테이블을 닦고 몇 주간 정신없었던 터라 바로 잠들었다. 기류가 불안정하여 도착이 늦어졌지만 어쨌든 16시간 만에 인천공항에 내렸다.
입국에 대한 걱정과 자가격리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공항에 내려 입국장으로 향했다. 입국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열화상 카메라 앞에 줄을 서있으니 누군가가 와서 적외선 체온계로 열을 쟀고, 나의 온도를 내가 출발지 공항에서 작성해 온 종이에 적어주었다. 그 문서를 작성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곳에 서서 작성을 했다. 출발지에서 문서를 받지 못했어도 도착하면 그곳에서 나누어주는 듯했다. 그리고 열화상 카메라를 통과하여 몇 가지 질문을 받는다. 격리 장소와 비상 연락망, 그리고 증상에 관한 내용이다.
그곳을 지나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웅성대는 곳을 발견할 수 있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자가격리 어플'을 설치하는 곳이다. 나는 출발지에서 미리 받은 문서에 적힌 대로 설치를 해왔지만, 관련 설정은 도착 후에만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그곳에 서서 설정을 끝낸 후 다시 줄을 섰다. 줄을 서면서 설정을 하고 싶었지만 줄을 서는 곳에 어플을 받아서 설정을 완료했는지 검사를 하는 직원이 하나 있어서 설정을 다 끝내지 않았다면 줄을 서게 해주지 않았다. 그 직원은 많은 사람을 상대해서 그런지 말투에 짜증이 묻어있길래 불친절하다고 속으로 한마디 했다. 사람도 많고 일일이 같은 걸 설명해야 하니 이해는 가지만 핸드폰 어플에 익숙하지 못한 분들께도 그러는 모습에 나도 짜증이 나길래...ㅎㅎ
어플을 받아 설정을 완료한 화면을 유지한 채로 줄을 서있다가 차례가 되면 설정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을 한 후 서류에 적은 연락처로 전화를 건다. 본인의 연락처를 썼다면 당연히 그 자리에서 받으면 확인이 완료되지만, 나는 내 핸드폰을 로밍해 왔으므로 한국 번호가 없었다. 가족이나 친구 연락처를 쓰라고 하여 동생 연락처를 썼는데 그 자리에서 두 번 걸어서 받지 않으니 또 다른 연락처를 쓰라고 하더라. 그냥 해외번호로도 통화할 수 있게 좀 해놓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번호만 붙이면 세계 어디든 전화를 걸 수 있는 시대라는 걸 모르나...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사람이 왜 불친절했는지도 알겠더라. 줄 서는 끝에서 사람들에게 일일이 어플 받으라고 설명하던 그 사람과 적힌 연락처로 직접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확인하는 사람들은 육군들이었다. 인력이 부족하니 불려 와 그저 하란대로 하고 있는 거겠지. 불쌍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어쩐지 앳되어 보이더라니.
연락처 확인이 끝나면 또 다른 서류를 작성한다. 자가격리에 대한 서류인데, 똑같은 내용을 쓰고 또 쓰는 느낌이다. 이름, 연락처, 비상 연락망, 자가 격리할 주소 등등. 그 서류를 들고 또 다른 줄을 서서 증상과 자가격리에 대해서 한번 더 확인을 하고 나면 드. 디. 어. 입국심사를 하는 줄을 설 수 있게 된다.
코로나 때문인지 자동 출입국은 다 막혀있었고, 입국심사는 그저 평범한 입국심사였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으러 가보니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지 많은 짐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짐들은 이미 다 나와 있었기에 내 짐을 찾기만 하면 되었다. 가방을 끌고 나와 세관 신고서를 내고 마침내 출구로 나왔다!!!
... 고 생각했는데 다른 육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 여권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몇 걸음 지나가니 다른 직원이 내 팔에 스티커를 붙였고, 몇 걸음 걸어가니 나의 행선지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내 손에 들려있는 작성된 문서들에서 자가격리 주소를 본 그 사람은 저쪽에 있는 몇 번 창구로 가면 교통편을 안내받을 수 있다며 나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창구에 앉아있던 직원은 교통편을 안내해주고, 표를 사서 어디서 버스를 탈 수 있는지까지 알려주었다. 무인 창구에서 표를 사서 버스 타는 곳으로 걸어가려고 하는데, 공항 출구 앞에서 또 나를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표를 보여달라고 하고는 버스 타는 곳을 알려주었다. 내 생각엔 버스 시간이 임박한 사람만 내보내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계속 그 안에 두는 것 같았다.
버스 출발 시간을 10분여 남겨두고 티켓을 샀기에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고, 빠른 걸음으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조금 기다리니 버스가 한대 섰고, 그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하얀 방호복을 입은 버스 기사 아저씨가 나오셔서 "**행입니다."라고 소리치더라. 그 버스는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만 타는 방역 버스였고, 짐을 싣고 표를 내고 버스에 오르니 띄엄띄엄 앉으라는 말도 잊지 않으시더라. 방호복 입고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고생이다 싶었다.
버스에 앉아 한숨 돌리고 보니, 내 손에 쥐어진 서류와 안내문만 몇 개인지... 후... 이것들도 다 쓰레기가 될 텐데 싶었다. 교통편을 안내해준 분이 버스에 타면 전화하라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줄 택시를 연결해주는 곳이었다. 나는 몇 시에 버스를 탔고,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전달했고, 전화를 받은 분은 내가 방역 택시를 타고 이동하게 될 것이라면서, 버스에 몇 명 정도 있는지를 물어보셨다. (택시를 준비하실 요량인 듯했다.)
버스 기사님은 안전벨트를 하라는 말과 마스크를 계속 써달라는 방송을 하며 출발을 했고, 원래 차만 타면 잠드는 나였지만, 피곤함에도 긴장감에 잠이 오질 않았다. 버스가 도착한 곳에는 다른 인솔자 분이 있었고, 한쪽으로 서달라는 요청에 짐을 꺼내서 다들 한 줄로 섰다. 그 인솔자 분은 목적지 방향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을 두 명씩 짝지어 방역 택시로 보냈다. 나는 중국에서 입국한 다른 한 분과 같은 택시에 배정되었고 같이 이동하였다. 방역 택시는 미니 벤 사이즈의 택시였는데, 택시 기사분이 우리의 짐과 가방에 소독약을 사정없이 뿌리셨다. 그러고는 나에게도... 소독약을 아낌없이 뿌리시더라. 택시에 타서는 손 세정제까지 챙겨주시고, 주소를 확인한 후 출발하였다. 동행자를 먼저 내려주고 내가 지낼 곳으로 도착해서는 나를 내려주셨다. 나를 내린 후, 트렁크와 택시에 또 소독약을 뿌리는 택시 기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도착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려, 한참을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나의 자가 격리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