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기억
잔상은 오감으로 기억된다.
이제는 길에서 흔하게 들을 수 없는 예전 노래가 누군가 다시 불러서 몇 십 년 만데 우연히 들릴 때가 있다.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기억이 많다.
예전에 들었던 노래 중 기억나는 건 대부분 이별 노래다.
그땐 이별을 많이 했는지 아니면 이별하고 들은 노래가 내 얘기 같아서 기억에 남은 건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노래가 이별노래인 것으로만 기억된다.
아주 예전에는 노래를 들으려면 테이프를 사야만 했다.
정품도 있고 길에서 파는 길보드차트를 녹음해 놓은 테이프도 있었다.
테이프에서 듣고 싶은 노래를 들으려면 앞으로 또는 뒤로 감기를 해서 원하는 노래를 맞춰 듣곤 했다.
테이프를 사면 대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된다.
이런 시절에 혁명적인 제품이 나왔다. MP3는 아직 먼 훗날에 얘기다.
무려 테이프 2개를 꽂을 수 있는 제품이다.
한쪽에 테이프를 넣고 다른 쪽에 공테이프(왜 빈테이프가 아니라 공테이프인지 모르겠다.)를 넣고 원하는 노래를 녹음할 수 있는 엄청난 제품이다.
듣고 싶은 노래를 내 마음대로 선곡하여 내가 만드는 테이프를 듣고 다녔다.
테이프가 보통 60분 또는 90분으로 되어 있어서 노래를 잘 선곡해서 시간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한쪽 면을 녹음하고 남은 시간은 테이프를 분해하여 필요 없는 부분은 잘라내고 다시 조립하면 52분짜리 또는 47분짜리 테이프를 만들 수 있었다. (나만 이렇게 한 게 아니겠지?)
테이프를 녹음하기 전에 신중하게 노래 선곡을 하고 난 후에 노래 순서를 잘 정해서 앞면과 뒷면에 들어갈 노래를 정하고 시간 계산을 하고 난 후에 테이프를 녹음해야 한다.
테이프를 하나 만들고 난 후에 똑같이 복사를 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때 듣던 노래는 신촌블루스, 동물원, 유재하, 김광석 등등 유명한 노래가 많이 있다.
이후 CD라는 것이 나와서 원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서 테이프를 감지 않고도 버튼으로 바로 원하는 노래가 나오게 되었다.
이때부터 참을성이 없어졌나 보다.
테이프를 들을 때는 웬만하면 전체를 다 들었는데 CD는 한곡만 반복도 가능하고 듣다가 다음 노래로 바로 넘어갈 수 있어 오히려 CD에서 듣는 노래가 정해지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 레코드판이라 불리는 LP판이 있었다.
왜 아직도 똘이장군이 우리 집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판이 있다.
레코드판을 테이프로 녹음하는 것은 조금 더 기술이 필요했다.
이제는 전축이라고 부르는 시스템을 활용해야 한다. 턴테이블에 판을 올리고 바늘을 놓자마자 외부로 나오는 잭에 연결된 녹음기를 눌러서 테이프에 녹음해야 한다.
이렇게 1시간 테이프를 만들려면 대략 2시간 이상 걸리게 된다.
그 이후엔 더블데크로 테이프를 하나 더 복사하면 된다.
이렇게 복사한 테이프를 선물하고 함께 들었다.
이런 것도 감성이라고 하면 그렇게 들리지만 당시에는 머리와 몸을 함께 써서 만들었기 때문에 힘들었단 기억이 남아있다.
요즘에는 노래 듣기가 편하다.
하지만 노래를 끝까지 듣기 힘들다.
새로운 노래를 10초 이상 듣지 않고 바로 다음 곡으로 넘겨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최신 노래는 잔상이 남지 않는다.
세대가 바뀌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예전 노래가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기억 속엔 예전 노래, 내가 10대부터 30대까지 듣던 노래가 더 많이 남아있다.
노래가 나오는 환경, 함께 듣던 사람, 헤어지고 난 이후 듣던 노래, 같이 봤던 영화 음악, 뜻도 모르고 듣던 팝송, 술집에서 부르던 구전가요, 민중가요 등등 다양한 노래가 기억 속에 있다.
차에서 노래를 틀어놓으면 함께 탄 사람이 도대체 내 노래 취향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많다.
딱히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 것이다. 트로트는 아직도 자주 듣지는 않는다.
누군가 틀어놓으면 할 수 없이 듣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안 듣게 된다.
모스크바로 유학 갈 때 트렁크 하나 가져갔는데 그 안에 CD책을 넣어갔다.
이미지를 찾아보니 아직 팔고 있는 곳이 있다. 사진과 같은 CD보관함에 100장 넘게 들고 갔었다.
요즘에는 굳이 CD를 들고 가지 않아도 되고 가져간다고 해도 듣기가 힘들다.
컴퓨터에도 CD를 넣는 곳이 없어진 지 오래됐다.
그때 많이 들었던 노래는 일기예보에 "더 이상 날"이다.
집으로 돌아와 힘없이 앉으면 어둠이 내려와
조그만 창문을 비추는 불빛이 너무도 외로워
더 이상 날 힘들게 하지 말아줘
더 이상 날 이렇게 혼자 있게 하지마
누군가 가까이 내 곁에 있다면 그러면 좋겠어
더 이상 날 힘들게 하지 말아줘
더 이상 날 이렇게 혼자 있게 하지마
솔직히 나는 일기예보가 누군지 잘 모른다. 일기예보뿐 아니라 다른 가수도 잘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내가 즐겨 듣던 노래를 부른 가수를 대답한다.
가수에 대한 정보는 일부러 찾아보지 않고 노래가 좋으면 듣게 된다.
예전 가수는 최근 가수보다 정보가 많이 없었다. 인터넷도 안되고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면 대부분 사고 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사생활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고 굳이 찾아보지도 않았다.
이 노래가 몇 집에 나온 것인지 타이틀 곡인지도 관심 없는데 그냥 노래가 좋았다.
유명한 노래가 아니어서 길에서 들을 일은 거의 없었지만 머릿속에서 계속 노래가 맴돌았다.
이 노래를 얘기하는 것은 정말 아무 기억이 안나는 노래다. 이 노래가 왜 아직도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반복적으로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날 힘들게 했던 건 아닌지 잘 모르겠다.
친구를 생각하면 김현식 노래가 떠오른다.
둘이 노래방에 가서 같은 노래를 연달아 부르고 누구 점수가 높게 나왔는지 보곤 하였는데 김현식 노래를 들으면 가사는 슬프지만 왠지 그 친구가 생각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이문세 노래는 풋풋한 감정이 떠오른다. 그땐 그랬지.
그냥 멋있는 노래는 신촌블루스에 "바람인가 빗속에서"이다. 그냥 멋있다.
떠나가는 네 마음은 바람인가 잡을 수 없네
저 들에 부는 바람처럼 그렇게 가버리나
떠나가는 네 마음은 구름인가 닿을 수 없네
하늘에 높은 구름처럼 그렇게 떠있네
나도 풍선이 되어 바람 따라갔으면
높이 하늘 높이로 네 곁에 갔으면
떠나가는 네 마음은 바람인가 잡을 수 없네
저 들에 부는 바람처럼 그렇게 떠있네
비 내리는 거리에서 그대 모습 생각해
이룰 수 없었던 그대와 내 사랑을
가슴깊이 생각하네
온종일 비 맞으며 그대 모습 생각해
떠나야 했나요 나의 마음 이렇게
빗속에 남겨둔 채
흐르는 눈물 누가 닦아주나요
흐르는 뜨거운 눈물
오가는 저 많은 사람들
누가 내 곁에 서 주나요
비 내리는 거리에서 그대 모습 생각해
이룰 수 없었던 그대와 나의 사랑을
가슴깊이 생각하네
이 노래를 들을 때와 부를 때는 생각나는 사람이 많다.
같은 노래를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기억에 남게 된다.
생각해 보니깐 노래를 듣고 슬퍼지거나 힘들어지는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감정보다는 기분 좋은 감정이 더 강렬하게 오래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기억을 내 마음대로 바꾸고 있는 것 같다.
그때 만났던 사람이 누구였을까?
어디서 만난 사람일까?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기억이 나게 되는 것은 노래에 묻어있는 잔상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