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토끼 잡기
일과 가정의 양립 못지않게 중요한 게 공부와 연애의 양립 아닐까. 특히 20대 때에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경우에는 "Yes"였다.
앞서 밝혔듯 로스쿨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우린 3년의 로스쿨 기간 중 2년을 연인으로 함께 했으며 둘 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으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이는 내 성격과 공부 스타일, 상대방의 성향, 당시 우리의 환경 등 매우 주관적인 요소에 의한 결과라고 할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내 이야기를 해 보자면, 우선 나는 금사빠가 아니다.
금방 사랑에 빠져 활활 타올랐다가 또 금방 사그라드는 그런 부류가 아니고, 오랫동안 상대를 지켜보고 인간적인 매력을 느껴 친해지다가 어떠한 계기를 통해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그런 사랑을 추구한다. 나 스스로도 상대에게 첫인상을 통해 강렬하게 어필하기보다는 오래 보면서 서서히 내 매력을 보여주었을 때 더 잘 먹히는 타입 같다. 여태까지의 몇 안 되는 나의 연애를 살펴보면 모두 친구로 시작해 연인으로 발전한 케이스였다. 소개팅을 안 해본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나는 소개팅으로는 사람을 사귀기 어려웠고 사귀더라도 오래가지 않아 끝을 보곤 했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 오랫동안 알고 지내며 상대를 어느 정도 파악한 후에 교제가 시작되었고, 그냥 남사친이었던 때와 남자 친구가 되었을 때와 물론 같을 리는 없겠지만 남자 친구가 되었다고 해서 그 상대에게 완전히 빠져서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올인하는 그런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항상 해야 할 공부의 양이 많기도 했고.
연애를 하면 공부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또 공부를 하는 시간에도 집중을 하기 어렵고 딴생각이 늘어서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감정적으로 공부와 연애의 분리가 그런대로 잘 이루어지는 편인 것 같다. 공부에 아주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좋은 영향이 될 수 있도록 애썼다. 공부할 때는 공부에 집중하려 노력했고, 오히려 '이 만큼의 공부를 다 하고 나면 남자 친구를 만나서 놀 수 있다'라고 생각하며 만나기 전까지 더 몰입해서, 더 가열차게 공부했다.
그리고 나는 공부가 잘 되든 잘 안 되든 일단 닥치고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는 남편(당시 남자 친구)과 달리 공부가 잘 안 될 때에는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나와 코에 바람도 좀 넣고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 후 좀 힐링이 되었다 싶을 때 다시 책상에 앉아 집중해서 공부하는 스타일이다. 학교 근처에는 커피전문점이 매우 많았는데, 식사 후에나 공부 중간에 들러서 손에 커피 한 잔 들고 남편과 학교 주변을 걷거나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한 낙이었다. 그때 충전된 에너지로 또 열심히 공부를 했다. 이 점에 있어서 나와 조금 달랐던 남편은 '커피보단 차라리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겠다'며 나의 유혹을 처음엔 뿌리쳤지만 이내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서는 함께 손을 잡고 발을 맞추며 걷곤 했다. 혼자 공부만 죽어라 했다면 더 힘들고 지쳤을 텐데, 남편과의 연애가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가뭄에 단비가 되어 더 긴 호흡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다(남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ㅎㅎ).
사실 로스쿨이라는 곳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 종일을 함께 하는 시스템이라, 연애와 공부의 구별이 모호한 측면도 있었다. 같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한다거나 산책을 하면서도 공부 중 모르겠는 부분을 서로 물어보며 의견을 나누면 그것이 곧 연애고 공부가 되는 거였으니까. 시험기간에는 서로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을 찍어서 공유하고 실제로 그게 시험에 문제로 나왔을 때에는 상대방의 찍기 실력에 감탄하며 서로의 답안을 비교해 보곤 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에도 엄마가 책을 보며 중요 부분을 물어보면 내가 그에 대한 내용을 줄줄 읊으며 공부한 것들을 확인하는 식으로 시험에 대비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로스쿨 때는 그 역할을 남편에게 주어 그것을 우리의 시험공부 방식으로 삼았다.
우리는 각자의 노트를 공유했고(로스쿨생에게 노트란 목숨과 같다!) 서로의 알람이 되어 주었으며 누가 시험이라도 망치면 옆에서 다독이며 멘탈을 관리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점도 많아서 종종 싸울 때도 있었다. 그러면 누가 먼저 손을 내미나 눈치 보면서 마음이 조금 불편한 채로 시간을 보내다 몇 시간이 흐르지 않아 금방 화해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싸워도 밥은 항상 같이 먹어서, 같이 밥을 먹다 보면 금세 마음이 풀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또 싸움이 오래가면 공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라는 걸 서로가 알기 때문에 별 거 아닌 걸로 싸우면 금방 풀어버리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다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싸웠다 하더라도 기숙사며 강의실, 독서실 등 동선이 뻔했기에 오며 가며 마주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불편함과 어색함을 지속하기 싫어 누군가 먼저 말을 꺼냈던 것 같다.
로스쿨이 아닌 다른 환경이었다면 연애 과정에서의 수많은 다툼 중의 하나로 우리가 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싸워도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로스쿨 환경이 우리를 화해하게 했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많은 다툼을 거치며 우리는 우리의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고 관계는 더 단단해졌다.
쓰다 보니 문득 그때의 우리가 그리워진다.
남편과는 쿵짝이 참 잘 맞았고 웃음코드가 비슷했다. 같은 얘기도 그가 하면 너무 재미있었다. 남편은 학교 사람들이나 교수님들의 성대모사를 자주 했는데, 그게 너무 웃겨서 나는 배꼽이 빠져라 깔깔댔다. 읽어야 할 책들과 풀어야 할 문제들, 외워야 할 수많은 것들에 치여서 지쳐 있을 때에도 함께 하는 잠깐의 휴식이면 힐링이 되었다.
남편은 나보다 성격이 무던하고 엉덩이가 무거웠다. 내가 시험을 잘 못 쳤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면 같이 맛있는 것을 먹고 시간을 보내며 빨리 털어버릴 수 있도록 도와줬고, 내가 농땡이 부리거나 엉덩이가 들썩거려 놀러 나가고 싶어 할 때에는 나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며 나를 다시 공부의 길로 인도해 주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연애가 공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그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혹시 공부와 연애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춘이 있다면 두 가지 다 해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서로에게 발전적인 상대가 되어줄 수 있다면, 연애를 놓지 않고도 충분히 긍정적인 시너지를 주고받으며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단, 본인과 상대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유연히 대처해서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모두 놓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그 시절 내가 어땠는지, 본인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 우리의 연애가 공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은지 물어보고 싶어 졌다. 내일 은근슬쩍 물어보며 그때의 추억도 소환시켜 봐야겠다.
쌔근쌔근 잘도 자는 남편이 새삼 고마워지는 밤이다.