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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복숭이 Jul 30. 2020

결혼과 이혼, 그리고 가족

변호사가 본 '결혼 이야기'

보고 싶었던 영화가 넷플릭스에 있길래 망설임 없이 재생을 눌렀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였고, 아카데미 후보에도 오른 것을 알고 있었고, '결혼이야기'라는 제목도 내 눈을 끌기에 충분해서 언젠가 보고 싶다고 찜해 두었던 영화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 배우의 연기에 몰입해서 보았다. 감독인 노아 바움백이 본인의 이혼 과정에서 영감을 받아 각본을 썼고 스칼렛 요한슨은 이 영화를 촬영할 때 실제 이혼소송 중이었으며 아담 드라이버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대사며 연기가 너무 실감 나서 나도 모르게 중간중간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혼소송을 여러 차례 대리해 본 변호사로서 미국의 이혼 과정과 절차가 우리나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영화에 등장하는 3명의 이혼 변호사의 모습이 다 내가 이혼소송을 대리할 때 접해 보았던 상대 변호사의 유형이라 그런지 조정 장면이나 재판에서의 변론 장면이 아주 흥미로웠다.


 




제목은 '결혼이야기'이지만 영화는 이미 결혼이 파탄난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매우 사실적인 이혼의 과정을 보여준다.


니콜과 찰리도 여느 부부처럼 서로 너무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 배우였던 니콜은 자신의 가족과 커리어를 뒤로 한 채 연극 감독인 찰리를 따라 뉴욕으로 간다. 그들은 헨리를 낳았고 니콜은 찰리를 내조하며 행복하게 사는 듯했다. 하지만 찰리는 잘 나가는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는 반면 니콜은 점점 작아졌고 자기 자신을 잃어갔다. 항상 고향인 LA를 그리워했던 니콜은 드라마 출연 제의가 오자 이를 계기로 LA로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찰리는 뉴욕에 남아 본인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길 원한다(그 전에도 여러 차례 LA에서 살아보자고 찰리에게 권했지만 거절당함). 니콜은 적어도 찰리가 자신의 꿈을 응원해주길 바랐지만 그러지 않았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했다고 느낀 니콜은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아내의 전화번호도 모르는 건 정말 너무하지 않나? 아! 찰리는 바람도 피웠다. 게임 끝.

처음에는 순조롭게 이혼에 협의가 될 듯 보였다. 찰리는 처음엔 니콜이 그들의 모든 재산을 가져도 된다고, 헨리를 위해 서로 가까이 살자고 말했다. 니콜도 재산은 필요 없다고, 이혼 후에도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너무 살벌하게 이혼하기 싫어 변호사 없이 진행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니콜이 노라(이혼 전문 변호사)를 만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노라는 본인의 이야기(노라도 이혼을 했다)를 하며 니콜의 처지에 공감하고 그녀를 지지해 준다. 니콜은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마음을 오픈하게 되고 결국 노라를 선임한다. 이렇게 된 이상 찰리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응해야 했고, 협의이혼에서 이혼조정, 나아가 재판상 이혼으로 상황이 악화되며 재산분할과 양육권 분쟁이 일어난다. 이혼소송에 정통한 변호사들은 상대의 사소한 문제도 크게 확대시켜 무심한 아빠, 부적격 엄마를 만들었고 재판은 그야말로 난타전이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며 둘이 만나게 되는데, 이때 상대를 향해 엄청난 저주와 폭언을 하며 서로의 밑바닥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결국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상처를 남겼지만 아들을 위해 조금씩 양보하며 원만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이혼을 하고 나서야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고, 서로의 성공을 순수하게 축하해 주며 각자의 커리어를 응원해 주는 모습이 안타까웠다(이혼 전에 찰리가 LA로 오는 결정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니콜이 찰리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이혼으로 부부로서의 연은 끝을 맺지만 자녀가 있는 한 아이의 부모라는 이름으로 계속 관계가 유지되는, 어쩌면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모습에서, '결혼'과 '가족'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헨리에게는 정말 좋은 부모였던 찰리와 니콜


    




영화를 보고, 예전에 송무를 하던 시절 맡았던 이혼 사건들이 생각났다. 내가 근무했던 법률사무소에는 이혼 사건들이 많았다. 그 때는 결혼도 하기 전이었는데, 어느 가정의 내밀한 영역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법률적인 쟁점 다툼보다는 감정적인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이혼소송이 매우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지금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잠깐 우리나라의 이혼 절차에 대하여 살펴보면, 이혼은 크게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으로 나뉜다.

협의이혼이란 말 그대로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양육권 및 친권, 양육비, 면접교섭 등 이혼과 관련한 제반 사항들에 대해 양 당사자들이 모두 합의가 이루어질 때 가능한 이혼의 방식이다. 이혼까지 걸리는 시간이 비교적 짧고(미성년 자녀의 유무에 따라 1개월/3개월)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가 없으므로 비용도 적게 든다.

그런데 위 사항 중 어느 한 가지라도 합의되지 않거나 협의이혼 중에라도 어느 한쪽의 마음이 바뀌는 경우에는 재판상 이혼으로 진행하게 된다. 영화에서 니콜과 찰리도 처음에는 협의이혼으로 진행할 것처럼 보였지만 니콜이 변호사를 선임하여 찰리에게 이혼 소장을 보내면서 재판상 이혼의 절차를 밟게 되었다. 변호사를 선임하여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고, 다투는 사항의 많고 적음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혼에 이르는 기간도 오래 걸린다.  재판상 이혼의 경우, 조정전치주의에 의해 완전히 조정 성립의 여지가 없지 않는 한 조정절차를 먼저 거치게 된다. 재판 전 단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양 측의 의사를 조정위원이 들어보고 조금씩 서로 양보하여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면 조정으로 이혼을 성립시키는 절차이다. 조정이 성립되면 진흙탕 싸움까지 가지 않고 비교적 점잖게 결론을 지을 수 있다. 당사자도 에너지를 덜 낭비해 좋고, 판사도 판결문 안 써서 좋고, 변호사도 사건 빨리 털어서 좋다. 모두에게 좋은 결론이다. 조정에는 당사자가 출석할 필요가 없고 변호사만 출석한 상태에서 기일 진행이 가능하다. 그래서 애초에 모든 사항에 대하여 합의가 되었지만 상대방을 만나기 싫어서 또는 협의이혼에 걸리는 기간도 길다고 느껴져서 바로 이혼조정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송중기, 송혜교의 경우처럼). 만약 서로 타협점을 찾지 못해 조정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이제 재판까지 가야 한다. 합의되지 않는 사항에 대해 나의 유리한 점을 최대한 근거를 들어 주장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크게 부각시켜 해석해서 가능한 한 조금이라도 나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판결이 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물론 변호사의 일이므로 변호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영화에서 3가지 유형의 변호사가 나온다.


1) 의뢰인의 처지에 공감해 주고 차분하게 의뢰인의 말을 경청한 후 의뢰인의 입장과 마음 상태를 고려하여 융통성 있게 공격과 방어를 전략적으로 구사하는 베테랑 변호사....... 노라, 니콜의 변호사

2) 의뢰인을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의뢰인에게 헛된 기대감을 심어주지 않으며 감정적인 부분을 최대한 배제한 채 현실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주지만 의뢰인에게 '내 편이구나'하는 심리적 안정감은 주지 못하는 변호사........ 찰리의 첫 번째 변호사

3) 의뢰인에게 완전히 감정이입을 하여 마치 본인이 의뢰인인 양 매우 공격적이고 와일드하게 변호를 해서 의뢰인에게 든든함은 줄 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상대방과의 감정의 골을 더 깊게 만들어 소송을 더 길고 힘들게 만드는 변호사......... 찰리의 두 번째 변호사


1번 같은 변호사가 제일 유능하고 의뢰인에게도 고마운 변호사일 것이다. 니콜은 변호사를 잘 만났다.



여기에서 영화와 실제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데, 노라가 딱 붙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변론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훠우~ 역시 미국은 달라), 사실 우리나라의 재판은 법정에서의 변론보다는 서면으로 다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찰리와 니콜의 변호사가 변론을 하며 난타전을 벌이는 장면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말로 할 것을 모두 서면으로 써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때문에 말보다는 정제된 단어로 보여지지만, 그래도 이혼소송의 준비서면들을 보면 말로 안 했다 뿐이지 철저히 일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비방하는 수준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반면 조정기일에는 조정위원(들) 앞에서 변호사나 당사자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현실에서 3번 같은 변호사를 조정기일 때 상대방 대리인으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억지 주장을 해서 기 빨리는 건 둘째치고 저렇게까지 열불 낼 일인가, 내가 어려 보이고 여자라 만만해서 저러나 싶어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본인 의뢰인 앞에서 showing하는 거였을수도.

영화를 보며 나는 어떤 변호사였을까, 어떤 변호사로 의뢰인의 눈에 비쳤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리벙벙한 초짜변호사로 보이지 않았기를. 결과는 그런대로 다 좋았다!



양육권 다툼이 지속될 경우 양육권자 및 친권자를 누구로 정할지 판단하기 위해 가사조사관이 각 부모를 방문해서(전화통화로 대신하기도 함) 양육환경을 조사하는 절차가 있다. 영화에서도 가사조사관이 찰리를 방문해 생활환경과 아이와 지내는 모습 등을 살펴보는 장면이 나온다. 가사조사관의 질문에 대비해 노라와 니콜이 미리 연습을 해 보던 씬이 있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술을 자주 마시냐, 마약을 한 경험이 있냐, 본인의 엄마로서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냐 등의 질문에 사실에 기반한 대답을 하던 니콜에게 노라는 말한다.

진짜 면담 때에는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술 마시고 욕하는 엄마는 용납 못 한다고. 아빠는 부족해도 그런가 보다 하지만 엄마는 아니라고. 아빠는 실수투성이여도 사랑하지만 엄마가 그러면 세상은 들고일어난다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뿌리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완벽한 여자였기 때문에. 그녀는 동정녀로 아이를 잉태했고 꿋꿋하게 자식을 부양했으며 심지어 자식이 죽을 때에는 시체도 끌어안고 있었다고. 그런데 아빠는 하늘에 계셨을 뿐이라고. 그러니 찰리는 망치든 말든 상관없지만 당신은 완벽해야 한다고.


항상 세상의 엄마를 향한 기준이 아빠보다는 훨씬 까다롭고 높으며,
짜증 나지만 이게 현실이라고
(it's f*cked up, but that's the way it is).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대사였다(노아 바움백은 남자인데 어떻게 이런 대사를 쓸 수 있었을까). 열 달 동안 힘들게 아기를 품고 죽음의 고통을 무릅쓰고 아기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도 모자라 왜 엄마에게는 태초의 완벽한 모성을 요구하는 것인지... 미국이나 한국이나, 엄마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세상 어디나 같구나. 그 뿌리가 기독교든, 유대교든, 유교에서 비롯된 가부장제든 말이다. 변하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하지만 나도 변호사로 여자 측을 대리한다면 노라와 같은 조언을 할 것임이 틀림없다. 씁쓸한 현실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식의 변화를 사회가 어서 따라오기를. 이 장면에서의 로라 던(노라 역)의 연기가 어찌나 찰떡이던지, 아카데미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쓴 이유를 여기에서 찾았다.  


이혼을 하려거든 로라 던을 찾아가세요.



이혼 소송을 대리하다 보면 물론 당사자도 안타깝지만 중간에 끼인 자녀들이 제일 딱하다. 영화에서도 엄마, 아빠를 따라 이리저리 변호사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헨리의 모습이 나온다. 그래도 헨리 같은 경우는 양 쪽 부모 모두 양육권을 갖기 원하고, 이혼 후에도 부모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면접교섭을 잘 이행하니 아주 모범적인 케이스이다.

대부분의 경우 양육권을 서로 갖겠다고 싸우지만 간혹 가다 서로 양육권을 가지지 않겠다고 다툴 때가 있는데 정말 변호사도 판사도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이런 케이스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10대 후반에 만나 임신을 한 후 결혼했고 남편의 지속적인 외도로 20대 초반에 아내가 이혼을 청구한 케이스였다. 몇 차례의 가사조사와 설득의 설득을 거쳐 아내 쪽으로 양육권이 정해졌지만 갓태어난 아기를 엄마가 계속 잘 양육할 수 있을지 너무 걱정이 되었었다.

이밖에도 양육권을 갖기 위해 아이에게 다른 부모의 험담을 늘어놓는다든지, 아이를 일방적으로 데려가서 다른 부모를 보여주지 않는다든지, 이혼 후에 양육비도 제때 주지 않고 면접교섭도 이행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이혼 과정에서 아이들이 상처받는 모습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자녀들의 마음이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부모들이 더욱 신경을 써야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있겠지. 참 안타깝다.


내가 대리했던 이혼 소송의 당사자들이 이혼 후 모두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그들의 자녀들까지도.






결혼하기도 전에 이혼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서 결혼할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결혼하여 아들도 낳았다.  항상 부부 사이가 좋을 수는 없겠지만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존중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 불행한 결혼생활이 시작될 수 있으니 가족 안에서 우리 각자는 또 각자의 모습을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영화 아직 안 보신 분이 계시다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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